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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란 것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일을 겪지만 사람마다 그 경험은 모두 다르다. 그 일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너무 특별해서 아무나 경험할 수 없다. 
   
소하랑 법률사무장
 소하랑 법률사무장
ⓒ 소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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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사의 주인공은 케이앤비 법률사무소의 소하랑 법률사무장이다. 그에겐 산업재해 사고를 당한 남편이 있다. 소하랑씨는 산재자의 가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게 경험으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먼저 지나온 시간들을 토대로 힘껏 수많은 산재자들을 도왔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질 수 있었을까? 다음은 소하랑 사무장과 지난 7월 18일 진행한 인터뷰다. 

산재, 같은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

결혼 12년 차 소하랑씨는 남편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손가락 2개를 잃었다. 뇌를 다쳐 아내와 딸도 알아보지 못한다. 투석을 받고 당뇨 치료도 받는다. 소하랑씨는 남편을 간병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근로복지공단을 만나고 법률적인 문제도 대응해왔다. 그러던 중 암에 걸렸다. 수술 후에 건강관리까지 해야 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4년 동안 숨 쉴 틈 없이 그녀에게 몰아쳤다. 혼자서 모든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결국 공황장애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직접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서 온몸으로 부딪쳐 얻은 지식과 정보를 매일 기록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공부를 하며,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2년 전부터 '슬기로운 산재생활'이라는 산재 정보 공유 카페를 만들고 운영 중이다. 남편과 아이를 재우고 산재 피해자의 사연과 질문에 답글을 달며 밤마다 사람들을 도왔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며, 산업재해 후 피해자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을 공유했다.
 
소하랑씨의 남편 간병 일지 <휴가갑니다>.
 소하랑씨의 남편 간병 일지 <휴가갑니다>.
ⓒ 소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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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편 간병 일지도 썼다. 그리고 책을 냈다. 책 <휴가 갑니다>의 작가 소하랑은 그렇게 탄생했다. 남편 간병 생활 4년, 암 투병 생활 2년은 음악 강사로 일했던 그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난 6월부터 부산에서 인권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산업재해 때문에 법률사무소를 찾는 사람과 경험을 나누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상담하러 온 피해 가족은 누구보다 그녀를 신뢰한다. 모두 산재 피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같이 울고 웃으며, 서로의 처지를 위로한다. 산재 사고를 겪은 후 피재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그 때문에 찾아오는 우울과 외로움, 고립감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 심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찾아온 사람 중에 사고로 뇌병변 환자가 된 피재자가 있었다. 공단 측으로부터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으니 산재를 종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대로 종결된다면 환자는 치료비 100%를 부담해야 했다. 소하랑씨는 피재자에게 모든 의료 기록지를 다 떼라고 말해주었다. 조금이나마 환자가 호전돼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덕분에 산재 보험 혜택은 연장될 수 있었다.

살기 위해, 잊고 싶은 기억 수백번 떠올려야 한다

'슬기로운 산재생활'의 목표는 피재자가 산재를 '졸업'하고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대한 힘껏 도와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로 나간 뒤 재요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그렇다. 피재자가 몸을 회복하고 회사에 출근하면 보직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퇴사한다. 부양할 가족이 있어 다시 일해야 하는데, 복직 후 몸이 예전보다 더 안 좋아져 산재 재요양을 하기도 한다.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재요양 환자가 되면 스스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이 잘 해결돼 복직했다가 다시 산재 재요양 상태가 되신 분도 있어요. 다시는 사회로 못 나갈 것 같다고 본인이 판단하셨나 봐요. 그 후로는 연락이 아예 끊겼어요. 그분이 현재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도 불가능해요."
 
깨어난 정성민씨를 바라보는 아내 소하랑씨.
▲ 소하랑씨와 남편 정성민씨.  깨어난 정성민씨를 바라보는 아내 소하랑씨.
ⓒ 소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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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들마다 남편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때마다 소하랑씨는 남편의 사고 당시 장면을 계속 떠올려야 했다. 심리적인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소하랑씨는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지만, 현행 산업재해 관련 제도 하에서는 피해자가 모든 피해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아픈 이에게 직접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잘려나가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이럴 때는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끔찍한 '기억 되새김질'을 멈추면 피해자가 손해를 본다. 피재자들의 나이, 사고 경위, 병증 등등의 상황에 따라 보상은 천차만별이다. 각각의 경우에 따라 소멸시효, 손해배상 같은 법리적인 해결점이 다르다. 법을 몰라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을 포기하는 피재자들이 많다.

