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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책임관 업무 1위를 두 번이나 한 울산시교육청의 두 주역 구은회(오른쪽) 장학사와 하광호 장학관(오른쪽)과 필자(가운데)
 국어책임관 업무 1위를 두 번이나 한 울산시교육청의 두 주역 구은회(오른쪽) 장학사와 하광호 장학관(오른쪽)과 필자(가운데)
ⓒ 울산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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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쓰이지만, 뜻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다가오지 않는다. 쉽게 다가오는 말이 아니다 보니 지나가는 말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울산시 외솔중학교 1학년 김무성 학생이 다듬은 '지속 세뇌' 또는 '마음 조작질'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하! 그렇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6223 미래포럼 창립대회가 열린 6월 23일 창립위원으로 참석하고 곧이어 울산광역시교육청을 방문했다. 아침부터 3시까지 바쁜 일정을 마친 하광호 장학관과 구은회 장학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필자는 지난해 교육청 직원과 연수에 참여한 교사 대상 특강을 두 번이나 해 더욱 반가웠다.

만나자마자 하광호 장학관은 '가스라이팅'을 비롯한 학생들이 만든 집중 홍보용 자료를 보여주었다(위 사진).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옐로 카펫(yellow-carpet) → 노란 생명 지킴이, 어린이 지킴구역
②셰어 하우스(sharehouse) → 나눔가옥, 더불어 주택
③텐션(Tension) → 뜬마음, 기분지수
④헬스 케어(health care) → 건강 돌보미, 건강 지킴이
⑤케미(chemistry) → 찰떡 호흡
⑥썸타다('something'+'타다') → 설렘 기류, 살짝 연애
⑦챗봇(chatbot) → 대화 인공지능, 대화 로봇
⑧가스라이팅(gaslighting) → 지속세뇌, 마음 조작질
⑨에어프라이어(air fryer) → 공기화덕, 공기굽개
⑩캘리그라피(calligraphy) → 꾸밈 손글씨, 손그림 글씨
⑪오마카세(お任せ-일본어) → 맡김 요리, 주방장 마음 요리
⑫굿즈(goods) → 문화기획상품
⑬갓생(GOD+LIFE) → 멋생
⑭티키타카(tiqui-taca-스페인어) → 맞장구


이 용어들을 보면 대안어가 '찰떡 호흡(케이), 맞장구(티키타카)'처럼 친근한 우리말도 있고, '대화 인공지능, 대화 로봇'처럼 쉬운 말로 바꾼 것도 있다. '멋생(갓생)'과 같은 기발한 조어, '공기화덕, 공기굽개(에어프라이어)'와 같이 쓰던 말과 우리말 조어법을 잘 활용해 지은 말도 있었다.

마침 이 내용이 여러 언론에 보도가 돼 익히 알고 있었다. 인터넷 일부 댓글에서는 억지스럽다는 반론도 있다고 했더니 하 장학관은 예상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일부 다듬은 말은 생경한 느낌을 주니 억지스럽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저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통조차 어려운 외국말 쓰는 것은 더 억지스럽지 않으냐고요?"

구은회 장학사가 말을 거들었다.

"일부 다듬은 말에 대해 이의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다듬은 이 말들 전체를 보면, 쉽게 쏙쏙 다가온다고 무릎을 치는 어른들이 더 많습니다.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도 대부분 외국어, 외래어에 습관이 돼서 그럴 겁니다."

외솔 정신을 잇는 아이들

우리말 다듬기 운동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김미성 외솔중학교 국어교사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이 영어와 친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더라고요. '옐로 카펫' 같은 경우와 같이 전혀 이해 못 하는 외국어도 많아 일부 언론에서 쓰고 있는 말이 어렵다는 걸 실감을 하게 돼 그래서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거죠"라고 말했다. 

학년 차원에서 단체 참가했는데 그중에 상을 받은 아이들 많이 나와 전체 쉰다섯 명 중 세 명이나 수상했다고 한다. 쉬운 말글 운동의 선구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뜻을 잇는 외솔중학교이고 외솔기념관이 근처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더 열심히 참여한 것 같다고 했다.

