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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품속 같아요, 이렇게 확 트일 수가 있나요. 평야지대보다도 더 값진 땅입니다!"

대관령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얘기다. 대관령은 강원특별자치도 영동 6개 시군을 넘나들 때 북으로는 진부령부터, 남으로는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태백 삼수령까지 중심축에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갯길로 영서와 영동을 잇는 거점 역할을 한다. 
 
대관령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동해안의 확 트인 바다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지만 강릉 사람들에게는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이 담겨있는 땅이었다. 
 
대관령 표지석, 832m 높이에 설치됨(2023/9/21) ⓒ 진재중
 
대관령 옛길 최입에서 본 대관령 정상(2023/9/22) ⓒ 진재중
   
영동의 제1관문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사서에 관련된 지명이 기록된 곳으로, 영동 사람들에게는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한 고갯길이다. 영서지역에서 동해안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테백산맥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과 함께 대관령은 주요 교통 통로였다.

대관령은 '크게 구르는 고개'라 하여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유래로는 강릉의 서쪽 지역에서 강릉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 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대관령에 큰 관문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백두대간의 허리를 넘지 않고서는 확트인 동해 바다를 볼 수가 없다. 지금은 터널들이 뚫려있어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되지만 아흔아홉굽이의 고속도로는 832m 정상을 넘어야 강릉을 갈 수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온 이진경(69) 가족은 "저 멀리 바다와 시내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길은 대관령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차로 여행하면서 이렇게 넓게 펼쳐진 곳을 본다는 게 막혔던 가슴이 확 열리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한다.
 
832m 대관령 표지석에서 바라본 강릉시와 동해안(2023/9/24) ⓒ 진재중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서 아흔아홉굽이 고개를 넘기 전에 버스는 꼭 한 번은 쉬어가야 하는 험난한 고갯길이었다. 운전기사는 긴장을 놓지 못했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에 안내양은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반드시 자리에 앉아서 가야 했다.

승객들도 차멀미로 비닐봉지를 준비해서 내려가야 하는 곡예사의 길이었다. 832m 정상에서 운전기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강릉을 여행하는 버스 승객들은 강릉 시내를 바라보며 이렇게 넓은가, 큰 도시인가!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동해바다에서 오징어잡이 하던 집어등 불빛이 강릉 시내를 밝히는 가로등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이다.

서울에서 강릉 구간을 운전했던 고속버스 기사, 박기선(86) 어르신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서 처음 대관령 아흔아홉굽이를 넘어갈 때는 아찔했습니다. 운전기사들 사이에서도 강릉은 회피하는 지역이었지요, 특히 야간에 운전은 손이 떨릴 정도였지요" 하고 험난한 고갯길을 회상한다.
 
대관령, 구 고속도로(2023/9/22) ⓒ 진재중
           
대관령에 도로다운 도로가 생긴 것은 1917년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소위 신작로를 개설하였다. 일제는 강릉과 경기도 이천 사이의 국도를 1917년 8월 30일에 준공하고, 그 치도(治道) 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반정(半程) 앞에 있는 바위에 준공 기념비를 새겨 놓았다.
 
대관령도로 준공기념비, 구 고속도로변에 있다(2023/9/21) ⓒ 진재중
 
대관령을 넘는 길은 세 코스다. 첫 번째 길은 대관령 박물관에서 시작,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대관령 옛길이고, 둘째 길은 차량을 위한 신작로로 개설된 도로가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확장된 아흔아홉 굽이의 옛 고속도로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7개의 터널로 관통하는 새로 난 고속도로다.

각자 길은 그들만의 특성을 가지고 역할을 독특히 해내고 있다. 대관령 옛길은 강릉사람들에게는 산행코스로 전국에서 찾는 등반객들에게는 등반코스로 이용하고, 아흔아홉 굽이 길은 바쁘지 않은 운전자들과 여행객들이 대관령의 정취를 느끼면서 가는 길로, 터널로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수도권에서 영동지역으로 편안히 달려가야 하는 길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대관령을 넘는 방법이 다양해 졌지만 대관령옛길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본 고속도로(2023/9/24) ⓒ 진재중
   
반정에서 대관령 옛길로 들어서는 길목(2023/9/21) ⓒ 진재중

평야보다 값진땅

대관령 일대는 황병산, 선자령, 발왕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다. 동쪽으로는 급경사이지만 서쪽으로는 고위평탄면 지형을 이룬다.

