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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 주최 측은 2천 명 이상 모였다고 밝혔다.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 주최 측은 2천 명 이상 모였다고 밝혔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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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선생님들이 6천 명 있다. 오늘 이 자리에 2천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오셨다. 3분의 1이 여기 모였다." 

4일 오후 6시 30분부터 제주도교육청 주차장에선 서이초 교사 49재를 추모하는 '9·4 제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사회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생님들을 믿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올 줄 몰랐다"면서 "제주 지역 교사 6천명 중 2천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날 주최 측은 피켓을 1천 장 정도 준비했다고 한다. 아무리 많이 와도 제주에서 천 명 이상 모이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최 측의 생각과 다르게 이날 도교육청 주차장은 교사들로 가득찼다. 

사실 제주엔 '괸당문화'가 있어 교사가 징계여부와 관계 없이 집안과 마을, 가족들의 눈초리를 벗어나 행동하기 어렵다. 이런 문화 탓에 교사들의 집회나 시위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교사들 스스로도 깜짝 놀라 "제주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교사들이 참여했다. 

"내일 출근하기 두려워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교사를 구해달라"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가 자신이 겪은 경험담과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가 자신이 겪은 경험담과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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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9·4 제주 추모문화제에는 여러 명의 교사가 나와 서이초 교사 49재를 추모하며 자신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올해로 12년차가 됐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7년 전에 저의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기억을 떠올리고 말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라며 "지금 이 추모제를 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내일 출근하기가 두려워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선생님이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7년 전 수업 시간에 교탁을 내리치며 큰 소리로 반말과 욕을 했던 아이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교사는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막고자 애를 썼지만 그 아이는 나눠준 가정통신문을 동그랗게 말아 교사의 얼굴에 던지는 등 무시하고 창피를 줬다고 한다. 그는 반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놀이공원을 가고 떡볶이를 같이 먹는 등 갖은 애를 썼지만 일부 아이들은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무리로 바뀌어 더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관리자에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교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학부모가 들고일어나서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 학교가 너무 무서웠다. 지금도 무섭다"면서 "그때 이후로 그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꼭 가게 되어도 그때가 너무 생각나 싫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함께 눈물을 흘려준 친구 선생님들이 있었고, 후배 선생님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면서 "제발 옆반에 고통을 겪는 선생님이 있다면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시고 관심있게 지켜봐 달라. 응원하고 위로해 주고 절 살린 선생님들처럼 그 선생님을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교사들의 고백에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일부 교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분노했다. 

교육감까지 참석했지만 노력하겠다는 말뿐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김광수 제주교육감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김광수 제주교육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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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9·4 제주 추모문화제에는 김광수 제주교육감도 참석했다. 김 교육감은 추모문화제가 시작하기 직전 맨 앞자리에 앉았다. 

김 교육감은 "교육감이기에 앞서 선배 교사로 이 자리에 와 있다"면서 "서이초 선생님이 꾸었던 꿈을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교육감으로서 일선 현장 선생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교사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대책은 담겨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낳았다. 지난 8월 2일 제주교사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제주교원단체총연합회, 제주실천교육교사모임, 제주좋은교사운동, 새로운학교네트워크 등 제주지역 6개 교원단체는 교사보호 요구를 담은 문서를 김 교육감에게 전달한 바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9.4제주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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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는 누군가를 규탄하고 공격하는 구호와 발언이 주를 이루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그 이유는 추모문화제의 마지막 순서에서 알 수 있었다.  

이날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가 근무했던 교실에 붙어 있었던 노래를 함께 불렀다.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제목이지만 간디학교 교가로 널리 알려진 이 노래에는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가사가 담겨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교사들의 표정에는 가사 그대로 '희망'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추모문화제가 끝난 뒤 SNS에는 "노래를 함께 부른 것이 너무 좋았다", "힘이 났다", "선생님들 화이팅"이라는 참석 교사들의 후기가 주를 이루었다. 

추모문화제 무대에 오른 한 교사는 "아이들은 교사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교사의 행복한 뒷모습을 바라본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인 교사들의 내딛는 걸음이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학교의 시작이 되길 꿈꾸어 본다. 
 
▲ "꿈꾸지 않으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서이초 49재' 제주 추모문화제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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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서이초 49재, #제주 추모문화제, #김광수 교육감, #이주호 교육부장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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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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