노동자 전태일은 노동법을 공부하며 친구 중에 대학생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지만, 산재 처리와 보상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상담할 수 없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변호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인권변호사 김종열씨는 남편의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 헤매다 가장 마지막에 만난 변호사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사건을 수임한 김종열 변호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변호사를 양성하듯' 소하랑씨에게 법적 지식을 전수했다.

 
소하랑 사무장의 책상. 여러 서류들이 쌓여 있다.
 소하랑 사무장의 책상. 여러 서류들이 쌓여 있다.
ⓒ 소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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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받은 지식을 글로 정리해 카페에 올렸다. 그 글을 읽고 김종열 변호사는 소하랑씨와 같이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소하랑씨를 보고 산재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고 몸소 겪은 경험들이 있어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누구보다 적합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결국엔 이게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저도 의뢰인이었을 때 소송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정말 많았어요. 남편이 근무했던 회사에서 온갖 욕을 먹기도 했죠. 남편이 쓰러졌는데 이렇게까지 욕을 들어야 하나 너무 허탈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건네는 말에 상처를 입기도 했어요. 우울감에 점점 무너져갔어요. 그런 저를 '끝까지 할 수 있다. 내가 더 힘을 내겠다'며 붙잡아준 게 저희 변호사님이에요."

소하랑씨는 누군가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끌어준다는 게 힘이 된다는 것을 직접 느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을 응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는 몰라서 두세 번 돌아갔거든요. 산재 때문에 찾아 오는 분들은 한 번만 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공단을 다니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서류 한 장 잘못 작성하면 몇 번을 다시 작성하는 경우도 생겨요. 별것 아니지만 서류 한 칸, 한 칸 채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혹여 잘못 작성하면 일이 망가지기도 해요."

 
소하랑씨의 명함. 슬기로운 산재생활 전무&매니저 소하랑씨
 소하랑씨의 명함. 슬기로운 산재생활 전무&매니저 소하랑씨
ⓒ 소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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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랑씨가 산재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제대로 아셔야 해요." 어설프게 알거나 마음대로 판단하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면 본인만 손해다. 알아서 해주는 공무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피해자가 많이 알면 알수록 억울함을 풀 수도 있고 보상액도 늘어나고, 치료 과정에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 피재자 보호자가 소하랑씨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요양 기간에 한 번도 간병비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 피해자 가족에게 산재보험을 통해 간병비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주지 않았다.

"몰라서 못 받은 거예요. 다시 말해, 피해자가 모르면 아무도 먼저 도와주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죠."

산재사고 이후 정보가 부족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산재 환자들 중 60~70%는 일용직에 종사하는 고령의 노동자예요. 간단한 인터넷 검색도 잘 못합니다. 게다가 이분들은 공공기관에 가서 물어보는 것을 꺼리세요. 소극적인 사람이 안내를 받으러 간다고 적극적인 응대를 해주지는 않아요. 딱 물어보는 만큼 대답해주죠.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계속 가서 물어봐야 했어요. 산재가 생기면 적어도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죠. 산재는 슬픈 일이지만, 일이 벌어지고 나면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몸으로 산재 대처법을 익혔어요. 그리고 쉬운 말로 피해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요. 제 역할은 아마도 산재 사고 대책 안내 표지판이라고 해야할까요?"
 
사고 전 정성민씨와 소하랑씨.
▲ 정성민씨와 소하랑씨. 사고 전 정성민씨와 소하랑씨.
ⓒ 이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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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바위가 아니다. 부서지고 갈려서 이미 모래가 된 지 오래다. 그 모래길 위를 상처받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산업재해는 누구나 겪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산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거예요."

태그:#산업재해, #산재, #소하랑, #법률사무장, #산재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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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전문 취재 프리랜서 기자 당신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 블로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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