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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수능 대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교육과 수능의 태생적 부조화'도 그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수능 대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교육과 수능의 태생적 부조화'도 그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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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라면 누구나 사교육 없이도 자녀들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를 바라리라 생각한다. 30년 넘게 주로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바람이라 할 수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에 비견할 만하다. 특목고나 자사고,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하니,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상황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련다.

수능과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은 태생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내가 가르쳤던 국어 교과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 수능 국어 영역의 출제 범위는 독서, 문학,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이다. 독서와 문학은 모든 수험생이 치러야 하고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중 하나를 선택한다(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선택 과목이 없어진다).

자, 그럼 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떨까?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보자.

1학년에서는 국어 과목을 1년 동안 배우게 된다. 이 과목은 수능의 출제 범위가 아니다. 2학년 때부터 배우는 선택 과목 중, 일반 선택 과목이 수능 출제 범위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그 학교의 경우, 2학년에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을, 3학년에 언어와 매체, 현대 문학 감상, 문학과 매체, 심화 국어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개설해 놓았다.

2학년 때 대개의 학생들은 1학기에 문학, 2학기에 독서를 선택해서 공부한다. 국어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추가로 화법과 작문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수학이나 영어 교과 중에서 1~2개 과목을 선택한다.

3학년 때는 언어와 매체를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한다. 2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국어 교과에서 1~2개 과목을 추가로 선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수학이나 영어 교과의 과목에서 선택한다. 2학년의 경우 선택한 과목을 한 학기만 배우지만 3학년 때는 일 년 동안 배운다. 3학년에서도 선택한 과목을 한 학기에 끝내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수능 출제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과목과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그 학교의 교육과정을 비교해 보면, 수능과 학교 교육이 조화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쉬이 알 수 있다.

수능 국어 영역의 핵심은 공통 과목인 문학과 독서이다. 문학과 독서에서 출제되는 34개 문항은 모두 풀어야 하고,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중에서 한 과목을 선택하여 11개 문항을 풀게 되니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의 경우, 문학을 2학년 1학기에 독서를 2학년 2학기에 배우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3학년이 되면 그 과목을 배울 수가 없게 된다. 수능 국어 영역의 선택 과목인 화법과 작문도 2학년 1학기나 2학기에 배우고 나면 더 이상 배울 수가 없다. 수능 국어 영역 출제 범위 중 3학년 때 배울 수 있는 과목은 언어와 매체뿐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에만 해당하지는 않았다. 내가 근무한 지역에 있는, 여섯 개의 일반계 고등학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로 확대해서 상황을 살펴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과목 모두를 3학년에서 배울 수 있도록 편성할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국어 교과만 배운다면 모를까.

그러므로 수능 국어 영역을 잘 치르려고 생각하는 학생은 독학을 하거나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학교에서도 방과 후 학교(예전의 보충 수업)에서 수능 대비 강좌를 운영하기는 한다. 하지만 방과 후 학교의 수능 대비 강좌 시간 수가 턱없이 적어, 수능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매우 힘들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3학년에 개설된 심화 국어, 현대 문학 감상, 문학과 매체 등의 과목에서 과목 성취 기준을 아예 무시하고 수능 대비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담당 교사들 사이에 협의가 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교육만으로 수능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육부가 모를 리 없을 텐데, 교육부의 대입 전형과 관련한 행태를 보면 교육부는 학교 교육 살리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난 정권에서 대입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시 선발 비중을 40%까지 확대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끽소리도 못했던 교육부를 떠올려 보라.

이번 정권에서는 킬러 문항을 제거하여 사교육 카르텔을 없애라는 대통령의 뜬금없는 지시를 떠받드는 데에만 골몰하다가 정작 역대급 불수능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수능이 어려워지면 학생들은 더더욱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능과 학교 교육(특히 국어 영역)은 태생적으로 부조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확정한 2028학년도 대입 전형 방안은 학교 교육을 더욱 심각한 파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신 상대 평가를 유지하면서 9등급으로 평가하던 것을 5등급으로 평가하기로 했는데, 수능은 그대로 9등급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수능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내신의 영향력은 축소되리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터이다.

수능 영향력이 확대되면 학교에서도 수능 대비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오지선다형 수능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교육에 중점을 두게 되면 각 과목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취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 활동은 전개할 수 없다. 각 과목의 성취 기준에 제대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생 참여 활동을 전개해야만 하는데, 학교 교육이 수능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이런 활동을 전개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수능 대비 교육에 치중하면, 학교 교육은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수능과 학교 교육은 본질적으로 부조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을 살리자'라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 정책은 이 명제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선택 과목을 없애고 출제 범위를 줄이고 킬러 문항을 없애는 등 수능의 형태를 아무리 변화시켜도 수능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한, 학교 교육은 방향타 잃은 배처럼 표류하게 될 터이다.

물론 수능의 영향력을 없애거나 수능 자체를 폐지한다고 해서, 저절로 일반계 고등학교 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리 만무하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각 과목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취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학생 참여 수업을 구안하고 적용해야 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제식 강의 수업에서 탈피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대입 제도 또한 '어떻게 해야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상적으로야 대입 제도와 관계없이 고등학교 교육이 전개되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자괴감을 느낀 적이 참 많다. 사교육 여건이 그리 좋지도 않은데도 학생들은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학원으로 몰려갔다. 수능 대비하기에는 학교보다는 그나마 나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취 기준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학생 참여 수업을 하지도 못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세월만 축냈다. 현직에 있을 땐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더하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과 그것을 촉진할 수 있는 대입 전형 방법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수능, #고등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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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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