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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학미술사학과를 전공하고 미술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우리 역사 기록을 읽고 기록화 하는 과정(광주의 누정, 광주의 금석문, 광주의 옛지명, 광주의 수령들)에서 그림과 관련된 기록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과 관련된 역사 기록을 정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콘텐츠화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태조실록> 총서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고려 공민왕 5년(1356) 이성계의 나이가 22세인데 비로소 벼슬에 올랐다. 고려의 풍속에 매년 단오절에는 무관(武官)의 나이 젊은 사람과 의관(衣冠)의 자제들을 뽑아서 격구(擊毬)를 하는 기예(技藝)를 선보였다.

단오절이 되면 큰길(九逵)에 용봉의 장식을 한 휘장을 치고 임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길 복판에는 격구 때 사용하는 골문(毬門)을 세우고, 왕이 장전(帳殿)에 나아가서 이를 구경했다.

연회를 베풀고 음악과 춤추는 여인들이 무대를 장식하면, 높은 관직의 벼슬아치들이 모두 자리를 한다. 부녀자들도 나와 길 왼쪽과 오른쪽에 걸이대 금단(錦段)을 장식하는데, 이를 '화채담(畵彩毯)'이라 이름하니,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기물보문도'는 도교·불교에서 상서롭게 여긴 기물을 표현하였다.
▲ 조선의 카펫 "기물보문도" '기물보문도'는 도교·불교에서 상서롭게 여긴 기물을 표현하였다.
ⓒ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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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비와 무관들이 격구를 벌이기도 하지만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직조로 무늬를 짠 카펫 같은 것에 그림을 더 그려 넣은 금단을 부녀들이 길 양쪽으로 장막을 치는 것처럼 어깨에 메고 있는 부분이다.

이를 화채담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의 카펫인 '조선철(朝鮮綴)'을 말한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붙인 것으로 '조선에서 온 꿰맨 직물'이란 뜻이다. 조선철은 염소와 같은 거친 짐승의 털을 씨실로 해 문양을 짜 맞춘 직물이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먹이나 안료로 그림을 덧붙여 그리기도 했다.

부녀들이 멨다는 '금단'은 여러 가지 각각의 빛깔로 그림을 그린 비단을 말한다. 부녀들이 길 양쪽에서 금단으로 장식된 장막을 메고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 장막을 친 걸이대 그림과 비슷하게 보인다.

조선시대 카펫은 털실과 면실을 섞어서 짠 모담(毛毯)이 있다. 씨실에 색실을 사용해 문양을 철직(綴織,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제작하고, 그 위에 먹 또는 안료로 선이나 그림을 그렸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모직물을 만들었다.

이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탑등(㲮㲪), 구유(氍毹, 毬𣯜), 계담(罽毯), 모전(毛氈)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탑등과 구유는 양모를 주성분으로 하여 잡모를 섞어 짠 문양 있는 페르시아산 직물이고, 계담은 우리나라의 전통 융단이며 깔개나 방장을 말한다. 모전은 솜털로 만든 모직물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했던 카펫을 우리나라 방식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문선>(東文選) 제2권 부조(賦條)에 실려 있는 <삼도부>(三都賦)에 고려시대 최자(崔滋, 1188~1260)가 쓰기를 신분이 높은 관리들의 집에 카펫인 채담을 깔았다는 기록이 있다. 카펫이 그동안 외국의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간의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13일부터 10월 10일까지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毛毯)'이라는 특별전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 적이 있다. 우리나라 카펫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려준 전시였다.
 
오학도는 18세기 조선철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다섯 마리의 학 문양이다.
▲ 오학도 오학도는 18세기 조선철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다섯 마리의 학 문양이다.
ⓒ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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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이를 재현하는 의미로 비단 위에 현대의 채색화를 그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된다. 보통 한국화에서 특별한 그림 체험의 하나로 비단채색화를 그린다. 여기에는 석채나 분채 외에도 서양화 물감인 아크릴이나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는 비단채색화에 관련된 아카데미 강좌가 지난 5월부터 열렸는가 하면, 전영미 작가의 경우 비단에 인형을 그리고 배접한 후 오려내어 한지 화판 위에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는 등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채색화에 사용되는 한지 배경도 먹이나 물감, 색연필, 오일파스텔, 글리터(glitter), 디지털 작업 등의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하고 독창적인 화면 구성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국화 기법뿐만 아니라 아크릴이나 유화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전통적인 화채담의 제작 방식을 이제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복원하는 기회도 가져봄직하다.

"Carpets were used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Korea"

This article is an introduction to Korean carpet culture from the G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and modern silk dyeing.
During the Goryeo Dynasty, it was customary to play gyegu on the day of Dan-o, and women and men hung curtains decorated with chae-dam and ban-dan on both sides of the street. Chae-dam is a modam woven with wool and cotton threads and painted with ink or pigment on silk.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discovered that carpets had been made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re were various types of woolen fabrics, such as pagodas, cribs, gyedams, and Moseson. It's a historical evidence that breaks the prejudice that carpets were only foreign.
In modern times, painting on silk is one of the unique painting experiences of Korean painting. A hanji background is attached to the silk, and various materials such as acrylic and oil paints are used to create a unique image. There are also attempts to recreate and restore the traditional method of making hwacheodam in a modern way.

덧붙이는 글 | 외국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영문요약본을 글의 말미에 싣는다. 개인블로그에 실을 예정이다.


태그:#화채담, #금단, #격구, #비단,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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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등일보에서 경제부장,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시민의소리에서 편집국장도 했다. 늘 글쓰기를 좋아해서 글을 안쓰면 손가락이 떨 정도다. 지금은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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