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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 열풍'이 분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지난 10년 동안 제주를 떠난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진짜 삶이 궁금해 직접 인터뷰에 나섰다.[기자말]
요즘 제주도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름마다 하얀 억새가 피어 오르고 감귤이 노랗게 물들어 간다. 해양성 기후라 봄과 가을이 육지보다 길고 일교차가 적어, 훨씬 온화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여행하기에 제격인 시기지만 요즘 제주도 경기는 심상치 않다. 코로나로 웅크리고 있던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가 아닌 해외 여행지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지낸 지 십 년이지만, 경기를 유독 많이 타는 게 관광업이다 보니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다. 이번 불황은 또 얼마나 지속될까. 물가가 너무 비싸다, 같은 돈이면 해외로 간다, 제주도에 볼 게 없다는 등등. 기다렸다는 듯이 제주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나 댓글을 볼 때면 제주도민인 내 마음은 더 쪼그라든다.

이런 고민 속에 10년차 이주민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9년째 1인 여행사인 '찰쓰투어'를 운영하고 있는 양성철(39)씨다. 누구보다 제주의 속살을 알리는데 앞장서 온 분이니, 혜안을 갖고 있지 않을까. 눈부신 가을날 성철씨와 만나, 지난 십 년의 시간과 제주 관광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하기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길에서 제주도 1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양성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길에서 제주도 1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양성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양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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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년 전 제주에 어떻게 오셨는지가 궁금해요.

"일찍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이십 대 내내 경호 일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 대학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면서 열심히 살았죠. 십 년 정도 일하고 나니 서른이었어요. 서른이 되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안정적일 줄 알았는데, 스물아홉과 서른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다른 일은 해본 적도 없고, 경호 일은 몸이 성치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앞날이 걱정됐어요. 이 일을 그만 두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겠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2005년쯤에 '서귀포 유채꽃 국제걷기대회'에서 경호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 일이 아니라 참가자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른에 그 생각이 나서 휴가를 내고 제주에 왔어요. 그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게하) 사장님께 물었어요. 여행자들이 파티하는 공간이 낮에는 비어 있는데, 이 공간에서 조식이나 도시락을 만들어서 팔아도 되냐고요. 사장님은 선뜻 가스비, 전기요금만 내고 쓰라고 하셨어요.

먹고살 게 생기긴 했는데, 결정적으로 제가 요리를 할 줄 몰랐어요.(웃음) 부산 집으로 돌아가서 두 달 동안 요리학원 다니고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제주로 갔죠. 제가 다시 온 걸 보고 사장님이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그때 게하를 맡아서 운영해보라고 제안을 하셔서 하겠다고 했어요."

-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특별해 보여요. 다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데, 오히려 리스크가 큰 일에 도전하신 거네요?

"훌쩍 떠나도 크게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대로 살면 40대가 됐을 때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살 것 같더라고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고, 할 줄 아는 게 많았으면 했어요. 제주에서 이런저런 일을 참 많이 했어요. 비수기에 손님 없으면 목공일도 하고, 양어장에서 일하기도 했죠. 시골이라 문제가 생겨도 바로 해결할 수가 없으니, 직접 해야 하는 게 많았어요. 의자가 부서지면 고쳐 쓰고, 하수구가 막히면 땅 파서 뚫고, 누전이 되면 전선을 끊어서 연결하고. 그런 경험들을 하는 게 참 재밌었어요."

- 그렇게 게하 일을 하다가 갑자기 1인 여행사를 시작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입퇴실 시간이 따로 없고 상시 픽업을 해주는 게하에서 일을 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나 휴일이 따로 없었어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죠. 작더라도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행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특히 제주는 섬이라 날씨가 변덕스러워요. 너무 덥거나 추워서,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다니지 못하는 걸 자주 봤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제가 데리고 다니고 싶더라고요. 여행을 와서 아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게 안타까웠어요.

게하 일을 정리하고 한 달 간 태국, 라오스 여행을 했는데, 거기서 체험 투어나 원데이 투어 같은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게 제주에서도 가능할까 싶었죠. 다녀 와서 몇 달 고민을 하다 1인 여행사를 시작했어요.

시작은 했는데 홍보가 뭔지 몰라서 많이 헤맸어요. 숙소 돌아다니면서 전단지 돌리고, 각종 SNS, 블로그 할 수 있는 건 전부 열어서 게시물을 올렸죠. 매일 해도 반응이 없어서 접어야 하나 했는데, 딱 3개월 지나니까 조금씩 반응이 오더라고요."

비자림만 약 700번 방문, 그런데도 갈 때마다 달라요 
 
양성철씨가 단풍이 가득한 거리에서 가족과 함께 걷고 있다.
▲ 단풍과 가족 양성철씨가 단풍이 가득한 거리에서 가족과 함께 걷고 있다.
ⓒ 양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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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을 하는데 왜 투어를 하고,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손님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 '왜 가이드가 필요한지 알겠다'고 하세요. 하지만 여전히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죠. 계속 그 선입견과 싸우고 있어요. 가이드는 이야기꾼이에요. 인기 없는 곳에 가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손님이 볼 게 없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도, 좋은 계절에 다시 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가이드인 것 같아요.

