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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표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표지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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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는 대입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학 측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항은 일단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물론 좀 의심스러운 부분은 면접을 통해 사실 여부를 가릴 것이다. 그러므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평가해 사실 그대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할 때, 과장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을까? 물론 그런 학교도 있을 터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을 과대포장해 기록할 것으로 짐작한다. 내가 보고 들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내가 아는 한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 기록을 제한 글자 수 500자까지 꽉꽉 채워 쓰느라 매번 매우 힘들어했다. 훌륭한 교사라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모든 학생들의 과세특 기록을 꽉꽉 채워 주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교사가 자신의 수업 시간에 학생들 태반이 엎드려 잔다고 하소연했다는 사실이다. 엎드려 잔 절반 정도 학생의 과세특 기록은 사실에 바탕한 기록이 아니라 그 교사의 창작물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한 학기 내내 엎드려 잔 학생들의 과세특 기록까지 꽉꽉 채워 써 주는 게 과연 마땅한 일인가? 이렇게 과세특을 쓰는 교사가 비단 그 교사뿐이겠는가?

또 다른 교사 이야기이다. 이 교사도 매우 훌륭한, 열혈 교사라 할 만하다. 이 교사는 수업과 관련한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 학기 동안 탐구하게 한 다음, 그 탐구보고서를 바탕으로 과세특을 써 준다. 아주 바람직한 방법이다. 과세특 내용도 썩 훌륭하게 나올 듯하다.

그런데 탐구보고서를 정해진 기일 안에 안 내는 학생들이 있다. 제출 기한을 깜빡한 게 아니라, 탐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보고서를 제출할 수 없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그런데 이 열혈 교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학생을 불러 보고서 제출을 종용하고 또 종용한다. 그러면 그 학생은 대충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검색해 짜깁기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면 이 열혈 교사는 그 짜깁기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 학생의 과세특을 꽉꽉 채워 써 준다. 이렇게 쓴 과세특이 오롯이 그 학생의 역량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사례를 하나만 더 이야기해 보자. 어떤 교사가 자신의 과목과 관련 있는 책을 한 권 읽게 하고 독후감을 쓰게 한 다음 그 독후감을 바탕으로 과세특 한 꼭지를 쓰겠다고 했다. 이 교사 혼자 계획한 게 아니라 그 교과 전체의 계획이다. 이 계획은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위반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는 단순한 독후감 제출 이외에 다른 활동을 더했을 경우에만, 독서와 관련한 기록을 과세특에 기록할 수 있게 돼 있다. 단순히 독후감만 제출할 경우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독서활동'란에 '책 제목과 지은이'만 기재하게 돼 있다. 또 문제가 되는 점은 언제까지 독후감을 제출하라고만 했지, 책을 읽을 시간도 책을 읽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을 읽어 본 그 교사는, 독후감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아마 많은 학생들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서평이나 독후감 등을 복사해서 붙여 넣어 제출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교사는 어찌어찌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 내용을 요약해서 과세특 한 꼭지를 썼다. 안 써 줄 수가 없다. 독후감을 제출했는데, 왜 그 내용이 과세특에 없느냐고 학생들이 항의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실에 바탕한 과세특 기록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의구심

그래서 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의구심이 많다. 학종을 '깜깜이 전형'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학 측의 주관이 너무 많이 학종에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여부다. 위의 세 가지 사례를 통해서 볼 때,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 생각에는 일종의 '온정주의'가 작용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과세특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기록'하게 돼 있다.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기록'하라는 것인지, '모든 학생들의 과세특을 제한 글자 수까지 꽉 채워 기록'하라는 것은 아닌데도 많은 교사들이 위의 첫 번째 사례처럼 모든 학생들의 과세특을 꽉꽉 채워 써 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하고자 하는 교사는 학생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고, 교사들 사이에서는 냉정한 교사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다.

이게 과연 마땅하고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에 근거해, 과장하지 않고 기록하는 게 맞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인정할 터다. 헌데 동료 교사들하고 이야기해 보면, 어떻게 딱 그렇게 학생들의 활동 사실에만 근거해서 쓸 수 있겠냐고 한다. 그러면 생활기록부 과세특을 꽉 채워 써 줄 수 있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 지점이 문제라고 본다. 사실에 근거해서 쓰면, 과세특 기록을 꽉 채워 써 줄 수 있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내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의 과세특은 대부분 꽉 채워져 있었다. 만일 내가 근무했던 학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고등학교의 사정이 이렇다면, 학교생활기록부가 주요 전형 요소인 '학생부종합전형'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각 학교의 사정이 어떤지 살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실에 바탕해 과세특을 기록하는지의 여부를 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아니, 같은 학교 내에서도 다른 교사가 과세특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알기는 힘들다. 사실에 바탕하느냐, 과장하느냐는 오롯이 담당 교사의 양심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사들의 양심을 믿어야 마땅하겠지만, 위에서 예를 든 세 가지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각 고등학교에서 생활기록부 과세특 기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각 교과별로 학기 시작 전에 어떤 학습활동을 진행하고 평가를 어떻게 할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과세특을 기록할지를 계획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계획의 적정성 여부를 학교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지금껏 내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또 과세특이 다 기록된 다음, 계획에 바탕하여 기록됐는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오탈자가 있는지 정도의 점검만 했다. 만일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생활기록부 과세특은 계속해서 과대포장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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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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