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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기사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 분석 ①"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55차 한미 SCM 공동성명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내용은 유엔사령부(아래 유엔사) 관련 내용이다. 이전 한미 SCM 공동성명에도 유엔사 관련 내용은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사안이었지만 정전체제와 한반도 평화의 유지자 정도 수준에서 언급되던데 반해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기술 분량도 대폭 늘었고 이전에 없던 내용이 담겼다.

우선 유엔사를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가능케하는 국제연대의 모범"으로 위상을 상향시켰고 "유엔사 회원국간의 연합훈련 확대와 상호운영성 강화방안을 모색할 것"이라 밝혔다. 이에 더해 "유엔사 회원국의 확대를 모색한다"는 내용도 추가되었다. 한미 SCM 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에는 사상 처음으로 '한·유엔사 국방장관회의'가 열렸는데 참석한 17개국 회원국의 대표들은 유엔사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한반도에서의 안보위협 상황시 공동대응을 선언하고 이를 위해 한미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연습과 훈련의 활성화와 협력을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의 산하 조직 아닌 유엔사

유엔사는 그 명칭에서부터 존재의 근거까지 문제가 많은 조직이다. 유엔사 창설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직후 유엔이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인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 제84호'에 근거한다. 그러나 결의안에는 유엔사령부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합중국 산하 통일된 지휘부'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중심의 통합군에 유엔이라는 외피를 사용하기를 바랐고 자의적으로 유엔사령부라 이름지었다.

유엔사가 유엔 산하의 조직인가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되었다.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공산권측 결의안(3390B)과 서방측 결의안(3390A)이 통과되었는데 서방측 결의안이 정전체제를 대신할 대안을 마련한 뒤 유엔사를 해체하자는 조건부 결의안이긴 했으나 유엔사 해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동의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유엔총회에서 유엔사가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한 미국정부는 1975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타 당사자(북한 및 중국 등) 직접 관계자들이 정전협정 유지를 위해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정부는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이라고 밝혔으며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재차 확인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미국은 유엔사를 존속시켰으며 1994년 북한이 재차 유엔사 해체와 관련해 유엔에 문제제기를 하자 당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북한에 보낸 서한에서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안보리의 산하기관이 아니며 어떠한 유엔기구도 주한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 외 유엔사의 지휘체계가 유엔사령관-미국 합참의장-미국 국방부장관-미국 대통령으로 되어있는 점, 재정적 측면에서 유엔의 예산으로 운영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유엔사가 유엔 산하 조직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시 부활하는 유엔사

이런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며 그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넘어가며 군사정전위원회의 당사자로 정전협정의 관리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정전위원회의 또 다른 당사자인 북한이 1994년 4월 28일 북한군측 대표를 철수하고 이어 같은해 9월 2일 중국도 중국군 측 대표를 철수함으로써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의 협의체인 군사정전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유엔사의 존재이유는 더욱 불명확해졌다.

이렇듯 유명무실하던 유엔사에 다시 숨이 불어넣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미국이 '유엔사의 재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고 한 차례 연기된 전작권 이양 시점이 2015년 12월로 정해진 상황에서 미국이 새로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전작권이 전환될 경우 한미연합사의 지휘구조가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맡는 구조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사령관직을 유지할 수 있는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지휘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명확했다.

조직을 확대하고 미군 일색이던 사령부를 다국군화하기 시작했다. 캐다다, 영국 등 장성이 유엔사 부사령관에 임명되기 시작했다. 유엔사가 유엔의 외피를 쓴 미국의 군대라는 것을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전작권 전환이 언제 될지 난망한 상황이지만 만약 전작권이 환수되고 미래연합사의 사령관이 한국군 장성이 될 경우 유엔사령관과의 지휘권 충돌로 지휘관계의 난맥과 혼란이 예상된다. 지금처럼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이 동일 인물인 상황이 유지된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에 발목 잡는 유엔사

유명무실한 유엔사였지만 유엔사가 힘을 발휘하는 영역이 한 곳 있었다. 그건 바로 한국이다. 2018년 남북, 북미 정상의 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평화정세 속에서 유엔사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8년 8월 남북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남북철도협력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서울역에서 신의주까지 운행점검을 하려하자 유엔사는 이를 불허했다. 이유는 사전통보시한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군사분계선을 출입하기 위해 48시간 전에 계획서를 보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였다. 정부관계자에 따르면 남북 간 협의과정이 길어져 하루 전에 통보했는데 이전에도 군사분계선 출입계획 제출시한이 늦었다는 이유로 불허가 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2002년에도 있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남북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사업 개통을 앞두고 비무장지대 지뢰제거작업을 하려하자 유엔사가 엄격한 승인절차를 요구해 무기한 중단된 바 있으며 금강산 육로 관광 임시도로 개통식, 개성공단 착공식 등 과정에서도 민간인의 군사분계선 통과에 문제를 제기하며 발목을 잡았다.

일본까지 끌어들이며 확장하는 유엔사의 우려스러운 행보

이번 한미 SCM과 한-유엔사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미국이 추진해 온 '유엔사 재활성화'가 내부를 넘어 외부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유엔사 확대의 우선적 국가로 일본이 지목되고 있다. 일본에는 유엔사의 후방지원기지 7개가 운영되고 있고 2018년 6월 개정된 '유엔사 관련 약정 및 전략지침'에는 유엔사의 전력제공국 정의를 "유엔 안보리 결의에 근거해 유엔사에 군사적·비군사적 기여를 했거나 할 국가"로 규정했다.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일본도 전력제공국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협력에 공을 들이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데 최대 억제 요인"이라 평가한 바 있고 앤드루 해리스 유엔사 부사령관도 "일본의 유엔사와 관련한 역할 확대를 검토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유엔사 참여는 세계를 향해 확장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에 한반도가 직접적으로 포함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북한은 "조선반도의 안보 지형이 전쟁 지향적 구도로 더욱 확고히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미국 주도의 다국적 전쟁도구로 부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중국도 "(유엔사는)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라 지적하며 "관련 국가가 '유엔군' 간판을 내걸고 회의를 여는 것은 대결을 야기하는 것이요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며 한반도 형세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운영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평화에 역행해왔던 유엔사를 강화확대하기로 한 이번 한미 SCM과 한-유엔사 국방장관회담 결과가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 분석③에서 이어집니다.)

* 2018~2023 한미 SCM 공동성명 주요내용 정리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https://docs.google.com/document/d/1vBBs7UbYqTAv1Nl9x46vP2QHkXxs0GZ8VhyodE84HXg/edit?usp=sharing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유엔사령부, #한미SCM, #유엔사후방기지, #한미동맹,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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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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