메뉴 건너뛰기

close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벼르던 해외 캠핑, 아들과 캠핑카 안에 갇힐 줄이야'(링크)에서 이어집니다. 

과연 우리 차는 무사할까?

한국으로 귀국한 후 아들은 이비인후과와 치과에서 진료받았고, 공무원으로 휴직상태였던 나는 회사로 잠시 돌아가 퇴직 신청을 마무리한 후 40여 일 만에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한국에 잠시 있는 동안 내가 주로 한 걱정은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공무원에서 퇴직한 이후의 삶'도 아니고 흔히들 '독박육아'라 부르는, '아들을 혼자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아니었다. 단지 바르셀로나에 한 달 넘게 주인도 없이 주차되어 있을 흰둥이(자동차 이름)가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아들의 병원 치료 후 가장 빠른 항공권을 구했지만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자동차 배터리는 방전됐겠지?'
'차 유리창을 깨고 도둑이 다 훔쳐 갔으면 어쩌지?'
'아니, 차라리 도둑맞아도 차만 제자리에 있으면 다행이겠다.'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걱정했다.

그래서 저녁 8시 무렵 바르셀로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들만 혼자 남겨놓고 바로 나가 택시를 탔다. 혹시 견인되거나 도둑맞아 차가 없을 수도 있단 생각에 택시 기사님에게는 바로 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까지 한 채 마음을 졸이며 주차장으로 찾아갔다.

마침내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저 멀리 주차된 아주 말끔한 우리 흰둥이가 보였다. 우리 차는 한 달 넘게 방치된 차량이 아니라 마치 방금 세차라도 한 듯 외관이 아주 깨끗했다.
  
한국 자동차가 바르셀로나에 한 달 넘게 무사히 주차되어 있었다
▲ 한 달 만에 만난 흰둥이 한국 자동차가 바르셀로나에 한 달 넘게 무사히 주차되어 있었다
ⓒ 오영식

관련사진보기

 
2014년 10월 7일 아침 7시 무렵, 아들이 처음 세상에 나오던 날이 생각났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9달 동안이나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쭈글쭈글한 게 생각보다 안 예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본 우리 아들의 얼굴은 몇 달 동안이나 물속에 있던 쭈글쭈글한 피부가 아니라 목욕을 갓 하고 나온 아이처럼 아주 뽀송뽀송하게 예뻤었다.

마치 그때를 보는 것처럼 흰둥이는 아주 우아하게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거친 비포장도로에서도 우리 부자를 지켜줬던 흰둥이를 먼 외국에 혼자 남겨뒀다는 사실에 나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주차된 모습을 보니 '잃어버린 아이를 몇 달 만에 만난 부모' 같은 마음이 들었다.
 
"흰둥아! 고생했다. 미안해. 얼른 같이 가자."


차에 타 혹시나 하며 시동을 걸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한 번에 시동이 걸렸다. 작년 여행 출발 전 방전에 대비하려 캠핑용 배터리로 교체해 놓은 게 효과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스페인 경찰들의 특별관리를 받은 한국 자동차

다음 날 오전에 혼자 숙소 주변 거리로 나왔다. 작년에 라트비아 국경에서 가입한 자동차 보험기간이 만료돼 차를 운전하기 전에 빨리 보험회사를 찾아 새로 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하지만, 지도를 검색해 찾아간 보험사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그런 보험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외국인 자동차 보험은 그런 보험에 가입할 만한 사람들이 있는 국경에서만 판매하는 것 같았다. 난감해하던 차에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분이 보여,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요?"
"저는 한국 사람이고 지금 자동차 여행 중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아들이 아파서 한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왔는데 보험 보증기간이 끝났어요. 그래서 다시 가입하려는데 보험사를 못 찾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같이 찾아볼게요"


엠마라는 이름의 여성은 경찰이 아니라 주차단속 직원이었고, 함께 다니며 보험사를 몇 군데 더 돌아다녔지만, 모두 그런 종류의 보험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엠마가 우리 앞을 지나가던 경찰차에 다가가 무언가 말하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한 경찰관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차가 흰색 SUV인가요?"
"네, 맞아요."
"천정에 루프박스가 있고, 앞 유리에 'ROK'라고 쓰여 있는 차인가요?"
"네, 맞아요. 알고 계시네요? 저는 아들과 작년에 러시아에서부터 이곳까지 한국 자동차를 운전해서 여행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파서 잠시 한국에 돌아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그러자 그 경찰관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여러 장 보여줬다. 사진에 찍힌 차는 주택가 주차장에 주차된 우리 흰둥이였다. 그리고 경찰관이 말했다.

