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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에서 주차장 붕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들어가야 할 철근이 빠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발주한 아파트 현장 중 15개 단지에서 상당수 철근이 누락되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철근 있는 아파트’를 홍보할 정도로 총체적 부실공사가 만연한 한국 사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길래 건설업계에서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더불어삶>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간담회를 진행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건설업의 현실을 지면에 정리했습니다.[기자말]
건설현장에서 직접 시공하며 일하는 건설 노동자 중 정규직이 얼마나 될까? 한국 사회 건설현장에서 정규직을 찾는 불가능에 가깝다. 거의 다 일용직이다. 일반적으로 건설업체는 공사 시작할 때 또는 시공 단계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바로바로 외부 인력시장을 통해 구한다.

건물이 완성되고 건설현장이 종료되면, 건설 노동자는 다시 실업 상태로 돌아가고 또다른 공사 현장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불안정한 건설 노동자의 고용 상황은 지속적으로 업무가 존재하는 일반적인 산업과 달리 건설 공사를 수주해야 일감이 생기는 건설 산업의 특수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맥으로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 노동자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 건설 노동자의 75% 가량이 '오야지'로 불리는 팀장에게 '불법 하도급'으로 일감을 받아서 일한다.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는 건설 노동자는 계속 일하려면 오야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쓸 수 밖에 없다. "내일은 나오지 마"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되니까.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오야지가 소개비 명목으로 중간에서 임금을 떼어먹기도(현장에서는 '똥띠기(똥떼기)'라 부른다) 하고, 부적절한 것들을 요구받아도 울며겨자먹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일도 일할 수 있을지, 하루 일당으로 얼마를 받을지, 모두 오야지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부당 노동행위나 부실 시공 등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건설산업기본법 제3장 도급계약 및 하도급계약 제29조 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 따르면, 하청 건설사와 오야지 간의 이면계약과 이에 따른 재하도급 모두 불법이다. 그래서 오야지가 끼어있는 하청 구조를 '불법 하도급'이라 부르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건설 산업에서 오야지가 차지하는 영역은 상당하다.

이윤을 많이 남기고 싶은 건설 업체 역시 건설 노동자의 '불안정 고용' 상태를 이용한다. 우선 공사 기간('공기'라고 부른다)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 일정을 잡는다. 이 일정에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휴일도 없이 건설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 건설 시공 자체가 신체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적정 휴일과 휴게 시간이 보장되어야하지만, 공기 단축이라는 목표 앞에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권은 뒷전이다.

안전모와 안전화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이다(얼마 전 DL이앤씨가 KCC에 발주한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고 강보경 노동자 역시 안전모와 안전벨트를 걸 고리 등을 지급받지 못했다). 내일도 일하고 싶은 일용직 노동자는 '안전 제일'은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가 계속되는 한,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는 줄어들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건설 노동자들 추모하는 선전물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건설 노동자들 추모하는 선전물
ⓒ DL이앤씨 시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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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매일 1.5명이 건설현장에서 죽는 나라, 괜찮을까?

건강한 건설 산업을 위한 건설노조의 단체교섭

건설 산업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열악한 환경으로 밀어넣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건설노조는 여러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가 전문 건설업체와 단체교섭을 벌여, 일용직인 조합원들이 전문 건설업체에 직접 고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직고용이 되면, 우선 건설 노동자 입장에서는 오야지를 포함한 불법 하도급 단계가 사라지니 임금을 중간에서 떼먹히지 않고 온전히 받을 수 있다(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의 일당은 비조합원보다 최소 하루 2만 원~3만 원 더 높다). 또한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보름에서 한두 달정도 임금을 늦게 지급. 이런 일이 워낙 당연해서 이를 지칭하는 '쓰메끼리'라는 단어도 있다), 조합원은 직접 고용되어서 비조합원에 비해 그나마 빨리 받는다.

고용도 어느 정도 안정된다. 건설현장이 생기면 건설노조 차원에서 전문 건설업체와 교섭한 후, 결과에 따라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있던 조합원들부터 현장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시간과 휴게·휴일 등 근로기준법 및 산업안전규정도 보장받는다(개천절과 한글날을 비롯한 관공서 공휴일을 민간기업에도 유급휴일로 보장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2020년부터 건설 노동자도 국가 공휴일에 유급으로 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건설현장과 건설업체마다 제각각이고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 단체협약을 맺지 못한 직종 혹은 현장에서는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한다).

건설 산업 측면에서도 노동자 직고용은 불법적인 재하도급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전문 건설업체가 직고용을 해버리니, 중간에서 소개비 명목 등으로 임금만 떼어먹으며 불법 하도급으로 생존해왔던 오야지나 페이퍼컴퍼니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건설산업기본법 제3장 도급계약 및 하도급계약이 현실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법과 편법으로 부실시공과 안전사고가 난무하던 건설현장을 건강하게 바꾸는 과정이기도 하다.

참고) 편의점보다 건설업체가 더 많은 나라

건설노조 때리기는 도움 안 된다

2023년 7월 기준 9만 개에 달하는 건설업체의 상당수는 도급만 하는, 그러니까 직접 건설 시공을 하지 않고 중간에서 돈만 떼어가는 페이퍼컴퍼니다. 페이퍼컴퍼니는 '건설업 등록기준'에 미달하거나 건설업 관련 먼허를 불법 대여하여 등록하는 부적격 건설사업자이지만 정부의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가만히 있는 마당에 전문 건설업체와 단체교섭을 벌여 건설 노동자의 직고용을 추진하는 건설노조가 페이퍼컴퍼니들에게는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다. 전문 건설업체 역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기준 등을 지키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부정적이다.
 
지난 2월, 487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건설노조 덕분에 안전한 현장 만들어 지난 2월, 487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건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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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할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 때리기에 누구보다 열심이라는 점이다. 정부 역시 건설 산업이 "불법 재하도급 등에 의한 공사비 하락 및 다단계 도급구조로 인한 ▲낮은 임금 및 복지수준 ▲낮은 고용안정성 ▲높은 안전사고 위험 등으로 청년층 취업 기피 및 고령화가 진행 중"(국토교통부 보도자료)이라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건설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건설노조를 '약탈집단' '독버섯'으로 규정하고 건설노조 활동을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노조 탄압에 앞장서 왔다. 정부의 막무가내 노조 탄압에 항거하여 지난 5월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분신했다.

건설산업을 건강하게 만들고, 건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에 정부와 노조가 따로일 수 없다. 오히려 마주앉아 대화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부실시공 사례는 끊이지 않아 불안감은 높아지고, 매일 1.5명의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사망하는 현실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건설 산업의 특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가에서 건설 노동자가 일용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건설 노동자의 약 80%가 정규직에 해당한다. 결국 각 사회에서 어떻게 산업과 노동자의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달라지는 문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불어삶 홈페이지(www.livewithall.org)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건설업,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고용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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