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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이주 인권 활동으로 돌아본 한국 사회의 인종, 젠더, 계급 차별 이야기를 담았다. 메멘토문고/정혜실
▲ 우리 안의 인종주의 20년간 이주 인권 활동으로 돌아본 한국 사회의 인종, 젠더, 계급 차별 이야기를 담았다. 메멘토문고/정혜실
ⓒ 김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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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7월, 경기 안산지역에 공동체 라디오를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창립 준비에 바쁘던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 정혜실 본부장을 처음 만났다. 이주민방송 MWTV 대표, 경계를 넘는 아시아여성 대표를 지낸 그는 "이주민방송을 그만두면서 제주도에 내려가 나를 위한 시간도 가져보고 책도 쓰기로 했었는데, 공동체라디오가 안산에 생기면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 출범 후에는 안산지역 곳곳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단원FM 본부장으로 그는 안산을 넘어 전국으로 다니며 목소리를 내고 연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런 그가 "제주도 살기와 함께 계획했었던 책을 드디어 냈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제가 연대한 수많은 이주 인권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국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차별의 이야기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가 가진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차별의 문제로부터 파생돼 온 것인지, 오래 전부터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연대의 힘을 믿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리라고 믿는다."
정혜실씨는 현재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본부장,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이주 인권 활동으로 돌아본 <우리 안의 인종주의>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연대의 힘을 믿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리라고 믿는다." 정혜실씨는 현재 (사)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본부장,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김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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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이주민, 난민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고 만들어온 나, '정혜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지난달 15일 정 본부장을 만나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이주 인권활동가의 길을 걷다

그는 자신이 스물여덟 살이던 1994년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혼자 사는 여자'였다. 국적법상 부계주의 원칙이 사라진 1997년까지 한국사회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만 호적에 이름이 올라갔다고 한다.

"인종, 젠더, 계급 차별 등 모든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남편과 결혼하면서 느꼈어요. 처음엔 결혼하는 과정에서 느낀 차별에 대해 학문적으로 풀고 싶었는데, 더 깊이 가다 보니 시민사회단체로 오게 됐고, (시민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죠."

남편과 사귄 순간부터 그는 '양공주'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두 자녀를 키우며 소위 말하는 '다문화가정' 당사자가 된 그는 한국 사회의 젠더와 인종을 둘러싼 온갖 차별을 겪으며 이주 인권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말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보장하라고, 인간답게 살아갈 임금을 보장하라고,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서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이런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한다.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연대의 힘을 믿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리라고 믿는다." (193쪽) 
 
이주 인권 운동과 함께 미디어 활동을 해 온 정혜실 본부장은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을 준비하며 "공동체라디오가 안산에 생기면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 이주 인권 운동과 함께 미디어 활동을 해 온 정혜실 본부장은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을 준비하며 "공동체라디오가 안산에 생기면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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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과 인종에 대한 구조화된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30대 중반 나이부터 여성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이주민과 난민의 삶을 개선하려면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에도 나섰다.

미디어와의 인연은 2012년 이주민방송으로 시작됐다. 이주민방송 운영에 위기가 오면서 비상대책위에 참가하게 됐고, 2016년에는 대표를 맡았다. 2019년까지 이주노동자 집회, 시민사회 집회, 국회 토론회, 영상제작교육, 라디오제작교육, 영화제 등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오랫동안 미디어 비평 활동도 해온 그는 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통해 미디어가 재현하는 이주민의 모습, 언론의 보도 윤리, 혐오 콘텐츠 유통을 방관하는 미디어 플랫폼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한다.
 
"이주민이 관련된 사건·사고에서 굳이 국적을 밝혀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에 대한 낙인과 선입견을 강화하기도 한다.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3조에서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범인으로 단정하는 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다. 풍등을 날린 이주노동자의 신원이 언론에 낱낱이 밝혀진 때는 법원이 어떤 판결도 내리기 전이었다." (150쪽)
 
그는 또한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통해 피부색, 출신국, 체류 자격이 곧 계급이 되는 한국 사회 인종주의의 민낯을 들추어내며 "인종주의의 핵심은 '우열 매기기'에 있다"고 말한다.

임금 체불,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 불법 파견, 직장 변경 제약, 불합리한 퇴직금 제도, 열악한 주거환경 등이 개선되지 않는 건 왜일까. 그는 일부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를 '동료 시민'이 아니라, 그저 '값싼 노동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낼 때 (이 책이) '사람들에게 고민점을 던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조주의적으로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삶 속에 언제나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내 시야 밖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차별들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고 같이 공감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 이주 인권 현장에서 본 한국 사회

정혜실 (지은이), 메멘토(2023)


태그:#이주인권, #단원FM, #공동체미디어, #우리안의인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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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다문화뉴스 등에 기사를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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