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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흐리고 습한 날들의 연속이다. 축축하다 못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쨍한 햇볕에 널어놓고 바삭하게 말리고 싶은 요즘. 기분 전환삼아 쨍하게 매운 낙지볶음을 먹었다가 입 안이 불에 데인 듯 매웠다.

그때 밑반찬으로 나온 미역초무침이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매운 낙지볶음과 새콤달콤 미역초무침은 페어링이 좋았다. 그날 이후 나는 미역초무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미역초무침에 도전하다

우리 집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국을 즐겨 먹지 않는다. 그래도 싱크대 어딘가에 건미역은 늘 있다. 내가 돈을 주고 산 적은 없지만, 언젠가 친정 엄마로부터, 시어머니로부터 나눔 받은 미역이다.

미역하면 국만 생각했던 나에게 미역초무침은 미역의 신세계였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떠도는 여러 레시피를 참고해 미역초무침에 도전했다. 마침내 싱크대 속 미역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미역을 불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초와 설탕으로 맛을 냈다. 참치액젓을 넣으면 음식의 감칠맛이 살아난다던 친구의 말을 상기하며 국간장 대신 참치액젓으로 간을 더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새콤달콤 입맛 돋우는 깔끔한 미역초무침이 완성됐다.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해 샐러드처럼 꺼내 먹으니 더 맛있었다. 여름철 대표 반찬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여름 대표 반찬인 새콤달콤 시원한 미역초무침.
▲ 미역초무침 여름 대표 반찬인 새콤달콤 시원한 미역초무침.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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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초무침 덕분에 장마철 입맛도 되찾았지만, 기억 저편 속 추억의 음식도 찾았다. 어릴적 우리 가족은 일요일마다 성당에 갔다. 주말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엔 점심으로 외식을 하곤 했는데 누리지 못한 일요일 늦잠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그때 여름이면 늘 먹던 메뉴가 있었다, 우리끼리는 '냉미역메밀'이라 부르던, 식당에서 붙인 정식 이름으로 '쟁반모밀'이었다(보통 모밀과 메밀을 혼용해 쓰는데 모밀은 메밀의 사투리임을 밝혀둔다). 

흔히 메밀국수는 시원한 장국과 메밀 면이 따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간무와 고추냉이를 푼 장국에 면을 조금씩 적셔 먹는데 늘 양이 적었던 건 나뿐일까? 그런데 '쟁반모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각종 채소와 함께 커다란 접시에 나오는 푸짐한 메밀국수였다.

여기에 포인트는 단연코 미역이었다. 그때도 그 미역이 그렇게 맛있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원래 이름인 '쟁반모밀'이 아니라 '냉미역메밀'로 기억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전반적으로 새콤달콤 시원했던 냉미역메밀.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 여름은 냉미역메밀이었다. 

그 후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동네에 터를 잡았다. 부모님 역시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시면서 그 식당과 멀어졌다. 냉미역메밀은 자연스레 잊혀갔다. 가끔 추억의 안주거리 정도로 남아있던 그 냉미역메밀이 미역초무침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여전히 그 맛 그대로일까?
 
어릴적 부모님과 자주 가던 식당에서 여름 특선 메뉴로 즐겨 먹던 냉미역메밀국수.
▲ 냉미역메밀 어릴적 부모님과 자주 가던 식당에서 여름 특선 메뉴로 즐겨 먹던 냉미역메밀국수.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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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이 그리워 그때 그 식당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성업 중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쟁반모밀'은 여름철 특선 메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가게의 대표 메뉴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당장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 나들이를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선뜻 몸과 마음이 나서지 않았다. 

추억은 미화된다. 특히 음식은 당시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즐겨가는 와플집이 있다. 딸기빙수와 와플이란 이색 조합으로 여고생들 사이에서 인기 꽤나 있던 곳이다.

