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객단가를 후하게 4800원씩으로 잡더라도, 2700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봐야 손익분기점에 달할 수 있다. 6편이 평균 450만명이 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8월(1214만3천명)의 수준으로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면,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 투자금이 회수되어야 다시 제작비로 투자되기 마련. 영화 업계의 투자 선순환은 이어질 수 있을까." - 김동하 한성대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교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 지난 7월 <시사저널e>, <韓영화 빅6, 1300억 '하투(夏鬪)'가 두렵다> 칼럼 중에서
 
어느 영화인의 근심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도 올 여름 빅4로 일컬어지는 <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트리트 유토피아>의 3주간 개봉 릴레이를 지켜보는 영화인들의 심정이 다 비슷했을 것이다. 과연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텐트폴 영화 출혈 경쟁은 위기의 한국영화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유해진을 내세운 <달짝지근해: 7510>과 배우 정우성의 감독 데뷔작 <보호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함께 15일 나란히 개봉한다. 물경 1300억이란 비용을 4주간 개봉하는 6편의 영화를 통해 극장가에 쏟아 부은 셈이 됐다. 말 그대로 출혈 경쟁이 맞다.
 
그런데 어쩌나. 9일 개봉한 <콘트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이틀째인 10일까지 누적 관객 41만 명을 돌파하며 선전 중이다. 그럼에도 2700만 동원은 어지간히 언감생심인 듯 싶다. 선두를 달리는 <밀수>는 400만 돌파를 목전에 둔 반면 <비공식 작전>은 85만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더 문>은 더 충격적이다. 280억짜리 우주 SF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은 고작 43만 명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달짝지근해: 7510>, <보호자>가 학생 관객들의 방학이 끝나는 시점까지 선전을 해 준다 해도 2700만은커녕 <밀수> 외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들이 얼마나 더 추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투자배급사도, 극장도 울상을 지을 만한 현실이 펼쳐지는 중이다.
 
할인 경쟁에 나선 극장들이 객단가를 낮추면서까지 지갑을 열지 않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호객에 나서고 있지만 그마저도 공들여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의 수익을 개선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관객들은 그만큼 요지부동이다.
 
<밀수>와 <비공식 작전>의 경우
 
그럼에도 빅4를 둘러싼 반응과 평가를 복기하는 일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결과론적인 평가라기보다 관객들이 달라진 잣대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반면교사 삼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영화 <밀수>의 한 장면. ⓒ NEW

 
우선 <밀수>. '류승완이 류승완했다'는 평가 속에 류 감독의 전작 <군함도>나 <모가디슈>의 주제의식을 한 스푼 덜어내고 강탈 영화의 장르 법칙과 해녀들의 70년대 서사, 그리고 류 감독의 장기인 액션 본연의 재미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역시 전작에 이어 너른 관객층을 흡수하는 요인으로 70년대 배경과 함께 후반부 액션 시퀀스를 압도하는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와 같은 당시 배경 음악들이 한몫했다(음악감독은 장기하가 맡았다).
 
김혜수, 염정아, 고민시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여성 캐릭터를 맡았는데 외형적인 면으론 자못 적극적인 여성 서사이면서도 한편으론 자칫 첨예할 수 있는 젠더 이슈를 비켜가려는 영민함도 엿보인다. 전반적으로 배우 보는 재미가 쏠쏠한 가운데 이를 통해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안으려는 여름 텐트폴 영화로서의 유연함이 주목을 끈다.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면 전도연과 이혜영을 내세운 2003년 작 <피도 눈물과 없이>를 떠올 릴만 한데, <밀수>는 강탈 영화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20년 전보다 훨씬 더 친밀한 캐릭터와 안정적인 서사 운용을 자랑한다. 성룡 영화에서 볼 법한 <베테랑>의 장쾌한 액션이나 '재벌 때려잡는' 직선적인 주제를 선호하거나 기대한 관객들은 다소 가볍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밀수>는 류승완의 일관적인 작품 세계와 상업영화로서의 매끄러움이 공존하는 웰메이드 영화란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비공식작전>은 <모가디슈>나 <교섭>과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만큼 언론보도나 관객의 초점 역시 바로 그 기시감을 얼마나 떨칠 수 있느냐로 모아졌다. 결론적으로, <비공식작전>은 완성도 자체가 웰메이드인 건 맞지만 그 타고난 운명을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판단에 나선 경우라 할 수 있다.
 
