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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를 떠나 다음 여행한 나라는 오스트리아였습니다. 잘츠부르크와 빈을 둘러 보았죠. 사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기 전, 저는 별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독일 남부를 둘러보았으니, 비슷한 경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오스트리아도 독일어를 사용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독일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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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스트리아를 둘러볼수록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오래 앉아 음악을 들었습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들었습니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에서 아름다운 미술 작품 속을 걸었습니다. 화려한 쇤부른 궁전을 둘러 보았습니다.

좁은 강 너머로 보이는 도시와 성의 풍경은 동화 속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도시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걱정도 상처도 잊고 며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부터도 오스트리아를 또 다른 독일 정도로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선과 일정을 줄이기 위해 굳이 오스트리아 방문을 생략할 고민도 잠깐은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기에 오스트리아는 너무도 중요한 여행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습니다.
 
쇤부른 궁전
 쇤부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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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사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오스트리아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죠. 유럽 중세의 가장 거대한 왕족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었으니까요.

1452년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3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왔죠.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의 침공에 의해 해체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오스트리아와 주변 영지를 모아 '오스트리아 제국'을 만들었죠. 오스트리아 제국에 포함되지 못한 북부 독일에서는 프로이센이 성장합니다.
 
쇤부른 궁전
 쇤부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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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남부의 오스트리아와 북부의 프로이센이 함께 통일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 지역에는 수많은 공국과 왕국, 자유 도시가 독립적으로 존재했거든요. 프로이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이 많은 지역들을 모두 통합해서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 같은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가 빠질 수 없다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는 독일 지역의 여러 국가와 오스트리아가 모두 참여한 '독일 연방'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국가가 가입한 국가 연합에 가까웠지만요.

하지만 이조차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 주도권 경쟁 끝에 해체됩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벌였죠. 전쟁은 프로이센의 승리였습니다. 패배한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 연방에서 축출되었습니다. 프로이센은 나머지 국가들을 통합해 '독일 제국'을 만들었죠.

오스트리아 제국은 위태로워졌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던 민족들 사이에도 불만이 싹텄죠. 오스트리아는 이에 헝가리인의 지위를 승격시켜 오스트리아인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죠.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연합하는, 다원적 제국으로 국가의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그렇게 서로 다른 국가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궁
 오스트리아 대통령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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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1차대전 이후 그런 목소리가 있었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차대전에 패전했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수많은 민족은 독립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이제 작은 공화국이 되었죠.

독일 제국 역시 1차대전에 패전했습니다. 독일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졌죠.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더 비슷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제국 시절과 달리, 이제는 다민족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어만을 사용하는 단일한 국가가 되었죠.

하지만 1차대전의 승전국은 양국의 통합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스트리아 통합은, 곧 독일의 팽창을 허용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이것이 독일 군국주의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연합국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오스트리아에서도 나치당이 활약하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1938년 오스트리아의 정권을 잡은 나치당은 독일과의 합병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세계 2차대전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의 팽창주의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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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역시 독일과 비슷한 운명이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도 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독일과 같이 오스트리아 영토도 네 개로 나뉘었죠.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 역시 베를린처럼 네 개로 나뉘었습니다.

해방을 맞은 오스트리아에는 그동안 나치에 저항하던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일부는 해외로 망명했다가 귀국했고, 일부는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이념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정부를 조직합니다. 좌우 합작으로 만든, 일종의 임시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래 연합국에게는 오스트리아를 새로 만들어질 독일의 남부 주로 편성할 계획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1945년 말 연합국은 오스트리아의 임시정부를 승인하죠. 연합국 지배 하에서도 오스트리아는 자치권을 행사했고, 연합국의 승인만 받으면 외국과 국교를 맺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5년, 오스트리아는 연합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합니다. 좌우 합작으로 정부를 만들었으니, 이념에 따라 분단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대신 국제사회 분쟁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죠. 오스트리아는 새로 만들어진 헌법을 통해 영세중립을 선언했습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잘츠부르크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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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이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근대 유럽에서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한 나라가 되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언어도 같고, 역사적 경험이나 문화도 유사하니까요.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결국 독립된 국가로 남았습니다. 이 나라가 있다는 것. 저는 그것이 아주 무거운 사실로 느껴졌습니다. 서로 비슷해 보이는 두 국가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전쟁과, 팽창주의와, 군국주의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는 사실이요.

연합국의 지배가 끝난 뒤에도, 오스트리아 정치에는 좌우 합작의 전통이 더 이어졌습니다. 1966년까지 거대 양당의 대연정으로 정부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대연정이 해체된 뒤에도 1990년대까지는 정부 관료에 보수정당인 인민당과 진보정당인 사민당의 인사를 적절히 배분하는 전통이 있었죠. 야당을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오스트리아가 독립된 국가를 지켜내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확장과 팽창, 통합과 전쟁을 말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중립과 합작을 추구하는 것.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도 국가를 지켜낼 수 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오스트리아가 그 존재의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기를, 저는 다만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오스트리아, #빈,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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