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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을 지도가 아닌 땅에서 직접 만난 것은 해창갯벌에 세워진 장승과의 조우에서부터였다. 2002년 군산으로의 귀향 후 이듬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2003년, 공동단장 오동필 김형균)을 만났으니 직간접적으로 올해 20년째 조사단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셈이다.

이 조사단은 일반시민, 활동가, 전문가가 함께 모여 매달 정기적으로 새만금지역의 물새와 저서생물, 문화 등을 관찰하며 생태계와 거주민들 삶의 변화를 꾸준히 조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이도 별로 없었고 관심을 받고자 하는 회원들도 거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무슨 하늘이 내준 숙제인 양 그들의 활동은 해 뜨고 해 지는 일처럼 너무도 당연한 자연현상 같았다.

그런데 이 조사단이 올해 들어와 엄청난 조명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환경다큐 영화 <수라> 덕분이다. 많은 시사회를 거쳐 얼마 전 극장 개봉에 이르기까지 적잖이 도와준 사람들의 공로가 컸다. 물론 매우 간간이 환경단체로서 대접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가뭄에 콩나듯 한 일이다. 영화 개봉에 힘입어 조사단의 일면이 저절로 홍보되는 것을 보니 자랑스럽다.
 
저멀리 미군부대와 가마우지 서식지가 보인다.
▲ 수라갯벌 저멀리 미군부대와 가마우지 서식지가 보인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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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는 조사단의 단장이자 실제로 팀을 20년 동안 이끌고 있는 오동필씨의 행적을 따라가며 새만금에서 조사단들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멸종위기 새들과 새만금 내의 나무, 풀과 서해노을, 새만금의 실제 주인 주민들의 삶, 심지어 인간이 조종하는 비행기마저도 자연의 일부처럼 보일 만큼 매우 아름다운 영상들이 돋보인다.

사람만이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영화에 대한 소식은 수라갯벌에 살던 터줏대감 생물들에게 장마철 천둥과 비, 벼락보다 더 큰 엄청난 일이었다. 수라갯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렇지 않을까?

'우리가 생태다큐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대. 영화에서 우리들이 사는 곳, 수라가 이름처럼 수를 놓은 비단처럼 나온대. 우리를 20년 동안 지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이 영상에 담겨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해. 사람들 말대로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하늘이 허락한 바다에 금을 긋고 대대손손 황금빛 곡창지대를 만들어주겠다고 1987년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나온 새만금 개발구호. 인간이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것만이 유일한 땅이라는 이기적 유전자들이 모여서 공모한 이 개발사업은 한 세대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아직도 희망이 아닌 슬픔의 덩어리가 가득하다.

새만금 개발에 대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끝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왔고 이제는 특별한 대안책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단지, 해수유통을 지금처럼만이라도 유지시켜 놓으면 자연 생태계의 완전한 파멸만은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불어난 강물속 갯벌을 걸으며 온몸으로 희망을 찾아보았다네요
▲ 수라갯벌 답사현장을 걷는 사람들 불어난 강물속 갯벌을 걸으며 온몸으로 희망을 찾아보았다네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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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새만금에서 유일하게 남은 '수라갯벌'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갯벌이 가지고 있는 자연 생태학적인 무한한 가치로서 뿐만이 아니라, 이것만이라도 개발과 육지의 마귀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특별한 소명 의식이 발동한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 덕분에 사시사철 새만금의 아픔과 풍경을 동시에 보고 있는 나는 막상 수라갯벌에는 직접 들어가지 못했다. 근접 지역에서 바라보는 해질녁 노을과 찰랑거리는 바다 수면 윤슬, 너른 염습 지역의 원시림이 품어내는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으로 담아 놓았을 뿐이다.
 
도요새들과 조개를 담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갯벌이 그립다
▲ 새만금과 수라갯벌답사 안내서 도요새들과 조개를 담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갯벌이 그립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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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이후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은 일반인 답사체험을 위한 대문을 크게 열어두었다. 물론 이전에도 누구나 환영했지만, 이 조사단의 활동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그나마 찾아오는 사람들은 활동의 목적을 아는 이들 정도였다. 새만금이라는 무지개 빛 환상 뒤에 숨어있던 현실의 아픔을 영화라는 매체 하나가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고마울뿐이다.

지난 1일에는 대전의 일반 시민들이 수라갯벌 답사 희망을 신청했다고 해서 현장의 소식을 들을 겸 늦게 수라갯벌로 나갔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사단 단장 오동필씨의 직접 안내를 받으며 수라갯벌을 일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뜨거운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거친 호흡으로 각자의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가 저를 수라갯벌로 덥썩 잡아 끌어들였어요. 갯벌 체험은 실제의 생명과 삶이 물 위와 물 속과 공중에서 끝없는 도전과 상생이라는 전율과 감동으로 쏙!쏙! 다가왔어요. 누구나 이 순간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 대전 시민, 이종희씨.

"환경에 무관심했던 저를 반성하게 하고 울림이 많았던 영화였는데요, 오늘 직접 현장에 오니까 투지가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원래는 민원을 되게 잘 넣거든요. 갯벌에 박힌 막대기를 사진 찍어서 왜 벌써 저렇게 했는지 민원을 넣을 예정이에요. 시민생태조사단 여러분께 그걸로나마 힘이 돼 드리고 싶어요." - 대전 시민, 성유아씨.

 
산을 깍아낸 아픈모습이 마치 태고적 신비로운 풍경으로 보이는 역설.
▲ 수라갯벌 근처 가마우지 서식지 산을 깍아낸 아픈모습이 마치 태고적 신비로운 풍경으로 보이는 역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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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를 막을 때 모든 생명이 다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절망감에서 다시 또 희망이 솟았다는 사람,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수라> 영화도 봐라, 갯벌에도 가봐라 등)을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는 사람, 산골에 살아서 영화는 못 봤지만 아이와 함께 갯벌을 걸으며 평화를 간직했다는 사람, 20대 후반 삼보일배에도 참여하며 방조제 막기 전 새만금의 모습을 기억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만 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등등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말은 여름날 더운 습기를 모두 빨아들인 제습기처럼 내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해주었다.
 
'갯벌과 염습지 등 다양한 형태의 연안 습지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서식지입니다. 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막아줍니다. 새와 어류, 게와 조개가 알 낳고 새끼 기르는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수라갯벌은 사람에게도 새들에게도 소중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수라갯벌 만큼은 남겨두세요!'
 
새만금과 수라갯벌 답사를 위한 안내 팸플릿에 나와 있는 글로 새만금과 수라갯벌에 거는 희망을 전한다. 

태그:#새만금수라갯벌, #영화수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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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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