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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헌화하는 장면.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헌화하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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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회장직을 맡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유가족들이 진실규명서를 받는 것과 골령골 평화공원이 제때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유족들의 간절한 소원일 것입니다."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은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에서 이렇게 인사했다.

이날 합동위령제에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대전위원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전남지회 회원,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 속에서 열린 이날 위령제의 사전행사로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 사회선교위원회, 대한불교 조계종 광제사, 천주교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원불교 대전충남교구 등 4대 종단 대표들의 종교제례가 진행됐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묵념으로 시작된 본 행사는 산내학살사건 백서 및 발굴보고서 봉헌과 유족대표 인사, 헌작(제례), 추모공연, 추도사, 퍼포먼스 및 헌화 등의 순서로 이뤄졌다.

"명예 회복해달라 했더니 유족 가슴에 칼 꽂아"

유족대표 인사말에 나선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위령제에 참석한 여러분께 속상한 이야기로 인사말을 대신하게 돼 죄송하다"고 사과의 뜻을 전한 뒤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화기 치밀어 오른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는 국회가 선출한 진실화해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대통령 임명 절차가 미루어지다 야당추천 위원을 부결시켰다. 게다가 진실화해위원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면서 "군인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학살사건을 차별하고 진실규명 신청자를 깎아내리는 발언, 부역혐의로 학살된 사람들을 죄악시하는 발언 등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진실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했더니 거꾸로 피학살자와 그 유가족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있다. 그러는 사이 골령골 유족들의 진실규명 신청 사건은 언제 마무리될지, 어떻게 처리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애타게 진실규명을 기다리는 과거사 피해자와 유족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따져 물으려 청했지만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선 위령제 때는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새롭게 제2기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임명된 김광동 위원장은 올해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부역혐의 희생자의 부역 여부를 살펴보겠다"고 발언하고, 지난 9일 영락교회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보상은 부정의"라고 발언해 유가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유족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전미경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유족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전미경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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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장의 분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골령골 평화공원(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위령시설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이 늦어지고 있는 것을 개탄하면서 조속한 사업시행을 촉구했다.

전 회장은 "골령골 평화공원은 애초 2020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손 놓고 허송세월하다 다시 2024년까지로 연기됐다. 지난 2020년부터 유해발굴을 시작해 내년이면 약속대로 준공되리라 믿었는데, 보시는 것처럼 착공조차 하지 않고 또 다시 세월만 보내고 있다"면서 "그러는 사이 유가족들은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있다. 내년 준공 약속도 이미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울러 "정부가 밝힌 착공이 늦어지는 이유는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라 사업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타당성 조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며 "그러는 사이 정부는 '무기 도입 사업의 경우 500억 원 이상이더라도 시급성을 고려해 사업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입은 시급한 사업이고, 그 무기에 억울하게 학살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사업은 세월아 네월아 해도 되는 일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끝으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유족회와 함께 나란히 서서 진실규명과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동행해 주실 것을 믿는다. 하루 빨리 그 일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가 범죄에 소멸시효란 있을 수 없어"... 참았던 눈물 쏟아낸 유족들
      

추도사에 나선 김복영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회장은 "오늘은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희생자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날이다. 반성은 민간인 희생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소멸시효란 있을 수 없다. 하루 빨리 국회에 계류 중인 소멸시효법과 배보상법, 기간연장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국민의힘 소속 박희조 대전 동구청장이 참석했다. 그는 추도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대전산내사건을 제대로 알리고,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을 풀고 곤룡골이 대국민 화해와 상생을 위한 역사 공원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구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추모공연에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신순란 회원의 손녀 가수 진은설씨가 나서 할머니가 지은 시에 곡을 붙인 '어머님의 눈물'과 '골령골 산허리' 등을 불렀다. 또한 '마당극단 좋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 반드시 풀겠다는 딸의 다짐을 표현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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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부산에서 딸과 함께 위령제에 참석했다는 김병희(77)씨는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면서 "아버지 없이 살아온 세월, 그 고생은 말로 할 수가 없다. 정말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

5살 때 아버지가 끌려가 대전형무소 수감 중 학살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는 그는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메이지대학을 나온 분이셨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왜 그렇게 끌려가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이제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에 와서 꽃 한 송이와 절을 올릴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진실규명도 되고 추모공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텐데, 제 동생은 그 모습도 보지 못하고 얼마 전에 아버지 곁으로 갔다"면서 "저는 아버지 보러 가서는 (한을 풀었다는)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위령제는 참석자들이 제단 위에 헌화하고 묵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일부 유족들은 헌화를 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산내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한 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민간인을 한국 군인·경찰이 학살한 사건이다. 한국 군경에 의한 학살사건 중 단일사건으로는 국내 최대의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박희조(국민의힘) 대전 동구청장이 추도사를 하는 장면.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박희조(국민의힘) 대전 동구청장이 추도사를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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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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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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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마당극단 좋다의 퍼포먼스 장면.
 27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린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사진은 마당극단 좋다의 퍼포먼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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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산내학살희생자위령제, #산내학살사건, #대전동구낭월동, #민간인학살사건, #골령골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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