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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봅니다.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7호'는 2024년 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쇠토프 숲유치원, 울러럽 체조 호이스콜레 및 음악 애프터스콜레, 장애인협회(DPOD), 코펜하겐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 등을 직접 방문했습니다.[편집자말]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인 DPOD의 시프 (Sif Holst) DPOD 부의장이 꿈틀비행기 17호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인 DPOD의 시프 (Sif Holst) DPOD 부의장이 꿈틀비행기 17호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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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집'.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 호이에 타스트루프(Høje-Taastrup)에 위치한 장애인 협회(Disabled People's Organization Denmark, DPOD) 건물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지난 1월 26일(현지 시각) 오전, 해당 건물을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7호 참가자들이 찾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포함 약 300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 DPOD 건물은 지난 2012년 12월 12일 완공됐다. 건축계에선 유명한 개념인 '유니버설 디자인' 방식, 즉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디자인 방식을 반영했고 여기에 덴마크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장애인 협회의 의견 수렴을 거친 결과물이다. 1934년 출범한 DPOD는 36개 장애인 관련 하위 단체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약 40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보편 타당한 접근권

상당한 규모의 회원 수만큼이나 DPOD가 품고 있는 장애의 범주 또한 넓다. 꿈틀비행기 참가자들 앞에 선 시프 (Sif Holst) DPOD 부의장은 "눈에 보이는 장애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는데 나와 같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신 질환이라든가 심한 당뇨, 뇌 질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을 모두 대표하고 있다"고 단체의 범주를 설명했다.

"결국 우리의 최종 목표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일도 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공부도 하며 사는 것이죠. 지역사회 일원으로 장애인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시프 부의장은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갔을 때 직면하는 모든 종류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게 우리 단체가 추구하는 목표"라며 "그렇다고 DPOD가 장애인들 이익만 강하게 주장하는 이기적 단체가 아니다. 이 사회의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DPOD는 덴마크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의견을 제시하며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구호가 있습니다. 사회마다 장애인과 장애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가 많은데, 우리 같은 단체가 돕지 않으면 장애인들이 직접 그 결정에 참여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 내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을 위해 건물을 개조할 때 당연히 여러 연구 과정을 거치겠지만, DPOD도 그 논의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낭비하지 않고 정말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접근성을 확보하게 되죠.

사회, 교육, 건강 관련 정책 등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 DPOD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은 물론이고 지자체와도 적극 협력하고 있어요. 물론 세세한 것 모두를 챙길 수는 없기에 우선순위를 정해놓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보건과 의료에 평등성을 중시하고, 삶의 질을 중요시하며 보편적 접근성을 고려하는 게 원칙입니다.

제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놓고 보면 비장애인들에겐 자전거라든가 다른 이동 수단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전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휠체어를 기준으로 여러 편의 시설을 만드는 것이 더 보편적인 게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세우고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합니다."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 DPOD 건물의 모형. 4개 다리가 사방으로 뻗은 불가사리 모양이 인상적이다.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 DPOD 건물의 모형. 4개 다리가 사방으로 뻗은 불가사리 모양이 인상적이다.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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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DPOD 건물은 상징적이다. 2006년 비준된 UN 장애인 권리협약은 장애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편적 디자인'(유니버설 디자인)을 권장하고 있다. 덴마크는 이를 2009년부터 채택해 모든 공공시설에 반영해왔다. 1만 2600㎡ 대지에 지하 1층을 포함한 총 4층 규모의 DPOD 건물 또한 그 기준에 부합한다. 시프 부의장은 "흥미로운 사실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건축물이 일반 건축물보다 훨씬 비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거의 비슷한 수준이 들었다는 것"이라며 "이 건물을 짓는데 약 520억 원(한화 기준)이 들었는데 이런 규모의 건물을 짓는 평균 비용 수준"이라고 짚었다.

건물을 짓는 과정 또한 하나의 모범 사례였다. 상대적으로 장애인 관련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건설 관계자들이기에 DPOD 측에서 충분한 사전 교육을 제공했다고 한다. 시프 부의장은 "업체를 선정하기 전에 건물 설계자와 기술자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다녀보게 하거나 눈을 가리고 이곳저곳을 다니게 하는 등 접근성에 대한 교육이 진행됐다"라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을 때도 장애인 팀이 직접 참여하며 여러 의견을 전달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5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업체를 추렸고 턴키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건축회사와 엔지니어 그리고 장애인들이 함께하는 일종의 원 팀이 생긴 셈이죠. 처음 설계에선 디자인 측면을 고려해 건물을 원형으로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이 직접 체험해 보니 접근성 면에서 불편함이 많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서 지금의 불가사리 모양에 이르게 됐죠."
 

