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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지없이 잼버리행사장을 포함한 새만금 전역이 폭염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수만 명의 세계 청소년들을 잔치에 초대하고, 폭염이라는 자연재해도 문제지만 주인의식은 눈꼽만큼도 없이 행사준비가 엉망이라는 뉴스소식이 연일 전북에 사는 나를 때렸다. 정치권도 서로 행사의 주관이 지방이니 중앙정부니 하며 탓하기에 바쁘기만 하고, 심지어 '전라도 것'들한테 줬더니 저 모양이라느니 하는 막말까지 오르내리는 이 잼버리 행사가 과연 무엇인가.

사실 5년 전 새만금지역에 잼버리를 개최하게 됐다고 전북도지사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의 환호소리는 반갑지만은 않았다. 직접 현장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남편이 활동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포함한 환경 제 단체들의 걱정과 우려를 듣기만 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새만금의 가상공간에 포장지하나 더 씌운다는 생각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잼버리 시작 첫날부터 쏟아진 세계적 비난은 전북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특히 잼버리 행사장 바로 옆인 부안 해창 갯벌에서는 새만금간척지 반대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장승제 행사가 주말동안(8월 5일~6일) 열렸다. 행사를 준비하는 남편에게 물 한잔이라도 줄까 하는 마음에 주말을 온전히 부안 새만금 일대에서 보내기로 정했다.

"저기 저 잼버리 청소년들이 걱정이지요"
 
새롭게 세워진 8개의 장승들. 해창갯벌이 다시오길 소리쳤다.
▲ 장승들을 통해 우리의 소망을 듣다 새롭게 세워진 8개의 장승들. 해창갯벌이 다시오길 소리쳤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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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창갯벌 장승제 행사에서는 천주교와 불교 등 각 종단에서 환경보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영화 <수라>를 보고 갯벌지키기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올 것으로 예상됐다. 토요일(5일)에 가보니 각 환경단체에서 준비한 장승용 토목 8개를 자르고 깎고 마름질하고 조각 새기기 등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3년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하며 새만금 개발 및 생명파괴반대를 외쳤던 문규현 신부님. 언뜻 뵈었을 때 몰라볼 정도로 쇠약해지셨지만 변함없이 자상한 말씀과 미소를 담고 행사를 준비하는 운동가들에게 덕담을 주고 계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요일 미사를 이곳에서 할까요'라고 묻자, "저기 저 잼버리 청소년들이 안타깝게 있는데 그게 걱정이지요"라고 답하셨다.

함께 간 후배가족은 엉겹결에 일꾼이 됐다. 후배 남편은 천막 치고 장대박고, 후배는 방문객들에게 나눠줄 배지에 새만금 환경보호 알리기 QR코드 붙이기 등, 부부가 쌍으로 1년동안 흘릴 땀을 다 쏟고 올 정도였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니, 오히려 "환경운동가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가까운 분들이 아무런 댓가없이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환경운동이 어떤 것인지 한 점이라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문제의 현장, 새만금 잼버리에 가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사라진 캠프지.
▲ 잼버리 캠프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사라진 캠프지.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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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후배가족과 함께 잼버리 현장으로 갔다. 전북 도민은 입장료도 무료라 하고, 이전에 자원봉사센터로부터 요청 온 활동보조를 하나도 신청하지 않은 미안함이 함께 몰려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뭘 좀 도울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 역시도 차량 이동이 불편했는데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말 그대로 황야에 알록알록 텐트만 덜렁 있는 형국이었다.

