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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옆 마을 작은 도서관에서 수업을 맡았다. 천연 삼베 실로 수세미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목적지인 A마을의 작은 도서관은 하루에 농촌 버스가 네 번 들어가는 곳이다. 

나는 대중교통이라고는 버스와 택시뿐인 이곳에서 자가용을 거부하고 여전히 버스 타기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나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 농촌을 선택했고 자가용이 없는 내겐 농촌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아무튼 수업을 위해 A마을로 가려면 B면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환승을 위해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약속된 시간에 늦어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나는 환승 시간을 따져 미리 집을 나섰다. 이렇게 서두르면 수업 시작 두 시간 전에 A마을의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험난했다. A마을에서 B면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려면 2~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별수 없이 수업에 참여했던 분의 차를 얻어탔다. 

"조만간 여기를 떠날 생각이에요." 

차 안에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대뜸 꺼내놓은 그의 말이다. 그는 집 앞 텃밭에서 스스로 먹을 것을 키우고 자연에 피해를 덜 주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했었다. 그 마음이 변한 걸까? 다시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워진 걸까? 

"혼술에 지쳤어요."

돌아온 그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움직인다. 사람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더 편리한 이동을 위해 교통수단이 만들어졌다. 길과 교통수단을 따라 시장과 마을, 일자리가 생기고 공동체가 완성된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동이 어렵다. 사람들은 시장에 가거나 돈을 벌려고도 이동하지만, 누군가와 만나거나 무언가 즐길 거리를 찾아서도 이동한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모색한다. 함께 살고 함께 움직이던 농촌공동체는 이제 옛말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집에 들였고 이젠 그걸 타고 각자 목적지로 향한다. 어쩌다 술에 취했어도 핸들을 잡아야 한다. 여긴 대리운전도 없으므로. 아니면 어마어마한 택시비를 감당해야 한다.
  
처음 귀촌한 곳은 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하루 세 번 버스가 다녔다. 버스 운행이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춰져 있어 낮엔 버스를 볼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슬리퍼를 끌고 코앞에 있는 편의점과 빵 가게를 갈 수 있었고 오가는 길에 즐비한 식당에 들어가 식욕을 채웠던 대도시에서의 삶을 내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다음에 읍내에 가게 되면 이걸 먹고 저걸 사리라는 욕망을 키우며 그 시간을 견딘 기억이 생생하다. 농촌에서 살면 욕망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불편함은 오히려 불필요한 욕망을 키웠다. 

농촌 버스는 '교통약자'만의 것?

최근 진안·무주·장수군을 운행하는 무진장여객의 노선을 개편하기 위한 용역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3곳 모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구는 10%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인구 소멸의 길로 가는 농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적어질 거라는 근거는 뭘까? 인구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답은 간단하다. 이유도 분명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사람들이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동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버스 타고 다닌다고 하면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충고랍시고 한마디씩 던진다.

"농촌에서 자유롭게 살려면 차부터 사요." 

그럼 나의 로망인 근대산업 문명으로부터의 자유는? 농촌에서 살기 위해 나의 로망을 버려야 하는 모순이라니!       
  
버스 이용자의 숫자나 그들의 발언권이 적다 보니 버스 이용의 불편함을 해소할 개선 대책은 정책과 예산에서 자꾸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불편하니 이용자는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농어촌버스 이용객의 90%는 교통약자들이다. 버스 이용자의 숫자나 그들의 발언권이 적다 보니 버스 이용의 불편함을 해소할 개선 대책은 정책과 예산에서 자꾸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불편하니 이용자는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유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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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버스의 운용 실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 이방인에게 버스는 불친절하다. 노선표는 중요한 거점으로만 표시되고 버스 시간표는 터미널이나 정류소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버스 안에 노선표가 있냐고? 당연히 없다.  
    
