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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골에 내려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며 미소 짓게 했다.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예뻤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 모가지가 더 가냘퍼서 예쁘고, 여럿이 함께 모여 있으면 화합을 이루어 더 고왔다. 길을 가다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러댔다. 한 송이라도 더 담고 싶어서. 

마침내, 내가 꿈꾸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코스모스 씨앗을 심었다. 이젠 길가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꽃이 아닌 내 정원에서 내가 보고 싶은 만큼 마음껏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즐겁기만 했다.

꽃밭에 뿌린 작고 길쭉한 씨앗들은 성실하게 싹을 틔우고 키가 자라더니 아주 쑥쑥 자랐다. 내 키를 훌쩍 넘어섰다. 코스모스 키가 그토록 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가 화들짝 놀랐다. 내 키가 줄어든 걸까? 암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코스모스는 성인 남자의 키 정도까지 아니 그보다도 더 높이 자랐다. 해바라기 키와 맞닿을 정도까지.

첫 해는 행복했다. 우리 집을 찾아온 이들이 코스모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얼굴이 코스모스처럼 환하게 꽃을 피웠다. 그런 코스모스가 우리 집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꽃잎이 다 떨어졌다. 코스모스가 씨앗을 품었다. 나는 다시 볼 꽃들을 위해 씨앗을 손바닥에 받아 거두어 모았다.

다음 해 봄, 땅속에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고 꽃들을 피워냈다. 월동했던 야생화들도 온갖 꽃들을 품고 있다가 내보기 시작했다. 그런 봄날이 너무 감사하고 아름다웠다. 

계절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땅속에서 솜털 같기도 하고 풀 같기도 한 작은 싹들이 우수수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더기로 올라오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올라오고 있는지 궁금하여 아침마다 들여다보며 살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던 바늘 같은 초록 싹들이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라나고 있는 작은 잎사귀들은 아기 코스모스들이었다. 그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은 아기 코스모스들. 주변을 살펴보니 여기저기서 허락도 없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동네 어르신들께 코스모스 모종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키가 커서 싫다 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시골에 와서 코스모스 사진을 찍으며 예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 때 나를 바라보시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쁘긴 뭐가 그리 예뻐? 하나도 안 예뻐." 
"너무 예쁘잖아요. 저는 코스모스가 좋아요."


어르신들은 코스모스가 안 예쁘다고 하셨다. 나는 예쁘다고 반문했었고. 그 이유가 살짝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산아제한을 못해!"
"아, 그러네요. 정말 많아도 너무 많아요."


씨를 뿌리기도 전에 무섭도록 흙을 뚫고 올라오는 코스모스가 미웠다. 정말 이걸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동네 이웃이 건네는 말씀에 뽑기로 결심을 했다. 한 움큼씩 뽑고, 더 자란 모종은 뒷마당과 주차장에 가져다가 옮겨 심고, 분산을 시키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끝없이 올라오는 코스모스와의 전쟁을 선포해야만 했다. 내가 코스모스를 제거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이 녀석들이 그토록 번식력이 강한 줄을 꿈에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예쁘다고 할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틈만 나면 나지 않아야 할 곳에 올라와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 가차 없이 뽑아버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정원은 코스모스가 운동선수처럼 큰 키를 자랑하며 서 있다. 보기에는 여전히 아름답다. 예쁘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게 청초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키가 큰 데도 말이다. 

내 마음 한편에서는 벌써 내년을 걱정한다. 새해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코스모스가 산아제한을 하지 못하고, 수많은 자녀들을 낳아 나를 괴롭힐 것인지. 그래도 다행히 흐드러진 그 꽃들이 예뻐서 용서한다.

나팔꽃은 어떠한가?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 '나팔꽃이 또또 따다 노래 불러요'가 절로 흘러나와 흥얼거리게 했던 고운 남색 빛을 한 나팔꽃이 날 배신했다.

텃밭에 오이 모종을 심어서 줄기가 자라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을 때, 작은 줄이 하나 둘 오아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뭘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니 아기 나팔꽃 순이 손을 쭉쭉 펼치며 오이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닌가? 가차 없이 나팔꽃 순을 자르고 뿌리도 뽑아 버렸다. 그렇게 하나 둘 싹이 올라오더니 여기저기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를 괴롭히기도 하고, 길쭉한 가지를 달고 있는 가지 나무를 칭칭 감고 있었다. 괘씸하여 보이는 대로 뽑아서 없애고, 불 멍한 화로에 던져버리기도 했다(지금 화로에도 나팔꽃들이 살아남아 남색빛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생명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울타리 아래로 해바라기 씨앗을 뿌렸더니 키가 자라고 자라 하늘을 향해 높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나는 어서 해바라기 꽃들이 하늘을 향해 노랗게 만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바라기를 삼켜버린 나팔꽃
 해바라기를 삼켜버린 나팔꽃
ⓒ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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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비가 내렸다. 얼마 동안 정원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방치해두고 말았다. 정원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발길이 닿지 않던 울타리 쪽으로 향하고는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멀리서 보니 예쁜 나팔꽃들이 만발하여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도저히 예쁘다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꺽다리 해바라기 꽃은 고개를 떨구고, 허리까지 푹 숙이고 있었다. 아니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 나팔꽃들이 해바라기를 칭칭 감고 또 감아버렸다. 해바라기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몸을 숙이고 만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타깝고 속상해서 나팔꽃들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꽃 모양도 예쁘고, 줄기 식물을 좋아해서 어느 정도는 정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었지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사정없이 나팔꽃 줄기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듯이. 하수구에 모아진 꼴 보기 싫은 머리카락을 치우듯이. 어린 시절 한 번도 못 해본 여자들이 한 번쯤 해보고 싶어 하는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는 것처럼.

나는 나팔꽃 줄기들이 너무 얄미워서 박박 뜯어냈다. 이미 몇 개의 해바라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들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저 아직 기둥을 지키고 반듯하게 서 있는 몇몇 해바라기가 노오란 꽃을 어서 피워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나팔꽃을 쳐다보았다. 눈을 흘기며 노려보았다. 예쁘지만 예쁘지 않은 나팔꽃에게 단단히 성이 났다. 속이 상했다. 나를 배신한 나팔꽃을 내년에는 살려두지 말아야 할까? 땅속에서 힘껏 고개를 내미는 족족 없애야만 할까? 고민이다. 꽃들이 풍년인데 고민도 더해진다.

욕심 많은 코스모스를 보았다.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을. 멈추는 지혜와 조절의 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많이 가졌다고 결코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팔꽃들에게 먹히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키다리 해바라기를 보았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막무가내인 나팔꽃을 보았다. 지금 내 삶에서 해바라기는 무엇일까? 나팔꽃들에게 잡혀 힘을 쓰지 못하는 나의 해바라기는 무엇일까? 그럼 나팔꽃은 무엇일까?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은 없는지. 향방 없이 여기저기 가지를 뻗으며 다른 것들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았다. 자연은 성실하다. 식물은 지혜다. 가만히 있으면 뭔가를 가르쳐 주고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오늘도 정원에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는다. 시골에 살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들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올린 내용입니다.


태그:#자연, #시골생활, #지혜, #교훈,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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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인도에서 거주하다가 작년에 한국 시골에 들어와 가족과 자연 속에서 생각하고, 사랑하며, 희망을 담아 힐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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