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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으로 경제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과 고금리, 경기침체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위축 때문이지만, 태영 윤씨일가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부실경영도 원인으로 꼽힌다. 태영 대주주의 뒤늦은 자구노력으로 워크아웃은 시작됐지만,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게다가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 등에게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태영사태를 둘러싼 부동산발 위기의 현장과 대안 등을 모색해본다.[편집자말]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2012년 9월 2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모교를 방문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2012년 9월 2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모교를 방문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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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끝내 파산 선고"(2012년 8월 16일, <오마이뉴스>)

12년 전, 저축은행업계 자산순위 1위였던 부산저축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분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도화선이었다. 같은 이유로 결국 24개 건설회사와 30개 저축은행이 간판을 내렸다. 

2024년 1월, 방송사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모태 기업이자 시공능력평가 16위 대형 건설회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절차)에 돌입했다. 480억원 규모의 PF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정부는 "높은 부채비율(258%) 등 태영건설 특유의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건설업계와 금융권은 부동산 PF 발 경제위기가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돌아보면서 현재 태영건설 사태의 위험성을 짚어봤다. 

카드대란에 신용대출 줄이고 PF 대폭 늘려
 
2012년 9월 26일 오전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캠퍼스 금융토크 출입을 저지당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1층 출입구에 앉아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2년 9월 26일 오전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캠퍼스 금융토크 출입을 저지당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1층 출입구에 앉아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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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사태는 지난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저축은행들이 연속으로 영업정지를 받은 사건을 말한다. 같은 해 2월에는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전주·보해·도민저축은행 등이 영업정지를 받는 등 추가 영업정지가 속출했고, 이는 사회·경제적 문제로 떠올랐다. 

지역 기반으로 영업을 펼치는 저축은행 특성상 이곳 주 고객은 지역 노인들과 상인들이었는데, 이들이 평생 모아온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서다. 

주로 서민을 대상으로 대출 영업을 해오던 저축은행이 건설회사 대출사업인 PF 대출로 눈을 돌린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2년 카드대란으로 가계 신용대출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저금리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맞으면서 PF 대출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부동산 PF 대출은 아파트, 상가, 골프장 등 부동산 개발을 위해 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의 대출을 말한다. 투자한 부동산에서 나올 현금과 자산이 담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업자의 신용도에 대한 평가 없이 수익성만으로 대출이 진행되는 고위험·고수익 투자 방식이다. 저축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과 보험회사, 금융투자회사 등도 대거 PF 대출에 뛰어든 배경이다.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구조의 변화도 PF 대출 쏠림에 한몫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관련 개발사업 구조는 시행회사와 시공회사가 분리된 도급공사 방식으로 점차 변화했다. 

저신용으로 대규모 개발사업 가능해지자 너도나도 몰려
 
건설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
 건설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
ⓒ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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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회사는 저축은행 등에서 PF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토지를 매입하고, 인허가를 추진하는 등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시공회사는 시행회사와 공사 도급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 건축물 등을 지었다. 

건설회사 입장에선 규모가 큰 1~2건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회사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험 관리 차원에서 시행회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건설회사는 사업 승인 뒤 공사 도급 계약에 따라 시공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건설회사는 채무 인수 약정 또는 연대 보증을 제공하더라도 실제 채무 인수 등 전까진 우발채무만이 존재해 시행을 겸하는 것보다 시공에만 나서는 것이 재무적으로 유리했다. 또 시행회사의 경우에는 소자본과 저신용으로도 대규모 개발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함정이 있다. 대출 상환 능력이 부족한 영세 시행회사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자금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최종적으론 PF 대출 상환 부담이 시공회사로 넘어가는 구조인 것이다. 

1금융권에 밀린 저축은행, 고위험 PF 떠맡았다

수많은 금융회사 중 유독 저축은행들만 PF 부실의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인허가를 완료하고, 사업성이 우수한 프로젝트는 1금융권인 은행이 독식하기 때문에 인허가 위험이 상존하는 사업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는 2금융권인 저축은행 등으로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저축은행들은 제대로 된 심사 과정 없이 캄보디아 개발사업 등 위험성이 큰 사업에 대해 무분별하게 PF 대출을 늘려나갔다. 

저축은행들의 PF 대출 규모는 2004년 3조 4816억원에서 2010년 12조 2000억원으로 4배가량 치솟았다. 총대출 가운데 PF 대출 비중도 2005년 17.9%에서 2007년 29%로 급등했다. 특히 문제가 된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PF 대출 비중이 약 70%에 달하기도 했다.  

PF 대출 문제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산 경기 호황에 가려져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후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맞으며 국내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고, 투자 원금 회수가 불가능해지자 PF 부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고위험 PF에 투자했던 저축은행들의 재무 상태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전체 저축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은 2005년 9.1%에서 2008년 14.3%까지 악화했고, 당기손익은 2008년 1300억원에서 2011년 -1조 4700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저축은행 사태로 27조 혈세 투입...8조는 여전히 미회수
 
서울 여의도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모습
 서울 여의도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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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결국 혈세가 투입됐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이 설치됐고, 총 27조 2000억원 규모의 공적 자금이 지원됐다. 이 가운데 지난 2022년 말 기준 8조 5000억원은 여전히 회수하지 못했다. 

2000년대 초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과열됐던 PF 시장은 부동산 불황이 닥치자 차갑게 식었고, 또다시 부동산 불황기에 접어든 2024년 현재, 곳곳에서 불길한 징조가 감지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도 건설사는 총 19곳으로, 24곳이 부도났던 2020년 이후 가장 많았다. 또 한국기업평가(한기평)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건설사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2조8000억원으로 지난 2022년 6월 말보다 29% 늘었다.  

건설사들의 신용등급도 잇달아 내려가고 있다. 한기평은 일성건설의 신용등급 전망을 BB+(안정적)에서 BB+(부정적)로 하향했고, 신세계건설의 경우에도 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낮췄다. GS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도 A+에서 A로 하향했다. 

건설사 19곳 문 닫아...연체율도 통계 집계 이후 최악

금융권의 대출 지표도 심상치 않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15일 공개한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3분기(7~9월) 전체 금융권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608조 5000억원에 이른다. 2년 전인 2021년 3분기보다 22.3% 증가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상호금융조합 등 비은행권의 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115조원에서 193조 6000억원으로 24.9% 급증했다.  

건설 관련 대출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부실화도 가속화했다. 지난해 3분기 비은행권의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은 각각 5.51%, 3.99%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의 건설업, 부동산업 연체율도 각각 0.58%, 0.15%를 기록했다. 은행 건설업 연체율은 2015년 이후, 부동산업의 경우 2010년 이후 가장 악화했다. 

2021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온 건설회사들은 태영건설 사태로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 사태로 단기적으로 금융업·건설업 신용 및 PF 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이 맞물려 건설사들의 자금 확보가 중요해진 가운데, 태영건설 사태로 중소형 건설사들의 단기 사채 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과연 우리는 부동산 PF 발 경제위기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참담했던 과거는 조용히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관련기사] 
[기획①]"임금 8일치로 3개월 버텨, 무관심 속 신용불량 나락으로" (https://omn.kr/2763d)
[기획②]'태영' 도랑 치다 홍수났는데... 금융위 수장 "안 되면 터지는 거죠, 뭐" (https://omn.kr/279l9)

태그:#태영, #태영건설, #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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