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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
 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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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배경으로 만든 재난 드라마 <더 데이스>를 넷플릭스에서 봤다. 1편당 1시간 정도 분량의, 8회 시리즈물이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한 달여 늦게 공개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한 논란을 잠재우려는 정부의 의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구설수도 돌았으나,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한 단순한 절차 문제로 확인됐다. 하지만 내가 이 8부작 시리즈를 7월 28일 밤부터 이틀간 몰아서 보게 된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 문제가 없었다면 굳이 무리하면서 한꺼번에 8회를 몰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를 모두 본 뒤 뉴스 검색을 해봤더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위험성에 대한 경고보다 재난을 극복한 영웅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 평범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원전 사고의 무자비함이나 우왕좌왕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와 도오전력('도쿄전력'의 드라마 속 이름) 상층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목숨을 마다하고 사고 수습에 나서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현장 직원과 자위대원, 협력업체 직원들의 분투가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건 만든 사람의 의도와 보는 사람의 해석이 같을 수 없다. 작품을 만든 사람은 영웅 서사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큰 줄거리 속에 살짝살짝 비치는 위험한 모습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지금의 현실이 투영되는 드라마 속 위험 징후들
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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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드라마를 보고 원전이 얼마나 무서운지 더욱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깨달았다. 쓰나미로 침수돼 폭발 직전의 원전 사고는 '현장의 영웅들'이 가까스로 기적적으로 수습했지만, 요시다 소장(야쿠쇼 코지 역)의 다음과 같은 말은 원전 신화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들렸다.

"후쿠시마 원전을 제대로 해체하려면 앞으로 30~40년이 더 걸린다. 방사선 물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도 요원하다."

또 드라마 속에는, 원전이 폭발하면 일본 지역의 1/3이 오염되고 5000만 명의 살 곳이 없어진다는 전문가의 가공할 분석이 나온다. 이런데도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윤석열 정권은 원전의 확대에 목을 매달린 듯이 행동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고 경험에서 배우는' 참으로 우매한 짓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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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고위 관계자, 원전 마피아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자세다.

총리는 현장 요원들이 폭발 직전에 결사대를 구성해 폭발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기에 헬기를 타고 현장을 방문한다. 일각이 금쪽같은 시간인데, 현장소장은 총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준비를 하느라 애를 태우고 시간을 낭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재해가 나면 높은 사람들이 현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드라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긴급한 시기에는 현장에 가지 않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현장이 필요한 것을 제때 지원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전력회사 간부들의 무책임도 눈에 띈다. 관방장관은 긴급대피선언을 하면서도 자택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한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자, 이번엔 대피 지시를 내리면서도 정확한 위험을 말해주지 않고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라는 것이라고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전력회사 고위 관계자는 가스를 뺄 때 나오는 방사선이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위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이 말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따라 위험할 수도,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실제 상황은 관계없다.

이 말을 오염수 방류에 적용하면,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위를 빌려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정의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실제로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이 피해자의 문제 제기로부터 수 년 또는 수십 년이 흘러서야 인과관계가 밝혀졌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괜한 괴담'으로 몰아치기 어렵다.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
2023년 7월 21일 후쿠시마현 후타바에 있는 도쿄전력(TEPCO)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언론을 대항으로 한 투어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오염수 저장 탱크가 줄지어 서 있다.
 2023년 7월 21일 후쿠시마현 후타바에 있는 도쿄전력(TEPCO)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언론을 대항으로 한 투어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오염수 저장 탱크가 줄지어 서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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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드라마에서 얻은 교훈은 간단하다. 원전은 편리성과 효율성에 비해 너무 위험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이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도 인간의 이런 오만이 낳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보다 효율과 개발, 편리만 찾는 인간에 대한 경고로 봤다.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하다고 선전하며 함부로 흘리지 마라.' 원전의 위험을 통제하기에는 인간의 능력이 아직 너무 모자란다. 이게 <더 데이스>를 몰아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태그:#후쿠시마 원전, #더 데이스, #원전 사고, #핵 오염수, #3.11 동일본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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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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