"한곳에 오래 주차되어 있고 번호판도 특이해서 매일 순찰하며 지켜봤습니다."
 
바르셀로나 경찰은 한 달 내내 우리 차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 친절한 스페인 경찰관 바르셀로나 경찰은 한 달 내내 우리 차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 오영식

관련사진보기

 
여행 전 유럽의 관광지에는 도둑도 많지만, 소매치기를 당해서 신고해도 경찰들이 게을러 잡을 생각도 안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여행자들에게 소매치기와 경찰 무용론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1년 내내 따뜻해서 전 유럽에서 온 집시들이 모이는 곳이라 소매치기가 워낙 많아. 그래서 경찰한테 신고해도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아."
 

하지만, 외진 주택가 주차장에 있는 낯선 자동차를 매일 순찰하며 지켜본 경찰관 사례를 보니 적어도 '유럽 경찰은 게으르다'는 말은 틀린 것 같았다.

그제야 왜 우리 차가 한 달 넘게 바르셀로나에 무방비로 주차되어 있는데도 멀쩡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경찰관들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저도 대한민국 공무원입니다. 스페인 경찰관들이 일을 아주 열심히 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경찰관은 활짝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스페인에는 도둑이 많아요. 조심히 여행하세요."    

끝내 보험사는 찾지 못했지만, 친절한 스페인 경찰관 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보험은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고, 다행히 일명 '그린카드'라는 여행자용 자동차 보험은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가우디의 작품으로 아주 아름다워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가우디의 작품으로 아주 아름다워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 오영식

관련사진보기

 
다음날부터 우리 자동차는 지역에서 이미 유명해져 경찰관들이 알아볼 정도였다. 마주친 경찰들마다 '며칠 뒤에 떠나는지, 보험은 잘 가입했는지' 물었다. 그래서 잠시 주차해 놓고, 아프리카에 갔다가 돌아와서 프랑스로 떠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미지의 땅 아프리카에 가다 
 
우리 차는 이미 지역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 바르셀로나 주택가의 공용주차장 우리 차는 이미 지역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 오영식

관련사진보기


며칠 뒤 우리 부자는 숙소 근처 공용주차장에 안전하게 주차하고 아프리카 모로코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스페인 남부에서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가 우리 차로 여행하려 했지만, 여러 사정상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이동해 현지에서는 따로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짐도 단출하고 어린 아들과 둘이 이용하니 큰 차는 필요 없다'는 생각에 카사블랑카 공항 렌터카 회사에서 경차를 예약했다. 하지만, '모로코를 경차로 여행한다'라는 생각이 우리 여행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였다는 걸 며칠 뒤에야 알 수 있었다(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할 예정이다).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인수하고 시내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로 아주 가깝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야경 스페인과 모로코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로 아주 가깝다
ⓒ 오영식

관련사진보기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건 처음이었던 나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숙소는 검증된 곳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용자가 많은 예약대행사를 통해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로 예약했다.

그런데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 여권을 보여주니, 호텔 직원은 우리가 예약자 명단에 없다고 했다. 예약 확정서와 예약 번호를 보여줬지만 한참을 찾아보던 직원은 끝내 예약자 명단에 우리가 없으니 예약한 곳에 확인해 보라고 했다.

몇 번의 전화에도 연결이 안 돼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여행사와 통화할 수 있었고 직원은 예약이 확정됐다는 걸 다시 확인해 주었다. 여행사 직원과 호텔 직원을 서로 통화하게 했지만, 어딘가 오류가 있었는지 현지 호텔에서는 예약 처리가 안 되었다면서 계속 인상을 찌푸린 채 여행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태그:#스페인, #바르셀로나, #유라시아횡단, #세계여행, #세계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