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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몸담은 경기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현재 방문의료사업과 화성시 가사간병 방문사업, 장애학생 특별 건강 관리 등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동탄 지역의 한 댁에 가사지원 활동 차 방문했을 때다. 베란다와 현관까지 시원하게 열어 놓으셨다. 집에 들어갔더니 요양보호사님이 반찬을 하고 계셨다. 몸이 불편하셔서 마음대로 못하게 된 현실이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으신가 보다.

대상자는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달간 혼수상태로 깨어나 보니 온몸이 골절로 핀이 몇십 개 박혀 있었다. 후유 장애가 아주 심한데다 사업도 가정도 다 날아가 버린 상태다. 사고 시 머리를 다쳐서 얼굴도 돌아가고 언어장애도 있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다. 큰 도움이 되려는 게 아니라 작은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식사하시는 걸 보고 진안동으로 조현병 환자 가족을 만나러 갔다. 복지센터 사례관리 복지사님, 담당 복지사님들과 미리 만나 대상자의 상태에 대해 들었다. 지난해에도 방문했다가 집에 들어오는 걸 거부하셔서 활동가님이 가사지원 서비스를 못하고 나왔다. 아버지가 조현병이고 큰아들은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상태이며, 둘째 아들은 정상이고 현재 대학생이다.

집의 상태가 지난해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맨발로 들어가기 꺼림직하다. 벽과 구석구석 찌든 때 가득하다. 그런데도 극구 가사지원을 거부하고 계신다. 집에 누가 오는 게 싫다고. 사례 관리자 선생님이 설득해서 '다음 주 한 번 더 스스로 할 수 있으신지 보고 그래도 안되면 활동가님들이 방문하겠다'고 하고 나왔다.

다음은 진안동 근처에 계시는 남자 혼자 사시는 조울증 환자 집에 방문했다. 정신질환뿐 아니라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도 있으신 남자분이다. 처음 뵙는 분이라 조용히 듣고 집을 살폈다. 언짢아 하실까 걱정돼 천천히 움직였다. 냉장고에는 빈 김치통 두 개와 고추장이 전부다. 찬장은 그릇 두어 개가 널브러져 있고 싱크대엔 때가 끼여있다. 굳이 화장실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듯했다.

다음 주부터 활동가님이 방문하기로 하고 넷이 겨우 앉을 수 있었던 방을 나왔다. 이런 곳이 거의 기본적인 상태이다 보니 이젠 참 무덤덤해졌구나 싶었다.

다음날 우리 활동가님들 두 분하고 대책 회의를 했다. 내가 무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 하는 말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흑암이 깊음 위에 찼고,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뭐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과한가 모르겠지만, 사람 살 수 없을 것 같던 곳이 차츰 환해지고 들어가고 싶어지는 곳이 되면 그제야 그분들이 반가워한단다. 집에 누가 오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더러운 집에 누군가 오는 게 송구한 것이다. 더러운 걸 알면서도 못 치우는 게 싫은 것이었다. 알면서도 할 수 없으니 병인 것이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지점이 딱 그 지점이다. 알면서도 안되는 그곳에서 손잡아 같이 빗자루질하고 걸레질하고 설거지하다 보면 혼자 하게 된다고 한다. 그때 희열을 느낀다고. 모두 시킨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럴 희망이 보이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즐겁다고.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다 보면 희망이 보인다. 희망이 생기지 않으면 절대 빗자루 하나 들 수 없다. 다 치우고 나면 공통적으로 원하시는 게 있다.

"나가자!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햄버거도 사 먹고 짜장면도 먹자." 즐기는 단계다. 그건 내가, 아니 내 집의 쓰레기가 버려지고 깨끗해지고 나면 세상을 즐기고 싶어지는가 보다.

이번 주에도 나는 성공했다.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와 빛의 세계로 들어왔다.

이 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상근 이사장
 
이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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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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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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