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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가을, 남녘 진주에서 지방빈민의 막내로 겨우 태어났다. 온 가족이 먹고살려니 유년에 수도 서울 변두리에 상경, 내내 서울에서 자랐다. 숙명적인 지질학과를 오래 다니며 오직 술을 많이 마셨다. 청년의 장래희망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정의의 사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한국의 각급 학교는 감옥이나 병영과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교실에서 배운 건 탄생석이 전기석(tourmaline)이라는 사실뿐이다.
 
마을기업 ‘독일마을행복공동체영농조합’이 꾸려가는 <남해군 독일마을>
▲ 남해 독일마을  마을기업 ‘독일마을행복공동체영농조합’이 꾸려가는 <남해군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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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도시난민 신세로 말단 은행원, 비민주노조 간부, 군소언론 기자, 소호벤처 경영자로 꾸역꾸역 생활했다. '국립난민촌'같은 수도 서울특별시에서 좀처럼 일은 삶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 '악의 평범성'을 핑계와 변명 삼아 도시민으로 저지른 죄는 다종다양했다. 마흔에 이르자 제 정신이 들었다. 국가와 도시에서는 더 해야 할 일도, 더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최후의 심판을 내렸다.

2002년 봄, 마흔즈음에, 자본과 국가와 도시와 제도와 패거리의 위협 또는 위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자가 격리, 마을로 자발적 유배를 떠났다. 자본의 노예와 권력의 부하와 명예의 인질과 욕심의 포로와 체면의 광대와 사유의 바보 상태에서 불가역적으로 해방되고 반영구적으로 독립한 것이다.
 
마을기업 ‘한라산아래첫마을영농조합‘이 꾸려가는 제주도 광평리 마을식당 <제주메밀식당>
▲ 제주 광평리  마을기업 ‘한라산아래첫마을영농조합‘이 꾸려가는 제주도 광평리 마을식당 <제주메밀식당>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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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난민에서 마을의 세계시민으로 전향

먹고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조건과 환경의 농촌마을에서 먹고사는 일은 고역이었다. 농업회사 농장관리자, 유령작가, 생태마을 막일꾼, 농촌·귀농 컨설턴트, 마을연구원, 농촌사회학자 행세를 제멋대로 하며 조선팔도를 마구 돌아다녔다. 마치 인간해방구행 탈출로를 찾는 척, 심지어 여의도까지 기웃거릴 정도로. 어쨌든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그리고 마을주의자로 변태,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마을(commune)의 세계시민 계급으로 정착한 셈이다.

오늘날 비인가 '마을연구소(Commune Lab)'의 연구원, 무허가 '마을학개론' 강사 노릇을 하며 밥벌이에 일생을 마저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자본의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진보하는 마을공동체와 농촌지역사회의 해법과 대안을 발견하거나 개발하려는 숙제에 매달려 있다.

나름대로 애와 기는 쓰고 있으나, 물론, 자신은 없다. 심지어,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돈도 되지 않고 폼도 나지 않는 일이다. 다만,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세상에 죄를 짓지는 않는 일이라고 믿고싶다. 어쩌겠는가.
 
‘무주초리넝쿨마을협동조합’이 꾸려가는 전북 무주군의 농촌체험휴양마을 <초리넝쿨마을>
▲ 무주 초리마을  ‘무주초리넝쿨마을협동조합’이 꾸려가는 전북 무주군의 농촌체험휴양마을 <초리넝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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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용기있는 지혜, 아웃사이더, 무정부주의자, 혁명가를 다룬 책을 좋아한다. 가끔 시나 소설도 끼적거린다. 법적으로는 시인이자 문화예술인인 셈이다. '마을'을 주제로 삼아 <오래된 미래마을>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 <사람 사는 대안마을> <농부의 나라>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행복사회유럽> <마을주의자> <귀농의 대전환>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시집)> <마을학개론> <사회적 농부>는 용케 이미 펴냈다.

