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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T! 카카오 T!'

수없이 울리는 카카오 콜 소리 대신 손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택시 기사가 있다. 차를 돌려 승객이 있던 곳으로 다시 가,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경광봉을 흔들었다. 시간과 움직인 거리가 곧 돈인 택시기사, 이호연 기사(29)는 쏟아지는 '콜'을 외면한 채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고, 지난 3월에는 스스로 삶을 끝내려던 사람의 선택을 막았다.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이호연 기사는 이 일로 '충주시장 표창'을 받았고 카카오 모빌리티의 '도로 위 히어로즈'로 선정됐다. 

그 선행의 이유를 묻기 위해, 지난 5월 23일 충주시에 위치한 선재 택시에서 그를 만났다. 

신고에 그치지 않고 차를 돌려 다시 승객에게 간 이유 
 
충북 충주시의 한 다리다. 깊은 강 위 대교 난간에 서면 장례식장이 보인다.
▲ 장례식장이 보이는 대교 충북 충주시의 한 다리다. 깊은 강 위 대교 난간에 서면 장례식장이 보인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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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드라이브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고 한다. 새벽 1시 30분, 한 청년이 이 기사의 택시에 올라 탔다. 청년의 요구는 간결했다. "강과 다리, 장례식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주세요." 5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두세 마디밖에 주고받지 못했지만 이호연씨는 '목적지'에서 위험함을 느꼈다고 한다. 

"새벽 한시 반에 강과 다리, 장례식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달라는 게 누가 들어도 이상하잖아요. 충주에 그런 곳이 한 군데밖에 없어요. 거기가 자살대교라 불리거든요. 강이 깊고 다리가 높으며 바로 앞에 장례식장이 보여서요." 

손님이 내린 뒤 112에 전화를 걸었다. 청년이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빨간 줄이 갈 것 같다"고 한 말에 꺼림직함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그는 신고만으로 그치지 않고 손님을 찾아 다시 돌아갔다. 손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시작됐다. 

"마지막에 태운 사람도, 내려드린 것도, 본 사람도 저잖아요. 원래는 전화로 끝이죠. 그래도 경찰이 오는 시간이 있잖아요. 만약 안 좋은 결정을 하면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으니까 걱정돼서 택시를 돌렸어요."

그가 갔을 때 손님은 대교 난간에 올라가 있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 청년과 대화를 나눴다. 위로뿐만 아니라 자신이 힘들었던 상황을 말하며 손님을 설득했다. 

"자극적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 마세요', '왜 그러세요?' 이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제가 힘들었던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면 손님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기분이 나아질 거 같아서요." 

경찰관이 와서 함께 설득을 해도 손님이 안정이 되지 않아 택시 안에 있던 캔 커피를 손님 손에 쥐여줬다. 

"마음 편히 대화할 때 커피 한 잔이면 다 괜찮아지잖아요. 손에 커피를 쥐여 주는데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저 커피 안 좋아하는데요' 그 한 마디에 분위기가 풀린 거 같아요."

손님은 경찰관과 함께 무사히 돌아갔다. 다음 날 지구대로부터 손님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계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승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 그런 데 가지 말고 좋은 거 먹고, 좋은 데 가고, 시간에 쫓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다음에 손님이 또 택시를 탄다면 '탄금공원'에 내려 주고 싶다고 했다. 

"손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공원으로 데려다주고 싶어요. 꽃도 보고 산책하기 좋으니까요."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들 속 경광봉을 흔들다
 
두 달 새 두 생명을 구한 이호연 택시 기사이다.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다.
▲ 이호연 택시 기사  두 달 새 두 생명을 구한 이호연 택시 기사이다.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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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도 피를 흘린 채 횡단보도에 쓰려져 있는 노인을 구했다. 시내 안 주택가인데도 많은 차와 사람들이 그대로 지나쳤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출발하는데 맞은편 횡단보도에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있었어요.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못 본 척하고 가더라고요. 그냥 지나가는 세상이 슬펐어요. 날씨도 추웠는데… 내 가족이었으면 저렇게 지나갈까 생각이 들었죠. 바로 차를 돌려서 달려갔어요. 이미 오토바이 운전자가 신고를 했다고 해요. 신고는 하고 맞은편에서 보고만 있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신고를 또 하고 어르신 곁으로 갔어요."

