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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달걀을 찍어 먹을 소금이 필요했다. 그런데 소금통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히어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카톡으로 S.O.S. 메시지를 전송했다.

히어로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왔다. 먹던 것은 어제 저녁에 요리하며 다 썼다는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새 소금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내게 사근사근 알려주었다. 뒷배경으로 전동 드릴이 요란하게 윙윙 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남편을 '히어로'라고 부르고 있다. '당신은 나만의 영웅'이라는 뜻으로 십여 년 전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 남편의 공식적인 직업은 자동차 정비사. 올해로 13년 차 베테랑이다.

하지만 정비사라는 직업은 이 사람에 대해서 티끌만큼만 설명해 줄 뿐이다. 남편은 가장 역할 이외에도 우리 집에서 태산 같은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니 남편의 직업을 한 가지만 말한다면 남편 입장에서 심히 아쉬운 설명일 수 있다.
   
즉석에서 달고나를 만들고 있는 남편
▲ 아빠 달고나 먹고 싶어요 즉석에서 달고나를 만들고 있는 남편
ⓒ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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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차 고치고 밤엔 요리하는 남자~
집에 소금이 어디 있는지 아내보다 더 잘 아는 남자~
그게 바로 내 남자~!"


내가 만일 남편송을 만든다면 경쾌한 트로트 리듬 위에 요런 가사를 사뿐 얹을 것이다. 그리고 요리하는 남편 주위에서 탬버린을 신나게 흔들며 율동과 함께 스페셜 디너쇼를 보여주겠다.

그렇다. 우리 집은 남편이 주로 요리를 한다. 심각한 화폐상 습진 환자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탓에,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낮엔 정비사로, 밤엔 우리 집 요리사로 투잡을 뛰게 되었다.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는 내 피부를 보고 남편이 스스로 짊어진 과업이었다. 덕분에 나는 최소한으로 손에 물을 묻히며 공주처럼 살고 있다. 이 못난이 공주는 피부병을 간절히 고치고 싶다. 얼른 건강해져서 히어로가 홀로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사이좋게 나누어 지고 그와 함께 오래도록 동행하고 싶다.

남편의 요리에선 언제나 좋은 맛이 난다. 탄탄한 기본기라는 프라이팬 아래에 최고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불사르니 맛이 좋을 수밖에! 본인 입이 즐겁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저녁식사는 오직 피자 아니면 치킨으로만 연명하고, 그마저도 귀찮을 땐 굶어버리는 사람이지 않았던가.

우리 집 식탁에서 매 끼니 그릇에 담기는 것은 남편의 마음이다. 본인의 입맛은 뒷전에 두고, 그저 우리 아이를 크게 키우고 피부 환자인 아내의 아픈 몸을 편하게 해 주겠다는 지극한 마음. 그 고봉처럼 수북한 희고 따뜻한 마음이 오늘도 내일도 아이와 나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것이다.
 
비주얼은 평범하지만 맛은 끝내준다.
▲ 히어로가 만든 볶음밥 비주얼은 평범하지만 맛은 끝내준다.
ⓒ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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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전화로 일러주는 곳에 가 보니 정말로 소금 봉지가 있다. 소금을 접시에 덜어 와 달걀 껍데기를 벗기고 있으려니 남편 모습이 눈에 밟힌다. 퇴근 후, 하루치 노동의 고단함에 짓눌려 납작한 갱엿처럼 바닥에 눌어붙어 쉬던 모습. 그러다가도 내가 싱크대 쪽으로 다가서면 벌떡 일어나서는 남진의 <둥지>를 까불까불 부르며 나를 부엌에서 밀어내던 모습.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 줄게~."

히어로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달걀에 소금을 듬뿍 찍었다. 목구멍이 점점 메어온다. 가슴은 또 왜 이다지도 먹먹해지는지… 삶은 달걀은 아직 입에 대지도 않았건만.

태그:#부부애, #가족사랑, #공감에세이, #감동사연, #따뜻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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