기후는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스키장이 들어서 있고 겨울스포츠의 메카이기도 하다. 연평균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많아 고랭지 채소 및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세계적인 음악제로 자리잡은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자작나무숲 속인 용평 눈마을홀에서 시작되었고 각종 동계스포츠 대회가 용평과 알펜시아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횡계지역과 용평은 동계올림픽 이후 평야보다 값진 땅으로 변하고 있다.
 
목축지와 풍력발전기(2023/9/22) ⓒ 진재중
    
대관령 정상에서 보면 남쪽으로 발왕산, 북쪽으로 오대산, 서북쪽으로 황병산이 보이고, 발아래 펼쳐진 강릉 시내와 동해까지 보인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조금만 오르면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양떼목장이 있고 등반객이 선호하는 선자령이 나온다. 바람의 언덕처럼 풍력발전기는 쉴 새 없이 돌고 한때 국내 최대 목장이었던 삼양대관령 목장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해안으로 가다가 들렀다는 관광객 김남수씨는 "유럽에 온 기분이 드는 장소입니다. 풍차가 돌고 펜션이 들어서 있고 목장까지 있어 매력적인 곳입니다. 이렇게 높은 지대인데 평야보다도 가치있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축복받은 땅입니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제왕산, 대관령 옛길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산(2023/9/24) ⓒ 진재중
 
풍력발전기와 횡계시내(2023/9/22) ⓒ 진재중
 
대관령은 서늘한 기후로 한여름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옛 영동고속도로 상하행 휴게소에는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각종 캠핑카에서부터 텐트까지 장사진을 이룬다.

봄에 불어대는 양강지풍의 영향으로 영동지역은 매년 큰 산불의 아픔을 겪지만 대관령은 바람을 이용, 청정에너지인 풍력발전을 하고 있다. 대관령 자락 자작나무 숲 아래는 고급 펜션단지가 즐지어 서 있고 평원지대에는 고랭지채소밭이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횡계의 고급팬션단지(2023/9/22) ⓒ 진재중

대관령을 기점으로 영서와 영동은 기후와 생태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영서지역의 숲은 주로 활엽수로 참나무, 자작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동지역은 소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날씨에서는 더욱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강릉과 동해안이 맑게 보이면 횡계 시내와 용평은 구름에 갇혀 보이지가 않고 황병산과 발왕산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어오면 동해안은 잔잔하다.
 
구름속에 갇힌 대관령 (2023/9/21) ⓒ 진재중
  
구름속에 갇힌 대관령(2023/9/21) ⓒ 진재중

아흔아홉 굽이보다 많은 이야기고개

대관령 옛길은 고려 시대 이래 주요 교통로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이 길을 이용한 수많은 민중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옛길은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대관령 박물관에서 시작된다. 냇가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서면 원울이재(員泣峴)가 나온다.

원울이재는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신임 부사와 임기를 마치고 강릉을 떠나는 전임 부사들이 이곳에서 강릉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한다. 강릉 부사로 임명되어 한양에서 수백 리 떨어진 험한 길을 넘고 넘어 이곳에서 쉬면서 앞으로 강릉에서 관리로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던 것. 또 임무를 마치고 강릉을 떠나는 전임 부사들은 강릉의 아름다운 경치와 후한 인심에 정이 들어 떠나기 싫어서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 대관령 박물관(2023/9/21) ⓒ 진재중
   
어흘리 마을부터 옛길다운 길이 시작된다. 대관령 좌우로 소나무를 주제로 한 자연휴양림, 대관령 치유의 숲, 금강소나무 숲길 등이 들어서 있다. 능경봉과 제왕산 자락에서 흘러온 계곡물은 가뭄에도 끄떡 없이 사계절 내내 흐른다.