그는 경광봉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각,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에서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제가 안 막고 있으면 어르신 머리 쪽으로 차가 오니까 옆에서 수신호를 했어요. 어르신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서 섣불리 일으켜서 데리고 나갈 수 없었어요. 경광봉 두 개를 가지고 한 쪽 막고, 한 쪽 보내고 계속 흔들었어요." 

경찰관이 온 뒤에도 그의 경광봉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계속 경광봉을 움직였다. 경찰관이 어르신을 확인하고 조사할 때 혹시 사고가 날까 봐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경광봉이 어디서 났을까. 그는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부터는 경광봉을 항상 구비해 놨다고 한다. 위험 상황에 핸드폰 플래시를 흔드는 것이 2차 사고를 유발한다는 뉴스를 보고 사람들 눈에 띄는 걸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건 경광봉. 여기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경찰은 빨간 경광봉을 갖고 다니잖아요. 저는 반반이에요. 눈에 더 띄게 한쪽은 빨간색, 한쪽은 파란색이에요. 사람들이 빨간색 경광봉이면 공사하나보다라고 생각해 쉽게 지나갈 수 있어요. 빨리 가려고 브레이크보다 액셀을 밟죠. 빨간색과 파란색이 함께 있으면 생소하잖아요. 브레이크를 한 번 더 밟게 하는 목적이에요." 

카카오 T보다 손님의 말에 더 귀 기울여

경광봉을 들고 노인을 구할 때도, 청년을 말릴 때도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카카오 콜이 밀릴 정도로 울렸다고 한다.

"그때가 한창 바쁠 시간이에요. 콜이 밀렸어요. 어르신을 도울 때가 2차, 3차 술 드시고 택시 요청이 많은 시간이에요. 할증 시간이 오후 10시로 당겨져서 8시부터가 피크 시간이거든요. 자살 시도 청년을 구할 때는 할증 시간이어서 40%를 더 받아요. 그래서 바쁘죠. 전날 다른 지역을 갔다 와서 새벽에 어느 정도 일을 해야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그 날은 새벽 시간대 근무가 중요했어요." 

하지만 울리는 카카오 소리는 그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카카오 소리보다 손님의 말이 더 크게 들렸거든요. 콜이 울리는데 우선순위가 아니어서인지 들리지 않더라고요. 콜은 365일 들을 수 있는데 손님의 이야기는 그때가 마지막이잖아요. 그래서 손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택시 기사가 기본적인 수입을 얻으려면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는 "10시간 이하로 일하면 수입이 나올 수 없다"며 "무리해서라도 운행하게 돼서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택시기사에겐 근무시간과 운행 거리가 곧 돈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시간 가까이를 포기한 채 사람을 구했다. 아쉽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그게 우선인가요?"라고 되물으며 "일단 돈이고 뭐고 사람이 먼저니까요"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선행이 알려지자, 걱정의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물에 빠진 걸 구조했는데 보따리 내놓으라는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염려다. 

"사람들이 어르신 같은 경우도 택시 기사 때문에 쓰러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블랙박스 영상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몸이 먼저 나가는 거죠.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저도 보호하면서 도와드립니다. (안전장치가) 있으면 도와주기가 더 쉬워요."

그가 그날 새벽 청년에게 '캔커피'를 건넨 것처럼, 7살 아이는 그에게 '초코우유'를 건넸다고 한다. 선행을 알게 된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는 삭막해진 사회지만, '관심'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심이나 귀 기울임이요. 작은 소리를 듣고 외면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관심으로 모든 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이호연 씨.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구했다.
▲ 이호연 택시기사  충청북도 충주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이호연 씨. 지난 3월 자살 시도자의 생명을 지키고, 2월에는 도로에 쓰러져 있던 노인을 구했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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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살예방, #사람 살리는 택시기사, #택시기사,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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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두려움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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