<마을사회주의자(소설집 1)> <한국혁명(소설집 2)> <사랑했지만, 사랑했어요(소설집 3)> <오늘,하루(소설집 4)> 따위를 더 짓고 싶은 욕심이다. 꼭 소설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차마 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말을 털어놓기에 소설이 그럴듯한 형식이라는 생각이다. 이른바 '마을당문고Commune Books'를 한상 차려 세상 사람들과 밥 대신 나눠먹고 싶다.

끝으로, 결국 아무 짓도 안 하고 싶다. 최소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거나 바라지 않겠다. 반드시, 정신노동은 그만 하고 싶다. 그냥, 산과 물은 맑고, 하늘과 들은 밝고, 바람과 사람은 드문, 작고 낮고 느린 어느 마을의 마을사람이고 싶다. 그 무엇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 것도 아닌 마을사람으로 겨우 살아가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 마치 나무나 풀, 돌이나 흙, 비와 바람 같은 자연과 우주가 당연히 그런 것처럼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마을학각론(各論)>을 쓰는 것으로 마을사람으로서 개인적 욕심과 사회적 책무를 마치려 한다. <마을학각론>은 어쩌면 10여년 전에 펴낸 <마을학개론>의 속편으로서 일종의 마을생활현장 실천매뉴얼이라할만 하다.

<마을학개론>은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사는 법'을 공부하는 기본교재를 표방했다. 그러자면 마을, 공동체, 시민. 기업, 정책, 사회 등에 대해 다시, 새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다만, 공부에 그치지말고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하고 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마침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특히, '마을'이려면 최소한 삶(생활)과 일(생업)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조화롭게 이뤄질 필요가 있으며, 거기에 쉼(휴식)과 놀이(문화)까지 보태 누릴 수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마을이란, 그렇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람들과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기대고 돌보고 보살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렇게 삶과 일,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하나되는 곳이라야 한다. '마을이란 무엇인지', '공동체를 왜 하는지', '지역사회는 어디에 있는지', '마을자치를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비로소 마을은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잘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건지에 대한 방향과 해법을 이제 <마을학각론>을 통해서 구해보고 싶다.

일단, '마을(농촌지역사회)'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떤 곳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정리할 생각이다. 마을, 나아가 농촌지역사회에서 사람답게, 더불어 함께, 잘 먹고 살아가려면, '마을'이 어떤 곳인지부터 잘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마을'을 잘 몰라서 겪은 실수와 실패가 안타깝고 아쉽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실천하는 <마을연구소(Commune Lab)>
▲ 마을연구소  ‘마을에서,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실천하는 <마을연구소(Commune Lab)>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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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마을살이, 또는 농촌지역사회의 생업과 생활'을 과연,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해법을 구하는 게 열쇠일 것이다. 마을(농촌지역사회)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산업, 생활, 인물, 교육, 자연 등에 대한 지식, 정보, 이야기 등 '일상적인 마을생활의 진실과 기술'을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우선, 마을의 탄생, 마을의 진화, 마을이 현실을 통해 '마을이 흘러온 역사'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마을의 땅, 마을의 집, 마을의 자연으로 '마을을 둘러싼 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마을의 구조, 마을의 자산, 마을의 공동체 등 '마을을 이루는 사회'도 탐구할 필요가 있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을의 조상, 마을의 선주민, 마을의 이주민 등이다. 마을의 산업, 마을의 직업, 마을의 기술로 '마을의 경제'도 파악해두어야 한다. 마을의 문학, 마을의 예술, 마을의 놀이같은 '마을을 즐기는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인다.

'마을과 누리는 오늘'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마을의 생업, 마을의 생활, 마을의 일상은 중요하다. 이로서 '마을의 꿈꾸는 내일'을 그릴 수 있다. 마을의 자조, 마을의 자립, 마을의 자치야말로 <마을학각론>을 굳이 쓰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태그:#마을, #지역, #농촌사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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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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