이 물은 강릉 남대천을 거쳐 동해안으로 흐른다. 강릉의 젖줄이다. 한여름에는 우거진 소나무 숲과 자작나무 숲에서 걷는 시원함과 신선한 공기가 있어 강릉 사람들이 많이 찾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어흘리마을에 사는 김아무개 할아버지는 "집 근처에서 이렇게 소나무 숲길을 걷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산다는 게 건강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정말 고마운 대관령옛길입니다" 하고 옛길을 자랑하신다.
 
대관령옛길의 계곡물, 제왕산과 능경봉에서 흘러온다(2023/9/22) ⓒ 진재중
   
대관령 소나무 군락지(2023/9/22) ⓒ 진재중
   
걷기 좋은 오솔길을 따라 30여 분 정도 오르면 오두막집이 나온다. 옛날에 주막이 있었던 터에 전통 귀틀 초가집을 재현한 것이다. 이곳 안내문에는 '험준한 대관령을 넘기 위해 쉬어가던 곳으로 등산객 여러분들의 쉼터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하고 적혀 있다.

그 옛날 주막집에서 이곳을 넘다들던 길손들이 허기진 배를 따스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로 채웠을 장소다. 90년 초까지만 해도 대관령 옛길을 거닐던 탐방객들이 막걸리에 김치전과 묵사발로 목을 축였던 추억이 서려 있는 주막이었다. 

주막 터를 관리하고 있는 강릉시 문화유산과 박지영씨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산행을 마치고 들렀다 가면서 막걸리를 팔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라고 한다.
 
주막터, 대관령옛길에 복원(2023/9/22) ⓒ 진재중
 
주막부터는 길이 갈린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하고 망설이게 하는 길이다. 큰 물줄기를 따라오르면  고려말 32대 우왕이 피난와서 성을 쌓았다는 제왕산(840m)이고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가면 대관령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대관령 옛길이 나온다. 옛길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소나무 군락지와는 다르게 활엽수림으로 우거져 있다. 
 
대관령 옛길, 산정상으로 오를수록 활엽수림이 울창하다(2023/9/21) ⓒ 진재중
  
굽은 산길을 따라 오르면 기관 이병화 유혜 불망비(記官 李秉華遺惠不忘碑)가 있다. 기관 이병화는 대관령을 오가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개인 재산으로 반정에 주막을 세운 강릉부의 향리다. 대관령을 오가던 행상인들이 세운 공적비다. 공적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병화 비, 대관령 옛길 반정부근에 있다(2023/9/22) ⓒ 진재중
  
대관령 옛길은 옛날에는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고개라서 넘기 힘들고 나그네들의 애환이 많이 서려 있는고개였지만 지금은 강릉 시민들에게는 어머니 품속 같은 존재이고 등산객들에게는 가장 편안한 오솔길이다.

강릉시 내곡동에 사는 남진양씨는 "대관령 옛길은 나의 안식처이고 마음의 양식입니다. 일주일의 피로를 이곳만 다녀가면 훨훨 털어버리고 한주를 다시 시작합니다" 하고 옛길을 자랑한다.  
 
대관령 옛길 표지석, 반정(2023/9/21) ⓒ 진재중
   
대관령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쓰고, 강릉이 고향이었던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을 데리고 함께 넘던 길이기도 하며, 김홍도는 대관령 고개에서 강릉을 바라보며 화폭에 담았다.

또한 과거를 보러 한양을 가기 위한 길이었고, 보부상들이 보따리 짐을 지고 오르기도 하였던 고갯길이다. 이렇듯 대관령은 양반에서 서민까지 거쳐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있는 길이었다.
   
대관령정상에서 서쪽으로있는 횡계시내와 고랭지 밭(2023/9/22) ⓒ 진재중
   
대관령은 영서에서 영동을 넘나드는 관광객에게는 첫 관문으로, 강릉 사람들에게는 엄마의 품속같은 오솔길로, 대관령을 기대고 사는 영서지역 사람에게는 평야 보다 값진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속도로와 강릉시내(2023/9/22) ⓒ 진재중
태그:#대관령, #금강송, #야생화, #오솔길,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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