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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편집자말]
신안군 증도의 서북쪽 방축리. 예로부터 이곳에선 "큰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가 전해왔다. 더러 "보물선이 묻혀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1975년 8월, 방축리 앞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화병(靑磁花甁) 등 6점의 자기가 걸려 올라왔다.

예전에도 더러 도자기가 인양됐지만 여기저기 내팽개치거나 멸치 동이, 개밥그릇, 재떨이로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청자화병은 색깔과 모양새가 달랐다. 어부는 표면에 달라붙은 굴껍데기를 떼내고 집에 잘 보관했다. 나머지 5점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우연히 어부의 그물에 걸린 중국 청자 

몇 달 뒤인 1975년 가을 어느 날, 어부의 동생 최평호씨가 고향인 증도에 들렀다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 최씨는 무안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최씨는 무언가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청자화병을 건네받아 목포로 가져갔다. 방학하면 다음 해 1월 초에 전남대박물관이나 신안군청에 신고를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일부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유물 신고 접수는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는 동안 형이 지인들에게 선물한 도자기 5점을 모두 되찾았다. 이런 수고 끝에 1976년 2월 문화재관리국에 유물 6점을 신고할 수 있었다.

문화재관리국은 곧바로 문화재위원회를 개최했다, 모두 중국 원(元)나라 도자기로 판명되었다. 최씨는 정부로부터 12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청자화병 100만 원, 나머지 5점 20만 원이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도굴꾼들에게도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다.

1976년 10월, 목포경찰서는 방축리 해역에서 청자를 불법 인양한 일당을 검거했다. 도굴범 3명을 검거하고 4명을 지명수배했다. 그들로부터 입수한 도자기는 122점. 이들은 3톤짜리 잠수선을 동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문화재관리국은 청자 발견 지점에서 반경 2km 이내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어로 행위와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본격 발굴에 들어가기로 했다.

당시 국내 고고학계는 수중 발굴 경험이 전무했다. 당연히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중고고학 인력도 전무했다. 해군에 도움을 청할 도리밖에 없었다. 문화재관리국은 해군 해난구조대(SSU)의 지원을 받아 1984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수중발굴을 진행했다. 국내 첫 수중발굴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수심 20~25m, 조수간만의 차 4m, 평균 유속은 2,5노트. 20cm 정도만 들어가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계(視界)가 나빴다.

그럼에도 바닷속은 놀라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난파한 배가 침몰해 있었고 그 안에 진귀한 유물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거대한 배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바닷속 펄층에 박혀있던 상태였다. 바닷물에 노출된 갑판 이상 부분은 오래되어 부서지고 사라져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펄층에 묻혀 있는 부분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발견 당시의 배는 길이 28.4m, 폭 6.6m, 깊이 3.6m였다. 원형은 길이 30.1m, 폭 10.7m, 깊이 4m로 추정된다.

700년 전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240톤급 무역선

이 배는 1323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를 출발해 일본 하카타(博多)와 교토(京都)로 향하던 원나라의 무역 범선(帆船)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중국 도자기 2만여 점과 동남아시아산 자단목(紫檀木) 1017개, 금속 공예품, 목칠기, 유리제품, 석제품, 골각제품, 먹,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와 후추, 차와 약재, 각종 과일 씨앗 등 다양한 무역품과 생활유물 2만4000여 점이 나왔다. 여기에 28톤에 이르는 동전(약 800만 개)도 건졌다. 물건을 운반하는 데 사용한 상자와 포장자료, 상자에 붙어 있던 목찰(木札, 나무 화물표) 360여 점도 함께 나왔다.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14세기 중국 무역선 신안선.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14세기 중국 무역선 신안선.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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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선과 함께 발굴된 중국 도자기들이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신안선과 함께 발굴된 중국 도자기들이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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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발굴이었다. 그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출수 유물들의 면면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특히 당시의 무역 규모, 교류 양상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목찰에는 도후쿠지(東福寺)와 같은 일본 사찰 이름, 하치로(八郞)와 같은 일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자기를 보면 중국 저장성 룽취안요(龍泉窯) 청자가 60% 정도였고 각종 주전자, 다완(茶碗), 다호(茶壺), 다합(茶盒) 등이 다수였다. 14세기 일본인 귀족이나 승려들이 중국의 룽취안요 다구(茶具)를 애용했음을 말해준다.