김미성 선생님 소개로 '가스라이팅'을 바꿔 대상을 받은 김무성 학생(외솔 중 1)과 직접 통화를 해봤다. 소감을 묻는 말에 "친구들과 쉬운 말로 바꾸는 게 재미있어서 참여했는데 상까지 받고 주변에서 바꾼 말뜻이 쏙쏙 들어온다고 말해 줘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에 대해 언제 들어봤냐고 했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외솔 기념관에 견학을 자주 가서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쉬운 말 쓰기가 왜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쉬운 말을 쓰면 이해가 잘 되니, 소통이 잘되고 그만큼 공감도 잘 되는 거죠."라고 어른스럽게 답했다.

쉬운 말글 정신을 스스로 실천하게 하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외솔 최현배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국어교사 출신 하광호 장학관과 구은회 장학사.
 외솔 최현배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국어교사 출신 하광호 장학관과 구은회 장학사.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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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 최현배의 고향이라 그런지 울산광역시교육청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책임관 업무평가에서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연거푸 1위를 했다. 그 비법이 무엇인가 보았더니 각 학교와 학생들 스스로 쉬운 말로 바꾸기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공모전도 열고 우리 말글 동아리마다 <한글교양>(김슬옹, 아카넷)과 같은 교양서도 보급하고, 활동 보조금도 지급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글교양>은 필자의 책인지라 "이렇게 특정 책을 보급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마지못해 물었더니 하 장학관은 '철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외솔 최현배 선생에 미쳐 철도공무원도 그만두고 한글운동가, 한글학자의 길을 40년 넘게 걷고 있는 분의 책을 외솔 고향에서 보급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문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공공 기관에는 <공문서 실태 분석>(2022) 지침서를 보급했고 이런 책자 등에서 다듬은 말을 다섯 분야로 나눠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첫째는 공공언어(행정용어) 다음은 말로 "등재→목록에 있음, 목록에 있는, 백 데이터(영)→①근거 자료 ②참고 자료 ③보관 자료, 팸투어→사전 답사 여행, 홍보 여행, 초청 홍보 여행, 소요되다→들다, 걸리다, 일환으로→(...의)하나로, (...의)한 가지로" 등이다.

둘째로는 뉴스에서 자주 보는 용어 다듬은 말로 "그린슈머→녹색 소비자, 모바일 커머스→이동통신 거래, 체크슈머→꼼꼼 소비자, 백브리핑→덧보고, 도어스테핑→ 출근길 문답, 약식 문답" 등이다.

셋째로는 알고 보니 한자어? 다듬은 말로 "교부하다→내주다, 구술하다→말로 하다, 하여간(何如間)→어쨌든, 하여튼, 어쨌든지, 단계적으로(段階的으로)→차례차례, 급선무(急先務)→먼저 일, 먼저 할 일" 등이다.

넷째, 누리소통망・누리망 용어 다듬은 말로는 "온택트→영상 대면, 화상 대면, 언박싱→개봉(기), 쿠키 영상→부록 영상, 디엠→쪽지 우편 광고, 우편 광고물, 쇼츠폼(숏폼)→짧은 영상, 짧은 형식" 등이다.

다섯째, 코로나19 용어 다듬은 말로는 "코로나 쇼크, 코로나 19 쇼크→코로나 충격, 롱 코비드→코로나 감염 후유증, 엔데믹 블루→일상 회복 불안, 트래블 버블→비격리 여행 권역, 여행 안전 권역, 위드 코로나 시대→코로나 일상" 등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국어교사 출신 하광호 장학관과 구은회 장학사는 연거푸 두 번이나 2년 연속 국어책임관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소감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 고향이니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더불어 지난해 안타깝게 순직한 고 노옥희 교육감의 우리 말글 사랑을 기렸다.

태그:#공공언어, #쉬운말, #국어책임관, #공공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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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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