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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의 전두환 생가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의 전두환 생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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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씨!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밑의 한 자그마한 아파트에 사는 서생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써야 한다는 어떤 계시로 이 글을 씁니다. 그 첫째는 "나이가 들수록 입은 열지 말고, 지갑을 열라"는 금언 때문이요, 그 둘째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침내 이 글을 쓰는 것은 한 교육자 또는 글을 쓰는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와 역사를 위해 반드시 쓰는 게 바른 도리요, 다른 하나는 이제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이순자씨께서도 그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먼저 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합니다.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해방둥이로 30여 년간 교단에 서서 2004년 현직에서 물러난 뒤 강원도 횡성군의 한 산골마을로 귀촌하여 텃밭을 일구는 반거들충이 농사꾼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치악산 밑으로 이사했고, 이즈음은 독서와 틈틈이 이런저런(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2020년 연초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할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주제에 '그 빛과 그늘'이라는 부제를 달아 대한민국 역대 12분 대통령 발자취를 더듬는 글을 썼습니다. 그해 10월 초순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뒤 올해 7월 한 출판사(삼인)에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때의 취재를 위해 2020년 4월 25일, 전두환 대통령 생가 현장 답사를 다녀온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전두환 생가 가는 길에 들은 말... "누가 뭐라캐도"(https://omn.kr/1ng8c)
합천 택시기사의 넋두리 "각하가 잘 나갈 때는..." (https://omn.kr/1nh5z)   
전두환 생가 복원이라더니 귀한 잔디에 관상수라니 (https://omn.kr/1nhu3)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1980. 9. 1)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1980. 9. 1)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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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두환 대통령의 유해를 안장할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정했던 파주에서 반대해 무산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소식을 듣고 전두환 전 대통령 유해를 안장할 곳은 합천생가 마당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고향 집 마당에 유해를 묻은 전직 대통령, 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풍경인가요. 

내 고향의 한 친구는 일찌감치 '고향집 감나무 뿌리에다가 당신의 유해를 묻어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 생가는 남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라 대신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 숲에다가 수목장하라고 10여 년 전에 가족들에게 일러둔 바 있습니다.

내가 교직에서 물러난 뒤 근현대사 답사로 여러 나라를 둘러보니 아직도 대한민국과 같이 장묘문화가 요란한 곳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몇십 배 더 큰 나라(중국, 미국, 러시아)도 검소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웃 일본도 집이나 동네 가까운 곳에 아주 간소히 모시고 있습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죽음에 앞서 "유해를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 "유골을 안치하는 영당(靈堂)을 만들지 말라" "각막을 기증하고, 유해는 의학 연구를 위한 해부용으로 써 달라"는 등의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덩샤오핑의 시신은 그 유언대로 화장해 남은 뼛가루는 꽃잎과 함께 동해 바다(우리나라 쪽에서 서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귀소본능을 갖고 있다
  
2023년 3월 14일 전두환씨 손자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전두환씨의 말년 모습. 부인 이순자씨와 또다른 손자가 함께 자리한 모습. 촬영 장소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2023년 3월 14일 전두환씨 손자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전두환씨의 말년 모습. 부인 이순자씨와 또다른 손자가 함께 자리한 모습. 촬영 장소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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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론 추세 같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묘지는 국내 그 어디에 써도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이참에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 아직도 연희동 자택에 임시로 안치된 유해를 합천 생가 마당 잔디밭이나 관상수 또는 돌덩이 밑에 안장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곳 생가 마당에 안장한 뒤 5·18 유가족 및 그 당시에 피해를 당한 모든 분 및 그 유가족들을 초청해 그 생가 마당에서 초혼제를 겸해 한바탕 살풀이굿을 하기를 바랍니다.

몇 해 전 나는 옛 제자인 김홍걸 의원과 함께 광주에 가서 5·18 어머니 회원들을 만나 밥 한 끼를 함께 나눈 바 있습니다. 그분들은 아직도 소복을 입은 채 사랑하는 가족을 억울하게 잃은 슬픔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생가 마당으로 초대하여, 그분들의 발로 그 마당에 뿌려진 유해를 밟게 한다면 마침내 가슴 속에 싸인 원한도 씻어질 것입니다.

하나 더 주문하고픈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연희동 집을 정리한 다음 그 돈을 나라나 사회에 흔쾌히 기부하시라는 겁니다.
        
그런 뒤 이순자씨 당신도 남편의 생가로 귀촌하여 마당의 잔디를 걷어낸 뒤 거기다가 텃밭을 만든 다음 한편에 고추, 파, 배추, 들깨, 상추, 쑥갓 등 여러 남새들을 기르면서 여생을 보내십시오. 그게 당신도 편안할 것입니다.

그렇게 여생을 보낸 뒤 당신 유해도 그곳 남편 옆에 안장된다면 우리 국민은 당신 내외의 전비(前非)를 덮어줄뿐더러 합천 군민들은 성경 속의 '돌아온 탕자'처럼 반겨 맞을 것입니다.  
 
경남 합천군 전두환 생가마을 옆 황강
 경남 합천군 전두환 생가마을 옆 황강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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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두환, #이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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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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