이 배는 발견 지점의 이름을 따 '신안선(新安船)'이라 명명되었다. 국내 최초의 수중 발굴은 대성공이었다. 증도는 발굴이 진행되는 9년 동안 늘 뉴스의 중심이었다. 신안선과 출수 유물의 보존처리와 관리를 위해 전용 공간과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1981년 해양유물보존처리장이 생겼다. 그런데 그 장소는 신안이 아니라 목포였다. 신안으로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최종 낙점은 목포였다. 신안으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보존처리장은 지금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발전했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해양유물전시관에 가면 신안실이 있다. 신안선과 출수 유물을 함께 전시하는 공간. 전시실에 들어서면, 신안선의 거대함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의 여러 박물관에 귀중한 유물들이 즐비하지만 그 장대함과 육중함에서 신안선을 따라갈 만한 유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에 있는 해저유물발굴기념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에 있는 해저유물발굴기념비.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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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수중고고학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 시발점은 신안선 발굴이었다. 방축리의 발굴해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수백 년 해저에 잠든 문화사의 보고를 알려준 어부의 갸륵한 마음과 파도와 해풍에 시달리면서 발굴에 참여한 조사요원들과 23m가 넘는 캄캄한 심해의 급한 해류 속에서 고난을 무릅쓰고 유물 인양에 참여한 해군 심해 잠수사들의 그 정성과 노고를 잊을 수 없다."

기념비가 서 있는 곳은 증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기념비 바로 뒤는 급경사 낭떠러지. 바람도 거세다. 이런 지세만으로도 당시의 수중발굴이 얼마나 고난도 작업이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발굴 지점에는 어부가 처음 발견했던 중국 청자화병 모양의 부표를 설치해놓았다. 기념비 옆 전망대에 서면 그 부표가 뽀얀 점으로 보인다.
 
해저유물발굴 해역이 보이는 전망대. 멀리 도자기 모양의 부표가 떠있다.
 해저유물발굴 해역이 보이는 전망대. 멀리 도자기 모양의 부표가 떠있다.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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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아래쪽 도로변엔 '700년 전의 약속'이라 새겨진 큼지막한 안내 표석이 보인다. 그 옆으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면 바위섬에 '트레져 아일랜드'(보물섬)라 쓰인 배 모양의 건물이 있다. 신안선을 형상화한 카페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고 신안선 관련 자료(유물 복제품, 사진 등)를 관람하는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휴업 상태다.

신안군 관계자에게 들어보니 "개인 사업자가 카페를 중심으로 이곳을 관광자원화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방축리 현장에 신안선 발굴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다면 바람직할 텐데, 지금 상황이 못내 아쉽다.

이 대목에서 신고자인 최평호 씨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른다. "1970년대에는 마을 주민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했어요. 우리 형님도 밤낮으로 불려다니고, 마을 집 모두 수색하고 그랬다는 거예요. … 아무튼 그걸로 인해서 도로가 넓어지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우리 시골이 발전한 겁니다. … 중국하고 우리가 수교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신안선 문화재로 인한 인적 교류가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어요."(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대한민국 수중발굴 40년 특별전')

재밌고 친근한 짱뚱어... 증도 갯벌과 천생연분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짱뚱어다리가 있다. 짱뚱어다리와 그 주변은 증도 갯벌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짱뚱어다리는 순비기전시관과 짱뚱어해수욕장, 우전해수욕장 사이의 갯벌을 가로지르는 470m 길이의 목교(木橋)다. 현재는 기존 다리를 철거하고 새 다리를 다시 세우고 있다. 2024년 3월 말 공사가 마무리된다.
 