오가는 사람들, 특히 스카우트 제복까지 입은 청소년들의 얼굴은 온통 붉은 해를 담았다. 30여 개 나라의 부스 안 청소년들을 둘러봤는데 이곳저곳에 누워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더러는 부스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자기 나라의 고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활동 거리를 준비한 부스도 있었지만 워낙 날씨가 더워 각 나라의 문화를 귀담아듣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물 한병 마시기에도 K-바가지라는 말이 떠돌아다닌 후라 그런지 이날은 냉방버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물을 받았다. 4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온 캠프장치고는 너무도 한산해 잔치를 주관하는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쓸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기 퇴영을 결정한 영국이나 미국 등의 참가자에도 서운함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라는 공감이 일고, 조기 폐회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대응은 한순간에 '국격'이란 말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찾아보게 했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여러 행사들을 훌륭하게 치러낸 경력이 있는 나라 아니었던가. 다시 한 번 '리더'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소녀가 리어카에 앉아 우산 속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 잼버리 리어카 캠프 한 소녀가 리어카에 앉아 우산 속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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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 곳 중 가장 활동적이었던 맥시코캠프 청소년들.
▲ 맥시코캠프활동 가본 곳 중 가장 활동적이었던 맥시코캠프 청소년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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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청소년들도 함께 이 광경을 봤으면"

일요일인 6일엔 부안 해창갯벌에서 새만금개발 반대 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전날에 이어 아침부터 장승세우기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백의 사람들이 모여서 천도제, 장승세우기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보일배를 함께 했던 불교 쪽의 스님들이 나와서 천도제를 지내고, 새만금의 부활을 소망하는 어린이들의 그림과 시낭송, 대금연주자, 버스킹그룹, 풍물패 등으로 장승제를 돋보이게 했다.

"잼버리현장을 지나 이곳으로 오니 모든 생명이 한꺼번에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저기 캠프에 있는 청소년들도 이곳으로 와서 함께 이 광경을 보고 나눌 수 있다면 좋겠군요"라며 왜 우리가 이 새만금개발을 반대하는가, 왜 우리가 자연을 떠나면 안 되는가, 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저서생물 하나에도 생명과 사랑을 나눠야 하는가 등에 대해 말씀하는 문정현 신부님의 강단있는 목소리에 저절로 더위가 사라질 정도였다.
 
천도제 후 만장을 든 사람들과 해창갯벌을 돌았다.
▲ 새만금개발 반대운동 20주년 기념 장승제 천도제 후 만장을 든 사람들과 해창갯벌을 돌았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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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에서 주관한 천도제 의식따라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해창갯벌의 장승들 사이를 한바퀴 돌며 '돌아오라 바다여, 돌려줄게 갯벌아'라고 노래하는 이들의 사진을 담았다.

7일 행사를 위해 각 단체들과 개인들이 십시일반 먹을 것을 준비한 덕분에 푸짐한 점심을 먹고 나니, 잼버리 행사를 위해 도로 신호등을 조절해주는 경찰 청년들이 생각났다. 그들에게 떡과 음료를 전하면서 '장승제' 행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짧게나마 홍보를 하며 갯벌 살리기 홍보물과 배지를 줬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갑자기 하늘에서는 소위 '에어쇼'가 펼쳐지며 장승제를 위협하는 듯했다. 아마도 잼버리 행사 속 쇼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장승제에 참가한 풍물패들이 신나는 사물가락을 울리면서 비행기의 날카로운 소음을 깊고 넓은 우리가락 풍물로 감싸 안았다. 잼버리 개최를 위해 매립된 새만금 해창 갯벌의 장승들이 보면 어느 쪽 리듬을 탈까.

7일 장승제는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 전북 환경운동연합 등 30여개의 단체들이 모여 올린 행사다. 해창갯벌 및 새만금 이전의 모든 갯벌은 막혔지만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 여전히 40여 종의 멸종위기 생명들이 살아 있는 그곳을 보존하자고 외쳤다. 이제 새만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개발의 포장지인 잼버리와 자연의 원형지인 갯벌을 사이에 두고 참된 진실이 사라진 현실을 장승에게 물어볼 뿐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자연과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겼다.
▲ 장승제를 준비한 사람들 종교를 초월하여 자연과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겼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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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창갯벌, #새만금, #잼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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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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