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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매일 1시간씩 뛰어 놀아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아이들
 매일 1시간씩 뛰어 놀아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아이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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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 산다. 부산은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큰 광역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방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두 가지로 나뉜다. 서울/경기도를 묶은 수도권과 그 외 지역들을 죄다 묶은 지방.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은 퉁쳐서 '지방'으로 표현된다. 출생률의 감소와 지방의 초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방 소멸은 이미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똑같은 본사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근무지가 서울이 아니면 본사가 아닌 지방 근무자가 된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2년제 대학이든 지방대도 아닌 '지잡대'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에서의 삶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갈수록 지방의 민낯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작 '지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산은 무척 강렬한 곳이다. 무뚝뚝한 사투리에 숨겨진 정(情),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와 예술의 열기, 어디에서든 1시간 내로 바다로 갈 수 있는 접근성, 전국의 관광객은 물론 로컬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많은 맛집, 마천루와 산복도로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삶의 모습들까지.

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무색하게 현재의 부산은 이미 초고령사회의 진입이 진행되는 중이다.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고향 땅이 미래에도 지금처럼 살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삶이 많지 않도록 지방의 도시들이 활기를 되찾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행복한 가정, 행복하지 않은 아빠

연애 기간을 포함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아내, 9살 딸, 6살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 한때 '산소 학번'이라고 불리던 02학번 대학 새내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3년차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과 가정에서 '낀 세대'의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비록 바쁜 업무로 인해 삶이 단조로워졌지만, 다양한 취미를 놓지 않고 있다. 음악과 독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점프조차 힘들지만, 20대 시절에는 농구코트를 전장처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급여와 맞바꾼 건강과 생존을 위해 근래에는 집 앞 피트니스센터를 즐겨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양가 부모님이 계신다.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30분 거리에 있는 양가 부모님의 케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든든한 힘이 된다. 10년이 넘도록 매주 양가 부모님을 찾아 뵙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소중하고 큰 자산이 된다. 삼대가 소통하고 연대하는 삶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풍요로워 지는 것을 느낀다.

큰 욕심 없이 남들과 비슷하게 살면 남들만큼은 행복할 줄 알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부모로부터 아파트를 혼수선물로 받을 때, 선물은커녕 빚 없는 현실에 감사했다. 당시 연고지가 아닌 곳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주거 지원을 받았다. 고향인 부산으로 가면서 주거 지원이 없어졌다.

수 년간 30년 된 주공아파트에 세입자로 머문 뒤, 비록 타인 자본이 대부분이지만 내 집 마련도 했다. 10년이 넘도록 열심히 일하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남들보다 늦기는 하지만 진급도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팀원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던 직장생활의 이면에는 어느새 빈 껍데기만 남은 채 번아웃에 빠진 무기력한 가장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영혼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가장에게는 힘든 것조차 사치라고 여겼다. 가장이 느끼는 힘듦의 크기보다 가족 구성원이 느낄 생계에 대한 위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도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줄 알았다. 그것이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마땅한 삶의 모습이라고 여기면서.

육아휴직 그후 6개월 
 
매일을 사는데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삶이 반복되었다.
 매일을 사는데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삶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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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수도 없었다. 일을 해야 하는 것과 몸이 아픈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커 가는 자녀들의 눈을 보고 웃으며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아내의 모습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변해갔다.

어느 순간부터 멀쩡하던 몸에서 각종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일을 사는데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삶이 반복되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고장 난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썼다. 6개월 전 일이다.

매일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식사를 한다.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저녁마다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 보니, 자녀들은 물론 수 십 명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비싼 사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더 많이 웃게 만드는 아빠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중이다.

언제나 아이들이 찾는 대상은 아빠가 아닌 엄마였다. 모든 일상에는 아빠가 아닌 엄마가 있었으니까. 아이들의 눈에 학습된 아빠의 모습은 항상 피곤하거나, 잔소리를 하거나,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며칠 전 딸아이가 갑자기 학교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을 했다. 1등을 한 분야는 '우리가족 자랑하기' 숙제였다. 가족 모두가 모여 각자 칭찬할 내용을 적었는데, 그때 딸에게 들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아빠는 칭찬할 게 많은데, 엄마는 별로 없어."

오랫동안 '0점짜리'였던 아빠는 어느새 잘 놀아주는 아빠,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아빠, 매일 함께 책을 읽는 아빠가 되어 있었다. 일에 치여 있을 때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던 아이들과의 거리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가정이 행복한 사회가 건강하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빠에게서 기쁨보다는 슬픔을,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가족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던 모습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복귀하기 전 회복되어야 할 것은 내 몸과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일을 하느라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나 자신과의 관계도 돌봐야 했다. 시간이 지나도 힘차고 긍정적인 아빠가 아닌 여전히 힘이 없고 무기력한 아빠라면, 앞으로도 자녀들과 친밀함을 유지해나가는 일상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테니까.

육아휴직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무언가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하루중 아이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길어야 4~5시간 정도이다. 기존에 비해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바쁜 업무와 처리해야 할 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는 일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다. 주변 모두가 치열한 삶을 살아갈 때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은 잘못되거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질보다 추상적이고 측정 불가능한 휴식과 가족을 선택했다. 개인과 가정이 행복한 사회가 건강하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출발을 담은 기록이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육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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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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