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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오펜바흐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몇 량 되지 않는 짧은 열차입니다. 하지만 이 기차를 타고 30분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독일 오펜바흐에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은 그렇게 아주 간단했습니다.

연결되어 있던 독일 통신사의 연결이 잠깐 끊어졌습니다. 곧 "프랑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자가 오면서 프랑스 통신사가 연결되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제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그 문자 한 통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공식적인 표기는 자국어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어 간판은 어느새 프랑스어 간판으로 바뀌어 있었죠. 하지만 트램의 노선도에서도 독일어 지명과 프랑스어 지명을 모두 볼 수 있었죠. 시내버스를 타고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국경이라는 게 이렇게 옅은 경계일 수 있는지, 생소한 느낌이 앞섰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트램 노선도. 독일어 지명과 프랑스어 지명이 섞여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트램 노선도. 독일어 지명과 프랑스어 지명이 섞여 있다.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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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현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스트라스부르는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를 오간 지역이니까요. 처음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지만,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에 점령되었죠. 이후 19세기 보불전쟁 과정에서 다시 독일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대전을 거치며 지금처럼 프랑스의 땅이 되었습니다.

흔히 '알자스-로렌 지방'으로 불리는 지역 가운데 알자스 지방의 중심지가 바로 스트라스부르입니다. 보불전쟁 이후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 영토가 되는 장면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을 통해 잘 알려져 있기도 하죠.

스트라스부르를 포함한 알자스-로렌 지방은 지금은 프랑스의 영토입니다. 하지만 주민의 다수는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하죠. 현재는 프랑스어 화자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인구가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프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프티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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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위치와 역사를 생각하면,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교차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이 어색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당장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봐도 그렇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더 이상 프랑스어 수업을 할 수 없게 된 학교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소설 속에서 아멜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을 통해 프랑스어와 프랑스 민족정신의 위대함을 역설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프란츠(Franz)'라는 독일식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알자스-로렌 지방의 역사적 경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라는 두 개의 문화권이 경쟁하고, 때로 융합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스트라스부르였습니다. 옅은 국경 위에 놓인 도시란 어디에서나 그런 독특한 그림을 만들어 내니까요.
 
스트라스부르 프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프티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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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점은, 유럽연합의 의회가 바로 이 스트라스부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트라스부르가 가진 상징성을 고려한 것이겠지요. 유럽연합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고, 스트라스부르는 지난 수백 년의 역사 동안 흐린 경계 위에서 살아온 도시니까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삼엄하게 닫힌 국경을 가진 나라죠. 분명 육지로 붙어 있는 땅이 있지만, 배나 비행기가 아니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래서 제게 국경은 언제나 선이었습니다. 뚜렷하고 굵게 그어져 있는 선이었죠. 판문점에 놓여 있는 두꺼운 콘크리트나,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는 철조망만을 국경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스부르의 국경은 선이 아니라 면이었습니다. 도시는 두 나라의 경계를 오가며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은 기차를 타고 건너온 도시에서 유럽연합의 의회를 보며, 결코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한 국경이라는 경계를 생각했습니다.
 
유럽의회
 유럽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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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게도, 독일에게도 스트라스부르와 알자스-로렌은 중요한 땅입니다. 넓은 국경 지대 가운데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늘 쟁탈전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죠. 이 지역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땅이니까요.

하지만 꼭 그런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근대 유럽에서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곧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상대방을 구별하고, 그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치는 것이 중요했죠. 그 경계가 있어야만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국가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경계가 없다면 국민국가는 성립할 수 없었죠.

그런 근대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가운데에 속한 이들은 언제나 문제적이었죠. 당연한 일입니다.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는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존재였으니까요.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속하지 않는 존재는 언제나 갈등과 분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가 무너진다면, 국가라는 정체성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나까요.
 
스트라스부르 중심 광장
 스트라스부르 중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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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라고 이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국경을 개방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국경이 면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문화가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는 것이 편했을 것입니다. 굵은 선으로 국경을 만들고, 나와 남을 뚜렷이 구분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더 쉬운 방법이었겠죠.

하지만 그들은 결국 담장을 허무는 길을 택했습니다. 국경의 도시에는 문화가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뿐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연합이라는 여러 국가의 연합이 만들어졌고, 그들 모두가 담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는 바로 그런 노력의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스트라스부르 시내
 스트라스부르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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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배경에는 분명한 자신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도,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지 않아도, 경계에 속한 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 우리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지로 만들어낸 국가는, 겨우 그 정도의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꼭 물리적인 국경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물리적인 국경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곳에 나와 남을 구분하는 장벽을 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장벽 밖에 밀려난 존재들, 내가 아닌 남인 존재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들처럼 쉽게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나와 남의 경계가 옅어져도 사회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우리에게도 있을까요. 그렇게 배제와 차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날이 우리 사회에도 허락될 수 있을까요. 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오는 열차 위에서, 저는 여전히 의문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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