신안군 증도의 갯벌을 가로지르는 짱뚱어다리. 석양 풍경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새 다리로 교체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마무리된다.
 신안군 증도의 갯벌을 가로지르는 짱뚱어다리. 석양 풍경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새 다리로 교체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마무리된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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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어해수욕장과 우전해수욕장은 에머럴드빛 바다와 뽀얀 모래밭, 세련된 파라솔이 어우러져 마치 태평양의 휴양지 느낌을 준다. 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해송숲이 있다. 1960년대 증도 주민들은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 그것들이 무성하게 자라 지금의 해송숲이 되었다.
 
이국적 이름다움을 자랑하는 짱뚱어해수욕장
 이국적 이름다움을 자랑하는 짱뚱어해수욕장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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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둥어다리 인근 해변길에 조성된 한반도 모양 해송숲.
 짱둥어다리 인근 해변길에 조성된 한반도 모양 해송숲.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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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어다리의 순비기(허브 식물)전시관쪽 입구에는 짱뚱어 조형물이 서 있다. 해수욕장 탈의실 건물에도 짱뚱어가 그려져 있다. 머리 위로 불쑥 솟아오른 두 눈. 짱뚱어는 이름도 재미있고 생김새도 재미있다. 영화 <자산어보>(2021년 개봉)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것이 뭐냔 말이다."(정약전, 설경구)
"짱뚱언디 저건 잡아가지고 닭이나 주지 우리들은 안 먹어라."(창대, 변요한)

"못 먹는 것이냐?"(정약전)
"묵어도 죽진 않것지유. 닭도 먹고 돼지도 먹응께."(창대)

"짱뚱어라. 이를 한자로 기록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정약전)
"눈구녕이 툭 불거졌응께 눈구녕 갖고 이름을 붙이면 되것지라."(창대)

"옳거니. 불룩한 철자에 눈 목자. 철목어(凸目魚) 어떠냐. 하하."(정약전)


영화 속에서 짱뚱어는 정약전이 최초로 한자 이름을 지어준 물고기이다. 흑산도에 짱뚱어가 등장하는 장면은 허구다. 흑산도에는 갯벌이 없어 짱뚱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준익 감독은 짱뚱어를 등장시켰다. 짱뚱어의 대중성과 상징성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적으로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짱뚱어가 제일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증도 짱뚱어다리 초입에 서 있는 짱뚱어 조형물.
 증도 짱뚱어다리 초입에 서 있는 짱뚱어 조형물.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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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갯벌에서 살아가는 짱뚱어
 청정갯벌에서 살아가는 짱뚱어
ⓒ 국립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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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어는 청정 갯벌에서만 산다. 두 눈이 불룩 솟아있고 가슴과 등에 큼지막한 지느러미가 있다. 썰물 때는 펄에서 지내고 밀물 때는 구멍 속에 들어가 산다. 물속에서는 아가미 호흡을 하고 물 밖에서는 피부호흡을 한다.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갯벌 바닥을 기어 다닌다. 물고기인데 물보다 갯벌을 더 좋아하는 짱뚱어. 갯벌과 짱뚱어는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다. 갯벌의 고장 신안과 증도에 딱 어울리는 물고기인 셈이다.

짱뚱어는 11월 말이나 12월 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1m 깊이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 신안군 관계자는 "날씨가 추우면 짱뚱어의 겨울잠 시작 시기가 빨라진다"고 알려준다.

이렇게 잠이 많아 잠둥어라 불렀고 그것이 짱뚱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짱뚱어는 동면에 들어가기 전인 8~10월에 영양분을 많이 비축한다. 그래서 이때 잡은 짱뚱어가 가장 맛있고 영양이 풍부하다. 이제 12월이 코앞이다. 짱뚱어가 겨울잠에 들기 전에 서둘러 증도에 가면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문지혜, 〈짱뚱어 조직의 호흡대사 및 항산화 활성〉, 청주대 대학원 생물학과 석사논문, 2006
이은윤, 〈신안문화재 발굴인양의 총결산〉, 《세대》 1979년 9월호
정양모, 〈신안해저유물발굴의 중간보고〉, 《신동아》 1978년 10월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한국의 보물선 타임캡슐을 열다》, 공명, 2016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대한민국 수중발굴 40년 특별전》, 2016


태그:#신안, #증도, #신안선발굴, #갯벌, #짱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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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고 현재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들이 문화유산과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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