중동을 배경으로 외교관이 활약하며 액션이 삽입된 중첩되는 볼거리.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유사점들을 선택의 잣대로 삼은 관객들이 적지 않았던 듯 싶다. 관람 후 평가가 호평일색인 것과 달리 식상한 소재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하정우·주지훈 두 배우가 '버디'로 호흡을 맞춘 것도 그러한 관객들의 선택을 바꾸는 데 가점이 아닌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소재, 식상하지 않은 볼거리를 갈망하는 관객들의 기호가 재확인 되는 대목이랄까.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나머지 경쟁작들
 
 영화 <더 문> 스틸 이미지

영화 <더 문> 스틸 이미지 ⓒ CJ ENM

 
우주 SF <더 문>의 경우는 훨씬 더 심각하다. <비공식작전>보다 제작비는 더 들이고 관객은 50만에도 못 미쳤다. 지난 몇 년 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SF 영화 <승리호>나 <정이>, SF 시리즈 <고요의 바다>가 호평을 이끌어 내지 못했던 흑역사들보다 한층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기자 시사 후 애초 우려됐던 '신파'나 '국뽕'의 세기는 약했다. 반면 기대만큼이나 높았던 '때깔'의 완성도 쪽으로 호평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냉정했다.
 
역시나 <마션>이나 <그래비티>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비교선상에 올랐는데 기술적 완성도보다 서사의 게으름이나 식상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이야기 자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연출력은 분명 안정적이다. 그런데 오리지널한 매력이 떨어진다거나 달 착륙이란 소재가 주는 기시감,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주는 부담감 등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더 문>의 실패는 무엇보다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프리미엄이 완전히 실종된 시대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결과라 볼 수 있다. <오징어게임>,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독창적인 소재로 전 세계 K-콘텐츠 팬들을 사로잡고 해외에서의 비평적 성과를 끌어내는 시대다. 아무리 SF 장르라 한들 '우리 영화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전략으론 OTT 시대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내기 역부족 임을 <더 문>이 역설한 셈이 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무척이나 신박한 경우다. 일단 만듦새나 이병헌의 연기에 대한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개봉 3주차인 <밀수>를 뛰어 넘는 데 성공했다. 개봉 첫날 성적은 <콘트리트 유토피아>가 23만으로 <밀수>의 31만엔 못 미치지만 빅4 중에선 2위다. 지난해 동시기 개봉한 <헌트>가 발휘한 뒷심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박하단 표현을 쓴 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여름 블록버스터라기엔 지나치게 어둡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선명해서다. 근데 그 차별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돼는 모양새다. 한국영화만이 그릴 수 있는 '아파트 공화국 디스토피아'란 소재는 전 연령층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역시나 관건은 소재의 신선함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무너져 버린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아파트 주민들의 인간군상극은 딱히 나무랄 데 없는 기술력과 이병헌의 호연을 무기 삼아 보는 이들의 정서와 마음을 흔들어 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면 멀티플렉스를 나서고 곧장 눈에 들어오기 십상인 아파트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실제 그랬다면 염태화 감독의 연출이 성공했다는 반증일 터다.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제 2편의 한국영화와 1편의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와 맞붙는다. 15일 유해진의 코미디 <달짝지근해: 7510>와 배우 정우성 감독 데뷔작 <보호자>, <오펜하이머>가 나란히 개봉한다.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유해진을 앞세운 <달짝지근해: 7510>은 스크린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중년 로맨스를 소재로 지난해 <육사오(6/45)와 같이 코미디에 목마를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낼지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헌트>로 데뷔한 '절친' 이정재의 뒤를 잇는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는 장르영화의 관성을 활용하거나 깨부수는 감독의 개성이나 취향이 여름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미 미국에서 호평과 흥행을 접수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우리 관객들의 '놀란 사랑'은 유별난데 3시간짜리 '놀란표' 사회파드라마이자 절정의 테크닉 위로 유려하게 펼쳐지는 심리극 <오펜하이머>마저 사랑 받을 수 있을지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11일 오전 <오펜하이머>는 31%로 실시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출력과 한국 관객들이 유별나게 애호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문제적 신작이 상반기 외국영화 강세 흐름을 이어갈지, 그리하여 한국영화 빅4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대신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결과를 자아낼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밀수 콘크리트유토피아 더문 비공식작전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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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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