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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일이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 난다. 입시, 취업 등 각종 시험에서는 합격과 불합격으로,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와 패배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지만, 실패를 마주하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실패를 겪을 때마다 좌절하고 자책하며, 때로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성공과 실패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는 신춘문예의 '당선'과 '낙선'이다. 신춘문예는 신문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신인 작가 발굴 공모로, 1월 1일 신년 신문에 당선작이 발표된다. 당선자는 문단에 등단할 수 있기에 중앙지의 경우 경쟁률이 수천 대 일에 달한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치는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매년 1월 1일을 10년째 낙선 소식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한 해를 실패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낙선에 좌절하기는커녕 "아무도 안 뽑아줘서 내가 낸다"며 <신춘문예 낙선집>을 스스로 출간했다.

반복되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한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5월 20일 <신춘문예 낙선집>의 전혜지 작가(35세, 작가 겸 개발자)를 만나보았다.

10년째 낙선 중, 10년째 실패 중
 
신춘문예는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 응모해야 한다.
▲ 신춘문예 응모작이 담겨 있는 우편봉투 신춘문예는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 응모해야 한다.
ⓒ 전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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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지 작가와 신춘문예의 인연은 '자퇴'로부터 시작됐다. 전 작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 작가는 공대의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인턴을 하고 있었다.

"인턴에게 딱히 시키는 일이 없어서 시간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서울예대 연극과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그냥 홀린 듯이 지원했어요."

그는 연극과 관련된 활동을 해본 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었다. 단지, 취미 생활로 연극과 뮤지컬을 즐겨보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홀린 듯이"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엄마한테 합격증과 자퇴서만 보여줬어요. 합격증과 자퇴서를 보여준 날 밤에 엄마가 되게 심각했고, 말을 안 했어요. 그냥 한숨만 쉬면서 '이게 말이 되냐'고 하셨었죠."

한숨으로 가득 찬 밤이었지만, 그 밤은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고집을 한 번도 부려본 적이 없던 딸"이 '무언가를 확고하게 요구'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반대하지 못하고 자퇴서에 사인했다. 그렇게 전 작가는 서울예대 연극과에서 새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전 작가는 첫 극작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며 완성한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해 보라'는 교수의 말을 듣고, 전 작가는 "신춘문예에 나도 작품을 낼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지원했다. 이것이 신춘문예 응모의 시작이다.

전 작가는 연극과 졸업 후 취직을 했다. '연극을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을 퇴사하고, 2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는 졸업 후 매년 신춘문예에 작품을 응모하며 '지금 이 일은 연극을 위해서 시작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작가는 10년째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은 쉽지 않았다. 그는 매년 1월 1일을 낙선 소식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기분 나빴죠. 근데 그냥 재미있는 일 하면서 잊어보려고 노력했어요."

낙선에 대한 그의 좌절은 짧았다. 전 작가는 "인생은 연속"이기 때문에 "기분 상하면 그 상한 기분을 어떻게 풀까 생각하면 되고, 실패하면 그 다음은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되는 낙선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당선된 작품을 읽어보았다.
 

"당선된 작품 중 몇 개는 읽으면서 '나에게는 재미와 메시지를 주지 않은데, 이 작품이 왜 당선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춘문예 심사위원은 신문사마다 매년 달라져요. 그러니까 '어쩌면 한 신문사에서 당선된 작품이 다른 신문사에 갔다면 뽑히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작가는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과 자책을 하지 않았다. "운이 안 좋아서 아직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히 글을 썼다.

낙선이 위로가 되어주다

전 작가의 꿈은 자신의 글이 연극으로 공연되는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 내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연극을 올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낙선 글을 모아 <신춘문예 낙선집>을 출간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명작가의 낙선 작품을 책으로 출간해 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래서 작가는 '텀블벅'을 활용했다. 텀블벅은 창작자의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돈을 후원하여 일정 기간 내에 목표 금액이 모이면 창작가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이다.
    
<신춘문예 낙선집>
 <신춘문예 낙선집>
ⓒ 전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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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낙선집>의 목표 금액은 150만 원이었다. 후원 금액으로 이를 훌쩍 넘은 213만 원이 모였다. 후원율 142%를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2018년 전 작가는 낙선집을 출간했다.

이후 2020년 <신춘문예 낙선집2> 또한 후원율 111%를 기록하며 출간했다. 작가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진짜 좋았어요, 매일 몇 명이 후원했을까 들어가서 확인했었다"라며 당시 기분을 떠올렸다.  

전 작가의 작품은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저격하지 못했지만, 독자들의 취향은 저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무명작가의 낙선 작품집을 후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스타그램 DM으로 '독립서점 구경 갔다가 책을 봤는데, 취지가 너무 좋아요'라고 응원의 메시지가 왔었어요. 블로그에도 책에 대한 좋은 칭찬을 남겨주셨고요. 이때 느꼈어요. 실패를 겪으며 힘들어하던 사람들에게 제 책이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요."

전 작가의 실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신춘문예 낙선집>은 또 다른 실패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신춘문예 낙선집 2>
 <신춘문예 낙선집 2>
ⓒ 전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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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꿈을 이루다

"실패하면 안 된다고 잘못 배웠던 것 같아요."

전 작가에게 낙선은 실패가 아니었다. 낙선은 '도리어 자신의 글이 공연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신춘문예 낙선집>에 수록된 2016년 낙선작 '메이킹 콜럼바인'은 2022년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연극 <초능력자> 또한 낙선집을 계기로 공연되었다.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낙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연극 <초능력자> 포스터
 연극 <초능력자> 포스터
ⓒ 극단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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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 소감을 묻자, 작가는 설레는 표정으로 "진짜 신기했어요"라며 "제 글이 '연출자와 배우의 눈으로 해석되고 표현되는 것'을 보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고 벅찬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전 작가는 실패를 겪고 자신의 꿈과 목표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가 '자기의 소원을 포기한다는 것은 위대한 행위이다. 그러나 자기의 소원을 버린 다음에도 그 소원을 간직한다는 것은 더 위대한 일이다. 한시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포착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한시적인 것을 버리고 난 후에도 계속 이것을 간직한다는 것은 더 위대한 일이다'라는 말을 했대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포기했든, 실패해서 포기했든, 마음이 상해서 포기했든지 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도 위대한 것 같아요. 요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취미로 조금씩 원하는 일을 해보다가 잘 되면 또 도전해 보고 그러는 거죠. 실패해도 괜찮아요."

태그:#신춘문예낙선집, #신춘문예, #작가, #실패,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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