한 번 가본 곳은 다시 안 가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는 비자림만 600~700번을 갔어요. 그런데 갈 때마다 달라요. 시간대별로도 다르고, 날씨나 계절에 따라서도 너무나 달라요.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지고 열매가 열리고. 비자 열매가 땅에 떨어져서 탐방객들한테 밟히는 계절이 되면, 정말 짙은 향이 나요. 그런 걸 아느냐 모르느냐, 또 설명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서도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게 많이 달라요.

2박3일 차 렌트해서 제주 한바퀴 돌고는 '다 봤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제주 여러 번 와서 안 가본 곳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데 제 단골 중에는 투어만 60번 이상 하신 분도 계세요. 제가 기획하는 투어를 거의 다 하신 거죠. 제주를 정말 사랑해서 계절별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걸 보면 새로운 상품을 계속 개발하고 소개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 십 년 동안 제주 경기도 요동쳤기 때문에 버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최근에 또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죠. 제주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분으로서,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 십 년 동안 무슨 사건만 일어나면 제주 경기가 나빠졌어요. 강남 한복판에서 사건이 벌어졌다고 사람들이 강남에 가지 않는 건 아닐 텐데. 제주도는 무척 넓은 섬인데도, 무슨 사건만 벌어지면 마치 제주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거든요. 현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쓰는 기사나 댓글을 볼 때도 많이 속상해요.

여행객들을 뜨내기 손님 취급하는 곳도 큰 문제죠. 한 번만 왔다 가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비싸게 받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해요. 정직하게 장사하는 분들도 많은데, 몇몇 업체 때문에 그렇게 비춰지는 게 참 안타까워요.

이렇게 불황이 심할 때는 마케팅 업체나 홍보 대행업체만 잘되는 것 같아요. 블로그나 SNS, 포털 상단에 노출해주면서 돈을 받거든요. 장사가 안 돼서 홍보비를 늘리면,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 지갑에서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또 물가가 올라서 욕을 먹죠.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1인 여행사의 장점은 망해도 혼자 망한다는 것 

- 코로나 때 무척 힘드셨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불황 속에서 계속 투어를 개발하고 계세요. 제주관광공사나 제주 매거진 '인(iiin)'과도 협업 투어를 하셨죠. 이렇게 끊임없이 기획하는 원동력이 뭘까요?

"투어 특성상 여럿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 때 참 힘들었어요. 당장 일이 없다고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면, 나중에 바빠졌을 때 너무 후회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미뤄둔 공부를 하면서 나름 알차게 보냈어요. 자연환경 해설사, 국내 여행 안내사, 드론 자격증도 따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치렀어요.

요즘 여행사들은 상품 기획을 거의 안 해요. 보통 렌트, 숙박, 항공권 팔아서 수수료 남기고 끝이거든요. 그건 여행업이 아니라 중개업에 가깝죠. 여행업은 여행자를 위해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주 관광 타깃층을 늘리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어요. 맥주투어, 김밥투어, 웰니스투어, 건축투어 등. 1인 여행사다 보니 망해도 저 혼자 망하니까,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여행이라는 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저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요. 그 마음을 사업자들이 이익 남기는 데에만 이용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여행에서 더 풍족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계속 새로운 기획을 하게 돼요."
 
양성철씨 차량에 '인생은 짧고 휴가는 더 짧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양성철씨 차량에 '인생은 짧고 휴가는 더 짧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양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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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십 년 동안 적잖은 내공이 쌓이신 것 같아요. 계속 제주에 있으실 건가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이전보다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은 아직 모르지만, 다양한 것들을 하다 보니까 힘들 땐 '뭐라도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아직 제주가 좋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서 떠날 마음은 없지만, 만일 떠난다면 관광으로는 황무지인 곳을 가보고 싶어요. 저는 기획을 좋아하니까, 그런 곳에서 관광이 될 만한 걸 뽑아내고 스토리텔링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성철씨를 보면서, 흔히 말하는 리스크란 무엇인가에 대해 돌아본다. 리스크가 없는 삶이 존재할까. 코로나 같은 급작스러운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리스크를 피하는 법, 리스크가 생기더라도 유연하게 넘기는 법은, 결국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다른 에너지가 나온다. 반짝이는 눈, 생생한 표정,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아이디어. 여행을 잘 모르고 제주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여행 전문가가 되어 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만큼 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열정과 진심이라면 위기도 기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적을 만들어내는 건 아무래도 꾸준한 정성인 것 같다.

태그:#제주도, #10년차이주민인터뷰, #관광, #여행,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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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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