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복합상영관 이른바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단관극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우리나라에 있던 모든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다. 이름도 모두 달랐던 단관극장들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람들의 '영화 볼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극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개발 논리와 대형자본의 위협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버텨내고 있는 극장,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연재는 노회찬재단과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함께 기획했다.[기자말]
 안동중앙아트시네마. 현재 144석 단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동중앙아트시네마. 현재 144석 단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권지현

 
안동 중앙아트시네마는 이름처럼 안동 시내 중앙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상점이 늘어선 거리에서 극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그맣게 이름을 내걸고 있어 무심코 지나치면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사람들은 온다. 그 말은 대부분의 관객이 알고 찾아온다는 것. 중앙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가까운 영화관이 이곳뿐이어서 찾아온다. 그렇다. 안동 중앙아트시네마는 경북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이다. 한철희 대표는 1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운영자다.
 
"그냥 영화가 참 좋았어요"
 
1994년 직장 때문에 안동으로 오게 된 한철희 대표는 안동 시내 영화관을 돌아다니며 영화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때 안동 시내에는 단관극장 5개가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보러 다니고, 그러다 보니 영화 관련 시민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고, 영화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영화보기운동, 인권영화제 같은 작은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면서 영화관 언저리를 맴돌다가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중앙아트시네마 운영을 맡았다.
 
"이 영화관이 2000년에 문을 열었거든요. 그때는 '중앙극장'이었어요. 박찬욱 감독의 < 공동경비구역 JSA >가 첫 상영작이었어요. 그리고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연속적으로 개봉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으니, 그때가 단관극장의 최고 전성기였죠.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2004년 3월 멀티플렉스가 안동에 들어왔어요. 당연히 단관극장들은 어려워졌지요. 근근이 버티던 영화관들도 하나, 둘 문을 닫더라고요.

여기도 존폐의 위기가 왔죠. 그런데 전화위복이랄까, 2009년에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주목받으면서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거든요. 그에 맞춰서 정부에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지원하는 정책을 내놨고, 저희도 그 지원을 받아서 2009년에 예술영화전용관인 '중앙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관하게 됐죠."

 
 한철희 대표. 그저 영화가 좋아서 10년째 ’중앙아트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다

한철희 대표. 그저 영화가 좋아서 10년째 ’중앙아트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다 ⓒ 권지현

 
'중앙아트시네마'라는 이름도 한철희 대표가 직접 지었다. 예술영화전용관이라는 정체성이 묻어났으면 해서였다. 개관 후 한동안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꾸준했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들을 이곳에서는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긴 어게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중앙아트시네마에는 다시 위기가 닥쳤다.
 
"그때는 영화 보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안 있으니까, 멀티플렉스에서도 평점이 좋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내걸기 시작하는 거예요. 관객이 몰린다 싶은 작품은 다 가져다 상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또 힘들어졌죠. 그러고 나서 또 힘들었을 때는 박근혜 정부 때였는데, 당시에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벨> 같은 영화들이 나왔거든요. 그걸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을 안 하니까 예술영화관들이 상영했는데, 저희도 상영을 했죠. 그런데, 그것 때문인지 다음 해에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에서 탈락이 된 거예요. 그때 저희 말고도 지방 극장 몇몇 곳이 탈락했어요.

사실 저희 같은 예술영화관은 관객 수만으로는 운영이 안 되거든요. 당장 첫해에 존폐를 고민해야 할 만큼의 적자가 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어떻게 사비로 겨우 막아냈는데, 그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문을 닫아야 겠다 했더니, 건물 임대차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던 거예요. 거기에 묶여서 또 좀 더 운영하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문 닫지 않고 오늘까지 오게 됐네요. 지금은 다시 '예술영화관 운영지원사업'을 통해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예술영화전용관은 지역문화의 허브이자 문화 전진기지"
 
 영화상영표. 중앙시네마 프로그래머 윤동희씨가 매주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

영화상영표. 중앙시네마 프로그래머 윤동희씨가 매주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 ⓒ 권지현

 
중앙시네마에서는 때마다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어떤 주제에 맞는 영화를 묶어 상영하기도 하고, 감독초청 기획전을 열기도 하며, 사회적 이슈에 따른 다양한 영화를 찾아서 상영하기도 한다. 그러면 반드시 누군가는 영화를 보러 온다.
 
"아마 2014년이었을 거예요. 제가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한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었어요. <반고흐:위대한 유산>이라는 영화였는데, 제가 좋아서 그냥 꾸준히 상영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겠다고 마산에서 오고, 울산, 전라도 남원같은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막 찾아오는 거예요.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상영하는 곳이 여기밖에 없다면서 찾아와요. 거기에서 사명감을 느끼는 거죠. 예술영화관의 존재 이유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보여주고, 다양한 영화를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 결국 시민과 창작자 간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거 아니겠어요."
 
한철희 대표는 단순히 관객이 없다고 예술영화관의 문을 닫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지역의 문화를 창출하고 담론의 재생산 역할을 하며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의 장이 되는 공간이 바로 예술영화관이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도 처음에는 이런 작은 영화관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예술영화관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면 영화든 인연이든 뭐든 만들어내는 공간이 된다.
 
"지금 여기에는 '월영모'라고 해서 '월요일 아침에 영화보기'로 시작한 모임이 있는데, 지금은 '시네마 다방'이라는 이름으로 3기가 활동 중이고요. 그전에는 주말 심야극장이라고 해서 영화 마니아들이 모여서 원하는 영화를 보는 모임도 운영한 적 있어요. 참 그러니까 생각이 나는데, 2015년에 <어린왕자>라는 영화를 상영했는데, 그날 관객이 두 사람이 왔어요.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 두 분뿐이라서 영화 끝나고 어땠냐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보내드렸는데, 한참 지나서 어느 날 두 분이 함께 영화관에 온 거예요. 손잡고. 둘이 결혼을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놀랍고 좋던지. 그래서 프러포즈할 때도 영화관 전체를 꾸며서 이벤트를 했지요."
 
영화관이 이어준 인연은 그 남녀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중앙시네마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또한 극장 관객으로 만나서 같이 운영에 뛰어들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은 관객과 결혼을 했는가 하면 영화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함께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성과와 극장 운영은 다른 문제다. 코로나 이전까지 연간 6만 명 가까이 되던 관객수는 코로나 이후 2만 명까지로 떨어졌고, 코로나를 거치며 OTT 등 미디어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이제 운영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그래서 지자체와 함께 영화를 매개로 한 여러 가지 문화 사업을 기획하며 또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예술영화관은 관객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관공서와 협업을 많이 시도하는데, 담당자를 설득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예술영화관은 영화를 단순히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다. 사회적 담론을 가진 영화를 가지고 지역의 이슈와 담론을 재생산하는 지역 담론기지의 역할을 한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는 것을 매개로 우리 사회가 갈망하고 갈증하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문화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끝으로 한철희 대표에게 '예술영화전용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물었다.
 
"영화, 영상이라는 것을 통해 지역사회 나아가서는 우리사회의 아젠다를 재생산하는 기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예술영화관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생산해 내고, 지역의 영화, 영상인들이 서로 연결돼 창작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문화 저변확대의 중심이 되는 곳이죠. 반드시 필요한 공간입니다. 공간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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