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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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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차 철근 노동자 : "여러분들, 여기 뒤에 있는 철제 펜스 한 번 만져보십시오. 얼마나 뜨겁습니까. 건설현장 철근은 더 뜨겁습니다. 양철판 위에서 철근 작업을 합니다. 기온 30도가 넘으면 양철바닥 밑에서 열이 올라옵니다." 

형틀목수 노동자 : "이 무더운 여름,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전쟁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땀으로 샤워 하는 느낌이에요. 땀을 쪽 뺍니다. (건설 노동자가 아닌) 직원 화장실에 어쩌다가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거기는 에어컨이 달려있거든요." 


공사현장 안전모를 쓴 건설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맞은편 경찰펜스 앞 기자회견 장소에서 팔에 착용한 '쿨토시'로 연신 땀을 닦아냈다. 폭염 특보가 연일 발효되고 있는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보호하는 '고열 작업' 테두리 밖에 있는 건설 노동자들이 폭염 시 '휴식 '권고'가 아닌 '강제'를 위한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건설노동자들의 이런 목소리는 매해 여름철마다 반복해서 나왔다. 열사병, 일사병 등 폭염 재해로 인한 건설현장 사망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만, 작업 중지 등 정부에서 권고하는 폭염 대책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호소다. 

"강원도서 노동자 쓰러져 의식 없는 상태... 열사병으로 뇌경색도"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아래 건설노조)가 지난 7월 31일부터 1일까지 형틀목수, 철근, 타설 등 전국 건설 노동자 3206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2424명 중 81.7%가 "폭염이어도 별도 중단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온도가 35도를 넘는 등 폭염이 이어질 경우,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옥외 노동을 중단하도록 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목소리였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이는 응답자의 58.5%가 폭염 시 작업중지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한 지난해 동일 조사 결과보다도 더 악화된 수치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올해 20% 정도 (상황이) 더 열악해진 것인데, 더 더워지고 있는데 작업중지를 더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인적인 더위 앞에 쓰러진 현장 사례도 줄줄이 언급됐다. 전 실장은 "강원도 원주에선 전기일을 하던 노동자 한 분이 쓰러져 지금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이창배씨는 열사병으로 뇌경색을 겪은 동료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씨는 "(열사병으로 쓰러져 병원을 갔다가) 집으로 갔는데, 이분이 자기 부인과 딸 얼굴을 못 알아봤다는 것"이라면서 "(열사병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것인데, 그 자리에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뇌경색이 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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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그늘막과 화장실 등 잠시 숨돌릴 휴게 공간과 휴게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45분 일하고 15분 쉬게 한다는데, 우리가 쉴 수 있는 그늘막의 거리는 (현장에서) 10분 내외다. 누가 거기에서 쉬겠나"라면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컨테이너에 들어갔는데, 에어컨이 없는 곳도 있었다. 에어컨을 내 달라고 하면 '여름 다 지나갔는데 무슨 에어컨이냐'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번 실태조사에서 '일하는 작업 위치에서 휴게실이 가까운 곳에 있느냐'는 질문에 '없거나 너무 멀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답한 노동자가 24.9%로 제일 많았고,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쉴만한 공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있긴 한데 부족하다'는 답변이 68.3%에 달했다. 이씨는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를 때려잡기 위해 건폭이니 뭐니 하지만, 그로 인해 현장은 폭염 속에서도 대책 없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철근 멘 어깨 아래 살익고, 새시 유리 올라오면 숨 턱턱 막혀"

건물을 쌓아 올리는 건설 노동 특성상, '갈수록 더워질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도 함께 강조됐다. 

"철근은 장갑을 두 개, 세 개 껴도 어깨에 철근을 메면 얇은 옷 한장 아래 살이 다 익는다. 타설 노동자들은 작업하는 동안 레미콘 복사열로 온몸이 익는다. 실내 건설은 어떤가. 건물의 골조와 뼈대가 올라가면, 뒤따라 올라오는 게 샷시(새시)고 유리다. 올라가며 (공간을) 다 막아버린다. 숨이 턱턱 막힌 채 작업할 수밖에 없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건설 자본들은 이윤-공사기간 단축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 무더운 여름 노동부의 권고가 현장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는 그 현실이 두렵다"면서 "너무 더워서 쓰러져 죽을거 같아 잠깐 쉬면, 작업을 방해한다고 잘릴까 봐, 죽을지도 모르고 (노동자들이) 일할 것 같아서 두렵다"고 우려했다.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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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지난 1일 '폭염 대응 긴급 지방관서장 회의'에서 사업주의 작업중지권 행사 등을 언급하며 "폭염에 취약한 소규모 건설 현장을 적극적으로 예찰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건설노조는 관련 재해에 대한 법제화 없이 권고에 그친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건설현장은 폭우가 내리고 나면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심해지는데, 그러면 가뜩이나 먼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더 못 가게 되는 상황"이라면서 "(건설사가 요구하는) 공사기간을 맞추려면 안전하게 일할 수가 없는데,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 실장은 이어 "지난해에도 숨진 노동자가 나왔기 때문에, 사망 재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권고만이 아닌) 법제화가 필요하다"면서 "지금도 (폭염 때문에) 실신했다는 연락을 많이 주는데, 눈치 보며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폭염에는) 쉬는 것을 강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폭염, #열사병, #건설, #철근, #작업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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