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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버스 운전사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시리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회사로 출근해 버스를 운행한다. 그의 버스는 매일 같은 노선을 돈다.

점심 시간엔 폭포가 아름다운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고, 퇴근하면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러고선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잠깐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잔다. 이토록 예측 가능하고 변수가 없는 삶을 패터슨은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패터슨이 시를 쓴다. 그는 출근길을 걸으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버스 운행을 시작하기 전 핸들에 공책을 펴놓고 펜을 꺼내 시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쓰다 만 시를 마저 쓴다. 그렇게 그의 비밀노트에는 시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패터슨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패터슨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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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리얼을 먹다가 본 네모난 성냥갑과 그 안에 든 성냥이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의 사랑스런 아내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버스를 운행하는 일이 시가 되기도 하고, 버스 운행 도중에 들었던 승객들의 대화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시를 좋아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그는 자기가 쓴 시를 아내에게만 읽어준다. 그의 재능이 너무나 아까운 아내는 늘 그에게 그 비밀노트 복사본 좀 만들어 놓으라고, 언젠가 세상에 이 아름다운 시들 좀 내어 놓으라고 성화다. 그러나 스마트폰도 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패터슨은 그냥 그 비밀노트 하나에 자기가 시를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패터슨이 시를 쓰면 영화 속 화면에 시가 떠오르며 패터슨의 낭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마치 내가 그를 따라 시를 쓰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 단어, 한 단어, 더듬더듬 쓰여지는 그의 시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고르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언뜻 보기에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지만, 날마다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나누는 대화가 다르고, 마주치는 상황이 다르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에서 패터슨은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무언가를 찾아내 펜을 든다. 시를 쓰는 건, 그가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만 같다.

오늘 나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엄마, 일어나자"라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간단히 아침과 커피를 챙겨 먹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낸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와 빨래, 청소와 요리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러고서 시간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나선다.

날씨가 좋은 날엔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인다. 이후엔 병원놀이나 유치원 놀이를 하다 아이들을 씻기고 같이 눕는다. 각각 두 권씩 책 네 권을 읽어주고 불을 끄고 기도를 하고 아이들을 재운다.

내 양어깨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면 슬그머니 팔을 빼고 나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온다. 스탠드를 켜고 가계부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러다 다시 기도하며 잠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내 평범한 일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글을 쓰는 건 아름다움을 포착해 박제하는 일이다. 누가 읽어주지 않는 글일지라도, 이 글들은 내 삶이 아름다웠다는 증거가 된다. 오늘은 <패터슨>이라는 영화로 내 삶이 아름답게 반짝인 셈이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답답하고 지루하다면 글을 써 보자. 그 글은 일기가 될 수도 있고, 시가 될 수도 있으며, 편지가 될 수도 있고, 노래가 될 수도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오늘의 소박한 일상을 돌아보다 보면, 붙잡아 두고 싶은 반짝이는 순간이 보일 것이다. 그 순간을 잡아 나의 언어로 적어 놓으면, 어느새 지루하고 답답했던 삶이 유난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SNS 속 화려한 인생을 부러워하는 눈길을 돌려 펜과 노트를 꺼내 보자. 나의 일상과 나에 관해 단어를 고르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다보면 어느새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고된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글쓰기, #패터슨, #영화패터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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