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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시즘. 1950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공화당 여성 당원대회에서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이 국무성 내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공개해 검거 선풍으로 이어진 일. 1954년까지 용공 시비로 퇴직한 공무원이 53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이 매카시즘은 근거 없이 반대편을 매도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21세기 판 매카시즘이 서울 한복판, 국방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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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건립된 독립전쟁 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두고 설치 위치와 장소가 적절하지 못하고, 전체 국란 극복사 중 특정 기간에 편중됐고, 그중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에 입당해 활동한 것으로 의심되는 분이라 육사 아닌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발은 심했다. 이에 육사는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네 분은 육사 구내 다른 장소로 이전하고,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 경력을 고려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경과다. 

국방부 측은 홍 장군에 대해 1919년부터 1921년까지 공산당 빨치산 투쟁을 했고, 1921년 자유시 참변에서 독립군을 사살한 의혹이 있으며, 1927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한 사실이 있어, 북한 공산당을 주적으로 교육하는 육사에 존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폈다. 

국방부 청사를 이전할 때도 문제 된 적 없던 홍범도 장군 흉상

그러나 1991년 러시아 수교 후 우리 학자들과 관계자들은 러시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수집·연구해 사실관계를 밝혔다. 홍 장군이 모스크바 원동피압박민족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고,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당 사상을 가지고 활동한 공산주의자는 아니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철저한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다. 1921년 자유시 참변에도 고려혁명군으로 편성됐지만, 주도권 다툼을 한 상해파나 이르쿠츠크파에는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것으로 확인됐다.

홍범도 장군의 이념이나 사상 문제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대통령장)을 수여할 때 심사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했고, 2015년 홍범도함 함명 검토 시에도 학계와 관련단체에서 논의했다. 2017년 국방부에서 국군의 연혁을 의병·독립군·광복군을 계승했다는 결정을 할 때도 충분히 고려했다. 육사는 홍 장군에 2018년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2022년 국방부 청사를 이전시 장군의 흉상도 함께 이전하는 데에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홍범도 장군의 사상 문제가 느닷없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부터 뉴라이트 극우 친일세력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면서 독립운동을 폄훼하려는 시도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친일세력을 건국세력으로 둔갑시켜 신분을 세탁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2018년 6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독립군과 광복군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의 107주년 기념식에서 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2018년 6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독립군과 광복군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의 107주년 기념식에서 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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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이 육사 교정에 세워진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은 광복군을 계승한다'는 원칙에 따라 초대 국방부장관으로 광복군 출신인 이범석 장군을 임명했다. 취임 후 일성은 "국군은 독립군, 광복군을 계승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헌법정신에 따라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연로한 광복군 출신이 퇴진하고 일본군 출신이 주도함에 따라 독립운동을 부인하고 1946년 조선경비대가 국군의 뿌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기부터 학계와 독립운동단체에서 역사적 사실과 헌법정신에 따라 국군의 연원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2017년 의병, 독립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사실이 복원됐다.

육사에 독립군과 광복군 지도자의 흉상을 세운 것은 국군의 연원을 분명히 밝히고, 특히 해군이나 공군과는 달리 독립운동을 부인한 육군의 각성과 결의를 보이려는 상징물이다. 육군 내의 일부 친일파 잔재들이 국란극복사를 얘기하고 홍범도 장군을 근거도 없이 공산주의라고 매도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연유된 것으로 해석된다.

무장투쟁의 근거지는 만주와 연해주였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우방이었으며 항일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적 관계였다. 경우에 따라 소련과 일본이 우호적일 때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들은 붉은 러시아든, 하얀 미국이든 도움 받을 것... 독립을 위해"

갑자기 '홍범도 장군이 6.25 남침에 가담한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경력이 있어 북한을 주적으로 교육하는 육사에 흉상을 존치할 수 없다'는 논리는 학문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는 그 시대의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분석해 판단하고 해석해야 한다. 6.25전쟁 사관을 가지고 한 세기 전의 역사를 재단한다면 올바른 연구방법이 아니다.

1920년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는 한형권을 외교원으로 소련에 파견해 임시정부 승인, 무기와 장비 지원, 혁명자금을 요청해 많은 자금을 지원받았고, 반공주의자 이승만도 1921년 안공근 등 임시정부대표단을 소비에트 정부에 파견해 지원을 받았다. 1920년 10월 24일자 <뉴욕 트리뷴>은 '일본을 추출하기 위해 조직되고 있는 백만명의 한국인'(Million Coreans Organizing to Oust Japanese)'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인의 독립 의지와 전략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해당 신문 지면 보러 가기).

"한국인이 시베리아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볼셰비키의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붉은 러시아든, 하얀 미국이든 상대를 가지지 않고 어떠한 도움이라도 받을 것이다."
 
1920년 10월 24일 <뉴욕트리뷴> 25면에 실린 '일본을 추출하기 위해 조직되고 있는 백만명의 한국인'(Million Coreans Organizing to Oust Japanese)' 기사. 빨간 네모 안에는 '한국인들은 독립을 위해서라면 붉은 러시아든 하얀 미국이든 도움을 구하려 할 것'이란 내용이 담겨있다.
 1920년 10월 24일 <뉴욕트리뷴> 25면에 실린 '일본을 추출하기 위해 조직되고 있는 백만명의 한국인'(Million Coreans Organizing to Oust Japanese)' 기사. 빨간 네모 안에는 '한국인들은 독립을 위해서라면 붉은 러시아든 하얀 미국이든 도움을 구하려 할 것'이란 내용이 담겨있다.
ⓒ 미국 의회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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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의심스럽다는 표현으로 국군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를 예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며, 매카시즘이다.

국군의 연원을 1946년 조선경비대나, 경비대사관학교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헌법정신에 따라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을 계승한 것으로 확인하고, 친일파를 건국세력으로 둔갑시키려는 뉴 라이트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우리 국군은 일본군의 후예가 아니며, 물론 미국의괴뢰군도 아니다.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자주적인 국군이라는 진정성과 자긍심을 가져야 사기를 올릴 수 있다는 대의를 인식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입니다.


태그:#매카시즘, #홍범도, #독립군 광복군, #국방부장관, #국군의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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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정년 퇴직하고 현제는 보훈처에서 지정한 현충시설에서 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세미나나 학술회의에 자주 참여하면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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