와플 맛집이라며 남편을 데리고 갔는데 어째 반응이 시큰둥해서 실망한 적이 있다. 하긴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와플이 넘쳐나는 세상에 싸구려 버터와 사과잼을 바른 와플이 뭐가 그렇게 맛있겠는가.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최고의 와플이다. 그 어떤 맛도 추억의 맛을 이길 순 없다. 

그러니 그 식당에서 오랜만에 먹는 냉미역메밀이 내가 기억하는 예전 그 맛일지 알 수 없다. 맛은 안 변했어도 그 사이 내가 변했을 테니 말이다. 자고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가 가장 아름답다지 않던가. 그러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냉장고에 있는 미역초무침으로 어떻게 만들면 그때 그 맛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장금이도 아닌데 그려낸 맛
 
살얼음이 서걱서걱 미역이 오돌오돌 씹히는 새콤달콤 시원한 냉미역메밀 한 접시 어때요?
▲ 냉미역메밀 살얼음이 서걱서걱 미역이 오돌오돌 씹히는 새콤달콤 시원한 냉미역메밀 한 접시 어때요?
ⓒ 오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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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고래로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대미각인 장금이는 머릿속으로 맛을 그려 최고의 고래 요리를 왕에게 진상한다. 당시 나에게는 "맛을 그린다"라는 표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요리가 창의적인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 어디선가 맛있게 먹은 음식이 있으면 장금이 흉내를 냈다. 

어린 마음에 숙제 같았던 일요일 성당 미사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먹던, 여름철에만 맛볼 수 있었던 냉미역메밀의 맛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새콤달콤한 미역이 오돌오돌 씹히는 살얼음이 서걱거리던 냉미역메밀. 더운 여름 장마철,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까지. 그렇게 나만의 초간단 냉미역메밀 레시피를 완성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 그랬듯, 훗날 남편과 두 딸 역시 여름하면 냉미역메밀을 떠올릴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땐 엄마표 냉미역메밀로 기억될 우리 가족만의 또 다른 추억. 그렇게 추억과 맛은 이어진다.

흔히 미역을 먹으면 예뻐진다고들 한다. 미역이 피와 피부를 맑게 해주고 풍부한 칼슘이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냉미역메밀로 여름 장마의 후텁지근한 날씨는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기분 전환은 물론 건강과 미모까지 챙겨보는 건 어떨까? 

<미역초무침>

재료 : 건미역10g, 다진 마늘 1/2 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3큰술, 참치액젓 1큰술, 오이 1/2개, 양파 1/4개 

만드는 법 
1. 건미역을 물에 불린다.  
2. 불린 미역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청주를 넣으면 비린내 제거에 도움이 된다).
3. 찬물에 충분히 헹군 미역을 꾹 짜서 물기를 제거한다.
4. 오이는 어슷썰고 양파는 채썬다.
5. 다진 마늘, 식초, 설탕, 참치액젓으로 양념을 만든다. 
6. 준비한 재료에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끝! 

<냉미역메밀 만들기>
재료 : 미역초무침, 메밀국수, 시판하는 동치미 냉면 육수 한 봉, 쯔유 1큰술, 유부 5장, 방울토마토 3알, 쌈무 조금 

만드는 법 
1. 시판하는 동치미 냉면육수를 사다가 냉동고에서 살짝 얼린다. 
2. 메밀면을 삶아 차가운 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3. 유부와 쌈무를 채썬다.
4. 깨끗하게 씻은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자른다. 
5. 살짝 언 냉면육수에 쯔유 1 큰 술을 넣어 육수를 만든다.
6. 넉넉한 접시에 삶은 2, 3, 4, 그리고 미역초무침을 푸짐하게 올린다. 
7. 6에 준비한 육수를 부어준다. 끝! 

태그:#장마철, #입맛살리기, #냉미역메밀, #쟁반모밀, #추억의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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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쓸모 있고 소모할 수 있는 것들에 끌려 그때그때 다른 걸 읽고 새로운 걸 만듭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오늘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매우 사적인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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