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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는 창원지역 활동가가 보내온 편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는 창원지역 활동가가 보내온 편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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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정히 보살피고 삶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파괴되지 않고 삶이 망가지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경남 창원지역 진보·통일운동 활동가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7일 '정권위기 국면전환용 공안탄압 저지 및 국가보안법 폐기 경남대책위'는 편지를 소개하면서 "걱정하고 있는데 잘 지낸다고 하니 안심이다"고 밝혔다.

일명 '창원 간첩단' 사건으로 불리는 진보·통일 활동가들은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고, 서울지역 거주자 1명을 포함해 4명이 지난 3월 15일 구속기소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들 가운데 한 활동가가 경남대책위 관계자에게 손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국민참여재판 항고한 것이 기각됐다고 하니 재항고하면 7월 하순이나 8월이 돼야 공판이 열릴 것 같습니다"며 "재판에 관련된 자료를 보며 이런저런 준비하는 것과 면회와 운동, 그리고 책 읽기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루하지 않고 시간은 잘 지나갑니다"라고 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원진 레이온 사건을 언급한 그는 "대한민국은 수없이 많은 노동자의 생명과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과 결탁한 권력과 그에 기생하는 부역자들에 의해 노동자들은 돈벌이 수단으로, 일회용 폐기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라며 "그 아픈 현실이 지금도 계속됩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는 결코 정상일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7월의 뜨거운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벗들은 불타는 7월을 보낼텐데 난 그저 바라보며 응원의 박수를 칠 수 밖에 없겠네요"라고 인사했다.

'창원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아직 공판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최근까지 네 차례 진행된 공판준비절차에는 구속돼 있는 활동가들은 출석하지 않고 변호사들이 참여해 앞으로 공판 진행 과정에 대해 논의했다.

경남대책위와 변호사들은 구속된 활동가들의 거주지가 경남이기에 창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 신청에 대해 담당 재판부가 기각해 항고했지만 서울고등법원도 기각했다. 이에 대법원에 재항고를 해놓은 상태다.

이들의 구속 기간은 6개월로, 오는 9월초까지다. 1심 판결이 이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병하 경남대책위 공동대표는 "1심 판결은 구속기소 6개월 안에 하도록 돼 있는데,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볼 때 그 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변론을 맡고 있는 박미혜 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라며 자료한 자료가 많다. 권수로는 52권이고, 디지털 자료에다 녹취록, 동영상도 있다.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1심 재판이 6개월 안에 나지 않았을 경우, 국정원에서 추가로 별건으로 신청하면 그때 가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이제 7월이네요. 며칠간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오늘은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이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습니다. 경남은 여기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는데 피해 없이 잘 지나갔는지요. 다음 주에 또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장마가 지나가면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역대급 더위가 몰려온다는데 거리에 나서야 할 일도 많아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내겠군요.

저는 무탈하게 잘 있습니다. 독방이라 사람의 열기도 없고 방에 선풍기도 있어서 더위는 견딜만합니다. 칸칸이 막혀 있어서 그런지 모기도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너 마리를 잡긴 했지만 아직 물리지는 않았습니다. 국민참여재판 항고한 것이 기각되었다고 하니 재항고하면 7월 하순이나 8월이 되어야 공판이 열릴 것 같습니다. 재판에 관련된 자료를 보며 이런저런 준비하는 것과 면회와 운동, 그리고 책 읽기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루하지 않고 시간은 잘 지나갑니다.

몇 주 전에 알콜 중독자가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수로 옆방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종일 횡설수설했습니다. 왜 자기가 여기 있어야 하냐고, 내보내 달라면서 밤새도록 떠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깥 병원에 나가 치료를 받고 오더니 며칠 지나서부터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출소했습니다. 누군가 벌금을 냈다고 하더군요. 그가 어떤 과정으로 알콜중독자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면 삶이 변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달팠을 삶의 환경과 순탄하지 못할 미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누나야 누나야'라며 애닯게 누나를 찾는 소리를 들으며 그를 보살피고 그에게 따뜻했을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정히 보살피고 삶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파괴되지 않고 삶이 망가지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하여 벗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텔레비전 꼬꼬무에서 원진레이온 사건이 나오네요.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은 수없이 많은 노동자의 생명과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과 결탁한 권력과 그에 기생하는 부역자들에 의해 노동자들은 돈벌이 수단으로, 일회용 폐기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 아픈 현실이 지금도 계속됩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는 결코 정상일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7월의 뜨거운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벗들은 불타는 7월을 보낼텐데 난 그저 바라보며 응원의 박수를 칠 수 밖에 없겠네요. 모두들, 푹푹 찌는 무더위가 몰려오더라도 더위에 지치지 말고 건강을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밝고 힘찬 모습으로 지내길 빌며 이만 줄입니다.

태그:#국가보안법, #통일, #진보, #서울중앙지방법원,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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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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