마치 네 개의 다리가 달린 불가사리와 같은 모양의 DPOD 건물은 48개에 달하는 서로 다른 모양의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이 있으며, 이는 모두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인 주차 공간은 100개가 지정돼 있다. 모든 지면이 휠체어가 다니기 편한 재질이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블록들이 주요 시설과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조명과 건물 내 도색 또한 시력이 약한 사람들이 가장 잘 구분할 수 있는 밝기와 색으로 이뤄져 있다. 시프 부의장은 "청각 장애인에겐 음향이 가장 중요한데, 정신 질환이 있는 분들은 또 그런 소리에 민감할 수 있기에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한 음향 설비가 갖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인 DPOD 내부 화장실 전경.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인 DPOD 내부 화장실 전경.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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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 DPOD 건물 엘리베이터 스위치. 손과 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덴마크 최대 장애인 단체 DPOD 건물 엘리베이터 스위치. 손과 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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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사회 참여는 당연한 덕목"

실제로 30여 분간 돌아본 DPOD 내부는 장애인을 비롯, 비장애인들의 편의까지 모두 고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화장실 종류만 해도 7개였다. 아예 몸을 못 가누는 사람을 위한 리프트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부터 샤워 시설 및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침대가 있는 화장실, 시각적으로 변기 배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변기나 세면대는 기본적으로 높낮이 조절이 가능했다. 누구 한 사람도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쓴 결과물이다.

"각 네 개의 날개도 서로 다른 색깔로 도색했는데, 각 동을 좀 더 직관적으로 찾도록 하기 위함이죠. 보시면 안내 데스크 또한 서로 다른 높이로 이뤄져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설계죠. 또한 아무래도 장애인들이 계단보단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일이 많기에 일반 건물보다 엘리베이터가 많습니다. 문도 앞뒤로 다 있고, 버튼도 손과 발로 어느 것으로도 누를 수 있도록 돼 있죠. 다만 발로 누를 경우 엘리베이터는 손을 쓸 수 없는 사람이 탄 것으로 인식해 모든 층마다 멈추고 문을 여닫습니다.

또 청각 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도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이분들은 귀 안에 특수한 장치를 하고 있거든요. 화재 시엔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방화벽이 내려지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외부 혹은 청정구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선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한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선 화재가 발생하면 즉각 발전기를 통해 자동으로 전기를 만들어내기에 엘리베이터를 타도 됩니다. 그래야 하죠. 아무래도 계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경보가 울려도 장애에 따라 인식을 못할 수도 있기에 천장에선 시각적으로 반짝거리게 하고 컴퓨터 화면도 검은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모든 장애인분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게끔 대비가 돼 있습니다."
 

이처럼 세심하고 면밀한 건물 존재 자체가 곧 장애인을 바라보는 덴마크의 바로미터 아닐까. 다만 시프 부의장은 "이 모든 건 덴마크 정부가 아닌 각 장애인 단체의 적극적 역할로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장애인 스스로 사회 구성원임을 인지하고 꾸준히 요구해 온 게 지금에 이르게 됐다"며 그는 "정부는 사실 선구자적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처음 시각장애인 협회가 만들어진 뒤 꾸준히 장애인 단체가 생겨났습니다. 협회 역사가 100년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이뤄가야 할 게 많습니다. 다만 덴마크는 대화의 문화가 강하잖아요. 정부와 꾸준히 대화하고, 끈질기게 요구해 온 게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덴마크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국가가 일종의 연금을 주잖아요. 그렇기에 장애인도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교육받고, 의견도 내는 것이죠."
 

협회를 방문한 꿈틀비행기 참가자들의 반응 또한 다양했다.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정미씨는 "최근 학급 수를 늘리면서 200억 원 규모의 공사를 책임지게 됐는데 이번 시설을 진작에 보지 못한 게 오히려 아쉬웠다"며 "예쁜 디자인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대상과 목적성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조만간 학교에 특수학급을 위한 시설을 늘리게 되는데 오늘 깨달은 바를 조금이나마 반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교육학 전공의 대학생 최경수씨는 "특수교육학을 한 학기 배울 때 눈 감고 하루를 생활한 적 있다. 이런 곳이 한국에 있었으면 크게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고 생활했겠구나 싶었다"라며 "주변에 특수교육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하고 싶을 정도로 배울 점이 많은 건축물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등학교 2학년인 여민재씨 또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게 모든 사람이 이용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개념이란 걸 알게 돼서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꿈틀비행기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태그:#꿈틀비행기, #덴마크,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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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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