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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아라시야마의 가쓰라강 앞에서.
 아라시야마의 가쓰라강 앞에서.
ⓒ 권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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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근교에 하루이틀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많다.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 사슴 공원이 있는 나라, 소고기가 유명한 항구도시 고베 등.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오사카의 관광지는 3~4일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하루는 당일치기로 교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교토를 하루 안에 둘러보려면 이동거리가 길어 대중교통보다는 현지의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는 게 낫겠다 싶어 찾아보았다. 항공, 숙박부터 모든 여정을 함께 하는 패키지와 달리 현지투어는 원하는 날, 원하는 곳만 이용할 수 있어 자유여행을 하면서도 패키지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전문 가이드의 설명이 있으면 좋은 곳이나 대중교통 이동이 불편한 곳, 핵심 관광지 몇 군데만 돌아보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다. 인원이 적으면 다른 여행객들과 동반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우리끼리 다닐 수 있는 프라이빗(사적인) 투어를 찾았다. 프라이빗 투어는 대부분 원하는 장소에서 픽업과 드랍을 해주고 일정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몇 군데에 견적을 문의해 보니 우리 인원이면 프라이빗 투어도 일반 버스투어와 1~2만 원 밖에 가격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예약을 하며 혹시나 추후에 문제가 될까 싶어 발달장애 학생들임을 알렸다.

"그런데 저희 학생들이 발달장애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혹시나 싶어 말씀드립니다."

실은 당연히 괜찮아야할 일이고, 굳이 말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차별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터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는 건 우리 아이들이니까.

머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전혀요. ^^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시원시원한 그 답변이, 당연한 일인데도 참 고마웠다. 동시에 견적을 문의하던 다른 투어 회사도, 버스 승하차를 위해 휠체어가 있는지만 확인했을 뿐 비용 등 이용 조건에는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장애인'이라 부담스러워하던 여행사에게

졸업 여행 준비 전 패키지 여행을 문의한 여행사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에 곤란해하며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었다. 물론 전체 일정을 책임져야 하는 패키지 여행사와 하루 당일투어만 책임지는 현지투어의 입장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에 수없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 그저 모두 똑같은 카테고리로 묶여 일반화되고 차별이 합리화되는 걸 보면 참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아직 멀었구나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들을 설명할 때 개인이 가진 여러 특성을 모두 미루어둔 채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속상한 일이다.

사실 '장애'는 그 사람이 가진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타고난 기질, 가정환경, 교육, 자라면서 겪은 경험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이 한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장애 역시 그중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물론 장애로 인해 갖는 비슷한 특성은 있으나 그조차 모두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정기상담을 하는데, 단순히 교과별 학습이나 태도 정도만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수업 및 학교생활, 기숙사, 외부 활동 등에서 보이는 모습을 공유해 영역별 인지능력, 태도, 기능, 신체능력, 심리, 대인관계, 자기관리 등 학생들의 전체 모습을 평가하고 교육방법을 고민한다. 상담이 있는 몇 주는 야근을 밥 먹듯 해야할 만큼 어려운 시간이다.

십여 년간 수백 명의 학생들의 지도계획서를 작성하며 교사들끼리 매년 하는 말은,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이다. 진단명은 대부분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로 똑같이 쓰여있는 아이들이지만 개개인을 마주하면 제각각 너무나 다른 아이들이다. 한두 문장 정도는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들은 있어도 전체를 똑같이 쓸 수 있는 아이들은,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유전적인 요인으로 '증후군(Syndrome)'이라는 진단명이 붙은 아이들조차 하나하나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개 기득권의 문제는 개인의 특성으로 치부되는 반면 소수자의 문제는 쉽게 전체의 문제로 치환된다. 적당한 직업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 여행지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큰 민폐를 끼친다고 해서 여행사에서 해당 직업, 나이, 성별 등을 전부 거부한다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진상 손님 한 명을 만났구나, 정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어떤 특성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 특성을 가진 그룹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배제시키게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외부 활동을 할 때면, 나는 평소보다 공공질서나 매너 등을 더 깐깐하게 지도한다. 우리 아이들보다 더 매너 없는 사람들 많지만, 그저 개인이나 교육의 문제로 치부될 그들과 달리 우리 아이들의 행동은 전체 '장애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편견을 공고화시키는 데 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빗대어 타인을 한두 가지 단어로 정의하고 평가하는 게 얼마나 편협하고 식견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인지, 꼭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해외 자유여행에 도전하게 되었고, 패키지에서는 하지 못했을 귀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패키지 투어의 장점과 단점
 
산넨자카 거리에서 산 링고아메, 사과탕후루 같다.
 산넨자카 거리에서 산 링고아메, 사과탕후루 같다.
ⓒ 권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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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패키지 투어 일정은 오전 9시 숙소 픽업으로 시작해 오후 6시 한 온천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사 와 해결하는 동안 투어버스가 이르게 도착했다.

오사카에서는 USJ, 수족관, 쇼핑 등을 즐기기 때문에 교토는 좀 더 일본 전통의 느낌이 나는 관광지로 사전에 요청을 했고, 아라시야마-니넨자카, 산네자카, 청수사-후시미이나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첫 코스인 아라시야마는 가쓰라강을 가로지르는 155m의 도게츠교, 대나무숲 등이 유명한 곳이다. 벚꽃과 단풍이 아름답기로 일본에서도 손꼽힌다는데, 계절은 안 맞았지만 푸른 나무와 볕이 반짝이는 강만으로도 충분히 예뻤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본 후에 그룹 별로 흩어져 식사를 했다. 가이드는 청수사로 가면 단체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지만 우리의 여행 기조대로 원하는 메뉴를 골라 흩어졌다.

투어라 좋은 점은 가이드가 메뉴별 맛집들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라시야마 맛집만 소개받았지만 물어보면 다른 지역 맛집이나 쇼핑팁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여행 중 현지투어를 이용하려면 일정의 초반부에 가는 게 여행 전반의 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역시 시간이다. 교토 투어를 찾아보면 보통 우리 일정에 금각사 등을 더 넣어 네다섯 군데를 둘러본다. 우리는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름 코스를 추렸음에도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고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들을 하나씩 사고 나니 다음 코스로 떠날 시간이었다.

두 번째 코스는 산넨자카, 니넨자카 거리. 일본의 경주와 같은 곳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로 미어터질 것 같았다. 산넨자카, 니넨자카는 청수사로 가는 길목으로, 일본 전통 건물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어 누가 봐도 일본이라는 느낌이 확 난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는 교토가 수도가 되기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사찰인데 꽤 높은 곳에 있어 올라가면 전통적인 거리와 함께 교토타워까지 볼 수 있다. 옛날과 현대의 건물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사찰 관람보다 상점가 구경을 원해서 청수사는 바깥만 구경하고 다시 내려오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마지막 코스는 붉은 도리이로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유명해졌다는 신사는 상업의 신을 모시는 곳이라 많은 도리이들이 기업 후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 신앙의 구심점 같은 곳이라 하며, 붉은 기둥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긴 했으나 종교가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그냥 사진 찍기 좋아 유명해진 곳 같았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멋진 풍경을 발견하는 것도, 기대했던 곳에서 실망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저 따르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붉은 도리이(문)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붉은 도리이(문)
ⓒ 권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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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교토투어, #오사카여행, #발달장애, #자유여행,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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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3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립을 꿈꾸며 열심히 삶을 준비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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