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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해수욕장
 변산 해수욕장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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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가슴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다. 여행은 새롭게 맞이하는 지역의 풍광과 문화에 환호하지만, 여행이 과거 추억과 연결되는 순간 감정은 더욱 밀도 있고 풍부해진다.

이달 7월 초, 1박2일로 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여러 곳을 탐방했다. 이 곳은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지이며, 교직 시절 동아리 겨울 수련 장소였기도 하다.

변산반도는 해수욕장과 해안 절경을 품고 있는 외변산과 내륙의 내변산을 안고 있는 국립 공원이다. 여행에는 통상 여러 교통수단이 이용되겠으나, 내게 있어 활동적이고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은 뚜벅이 여행이며, 특히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실길'은 온몸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도보 여행의 들머리인 변산 해수욕장은 가는 모래와 낮은 수심, 노을 전망대와 모래 조각 등의 볼거리가 가득하다. 사이드 라인이 없는 무한 체력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고 '밀레의 만종'에 버금가는 '노을 속 조개 캐는 가족' 풍경화를 연출할 수도 있다.

변산 해수욕장 거쳐 고사포 가는 길
 
고사포 가는 길의 출렁다리
 고사포 가는 길의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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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포 가는 길에서 만나는 농게
 고사포 가는 길에서 만나는 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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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길' 2코스인 고사포 가는 길은 6월의 샤스타데이지와 8·9월의 자생 붉노랑 상사화가 피는 꽃길이다. 한편으로 예전의 해안 초소였던 길은 낡은 철조망과 해안 경비초소가 남아있어 주변의 풍광과 단절된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만약 현장에서 만나면 깜짝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 숲길에서 갑자기 붉은 앞발을 지닌 농게와 마주칠 수도 있다. 낯선 생명체에 깜짝 놀란 농게도 사력을 다해 도망간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 있는 마실길은 낯선 긴장감, 파도 소리와 갯내음, 풀꽃과 새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는 호기심 가득한 길이다.

고사포에 가면 해송이 보기 좋다. 해송 숲에는 국립 공원 관리 공단에서 운영하는 바람채 숲속 방갈로가 있다. 관광지에서 겪게 되는 바가지요금의 위험에서 벗어나 한적한 숲속에서 오롯이 서해를 만끽할 수 있다.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숙소를 잡기 위해서는 빠른 손놀림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 준비의 하나로 숲속 모험 놀이를 설치하고 있기도 하다.

해안 도로를 따라 격포 채석강을 향해 가다 보면 후박나무 군락과 절벽, 해 질 녘 석양이 아름다운 적벽강에 다다른다. 각 지방은 특유의 신화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삶의 환경이 척박하고 험한 지역일수록 기복적 신앙을 지닌 전설이 흔하게 전해진다. 변산도 예외가 아니다.

적벽강에서 마주하는 수성당은 계양 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써,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 지역 주민들이 수성당제를 지낸다.
 
적벽강 노을길
 적벽강 노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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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수성당 내부
 적벽강 수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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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이 소환한 옛 기억 

변산반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퇴적암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채석강이다. 서해안의 노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인간이 이성적이면서 감정적 동물임을 체감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채석강이 전해주는 붉은 노을은 여행자를 철학자로 만들고 감정의 폭풍으로 휘말리게 한다.

차를 타고 격포에서 곰소에 이르는 해안 도로를 따라 솔섬을 품고 있는 상록 해수욕장과 자그맣고 아름다운 모항을 지난다. 내게 있어서, 모항은 오래전 겨울 동아리 수련회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당시 폭설로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모항에서 곰소 터미널까지 약 13km의 길을 4시간 가까이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추운 겨울바람 부는 날 눈 덮인 해안 도로를 끝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동아리 친구들과의 서로의 뜨거운 가슴과 따뜻한 시선이 있어 가능했다. 2023년 여름 변산 해변 도로는 25년 여전으로 나를 소환했고, 그 시기를 떠올리자 여전히 가슴이 뭉클했다.

내소사에 들어섰다.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면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 광릉 전나무숲과 함께 대한민국 3대 전나무숲인 내소사 숲이 나타난다. 아늑하고 정겨운 전나무숲을 따라가면 사천왕문과 봉래루를 지나 내변산이 품고 있는 작고 아담한 내소사와 마주한다.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나무 그대로의 결을 간직한 소박함과 절제미로 화려한 색칠로 꾸민 단청의 아름다움을 능가한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자연' 한자어 풀이 그대로 '저절로 그러한', 꾸밈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경이롭고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내소사 전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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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전경
 내소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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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폐항. 가난하여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그럴까? 이건 2018년 개봉한 영화 <변산>에서 나오는 명대사지만, 나는 딱 들어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변산에 있어, 노을은 여러 톤의 붉은 물감을 칠하고 조명을 비추어 변산의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연일 따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변산은 모든 곳이 아름답다. 노을은 그걸 돋보이게 하는 물감이고 불빛일 따름이다.

태그:#변산, #여행, #노을,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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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 및 거주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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