기다려도 오지 않거나 눈앞에서 지나가 버리는 버스! 바뀐 시간표는 일급비밀이다. 버스터미널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평균 버스 대기 시간은 2시간 이상, '지금 내리실 곳은 어디'라는 안내방송 같은 건 없다. 기사님은 오직 앞만 보고 내달린다.  
    
- 시골 버스의 속도는 토네이도보다 빠르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바람처럼 내닫는다. 정류소에 사람이 안 보이면 무정차 통과. 못 보고 지나친 승객이 화를 내고 부르면 '빠구'도 가능. 못 태운 승객을 태우려고 차를 돌리는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없다.   
    
- 고장 난 버스를 탔다고요? 그건 버스를 잘못 탄 당신의 실수입니다. 다음부턴 타이어는 잘 붙어있는지, 오일은 새지 않는지 등 버스의 정비상태를 잘 살펴보고 타기 바랍니다. 
    
- 저녁나절의 놀이와 모임은 포기하시죠! 모임은 낮에 합시다. 7시면 집에 가야죠. 막차 떠납니다.

'모두'를 위한 이동 수단으로 변화 필요

농촌 버스는 노인과 학생들만 탄다? 그러니 자가용 타는 이들은 상관없다?

농촌 대중교통의 문제와 이동권에 대해 질문하면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이 "저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라거나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농촌 버스의 주요 이용자층을 들여다 보면 주로 나이 든 여성들이 많다. 경제권을 가지고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 남성들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노인들은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하릴없이 버스의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농촌의 '여성일자리지원센터'나 '여성새로일하기지원센터'는 운전면허취득과 장롱면허 탈출 지원에 가장 많은 예산을 편성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2023년 3월 말 무진장 여객은 결국 저상버스 도입을 연기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으로 출·퇴근하던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있다. 지역 신문이나 관공서 게시판에 걸린 구인 광고란을 보면 '자차 이용자'를 우대하거나 필수조건으로 내건 업체들이 흔하다. 
  
대중교통은 누구나, 어디든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버스를 교통약자의 전유물로 여겨 홀대하려는 생각은 국민의 기본권인 이동권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진안군은 버스 노선권을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버스민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준공영제가 아니다. 현행 버스 지원금은 버스 노선권과 운영권을 가진 민간업체에 공공이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붓는 방식이다. 이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해결 없이 지원금만 계속 늘어날 것이다.
▲ 무주·진안·장수군의 농어촌버스 지원예산 진안군은 버스 노선권을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버스민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준공영제가 아니다. 현행 버스 지원금은 버스 노선권과 운영권을 가진 민간업체에 공공이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붓는 방식이다. 이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해결 없이 지원금만 계속 늘어날 것이다.
ⓒ 진안고원예산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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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공영제'가 꾸준히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버스공영제란 노선 소유권과 버스 운영 담당을 공공이 가지고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운영 형태 또한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거나 공사, 공단 등의 법인 형태로 운영한다. 신안군은 주민이 참여한 공영버스 운영협의회를 구성해 버스 운영을 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은 2007년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2013년 5월 전국 최초로 버스공영제를 시행했다. 정선군은 2020년 7월부터 공영제를 시행했다. 

두 지자체 모두 버스 완전 공영제 이후 교통복지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버스 완전 공영제 이후 이용객이 늘었다는 점이다. 신안군은 20만 명에서 67만 명으로, 정선군은 약 54% 증가했다.

우리나라 버스 운영체계는 재정지원형 민영제가 63.6%, 수입금 공동 관리형 준공영제 31.1%, 준공영제(노선관리형·위탁관리형) 4.1%, 공영제 1.2%다. 버스 공영제로 운영되는 지자체는 올해 기준 13곳이다. 
  
군 공무원들에게 없는 대안을 세우는 기특한 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이미 다른 곳에서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당연한 의문에서 시작된 질문이자 주장이다. 

진안군과 농어촌버스에 지원금을 대는 농촌의 지자체들은 답하시라. 이의 있으신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광장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농어촌버스 , #월간광장, #진안군, #교통약자, #무진장여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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