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한 장의 사진이 이슈가 됐습니다. 한 카페 출입문에 적힌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는데요. 카페 주인이 '60세 이상 손님'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노시니어존'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노인을 배제하는 공간은 더 있습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또 다른 '노시니어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영화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영화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 기간에 극장을 가지 못해 갑갑했다. 인터넷으로 보는 영화는 편리하긴 해도 좀 허전했다. 극장이 잘 차린 정찬이라면 인터넷은 혼자 먹는 간편식이랄까.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지던 중, 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영화를 개봉한다길래 냉큼 예매했다.

상영 방식은 두 가지였다. 2D와 스크린 엑스(ScreenX). 2D는 일반적인 평면 방식이고, 스크린 엑스는 화면이 좌우 벽까지 확장되어 3면으로 상영하는 방식이다. 나와 언니는 말로만 듣던 스크린 엑스를 이참에 보고 싶었다.

앱에서 미리 예매한 덕에 좋은 좌석에 앉았다. 대형 화면이 병풍처럼 3면으로 펼쳐지면서 웅장한 스피커가 더해지자, 콘서트 현장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영상이 천장까지 뻗칠 때면 너나없이 흥이 솟았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한 장면에서 같이 웃고 박수치는 상황이 새삼 뭉클했다. 그런 순간 영화는 내용을 관람하는 차원을 넘어 감동적인 삶의 경험이 된다.

"우리 90세에도 보러 오자."

상영이 끝난 후, 언니가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니 운동부터 하자고 내가 말했다. 극장 로비의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저기요, 영화표 좀 사줄 수 있어요? 내가 기계 사용법을 몰라서 그래요."
 

거기 직원이 없느냐고 묻자, 없다고 했다. 카운터에 문의했더니 본인이 직접 예매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 직원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로비로 나갔다. 서너 대의 키오스크에 아무도 없었다. 모바일 예매가 활성화된 요즘, 현장 구매자는 많지 않다.

그림자처럼 길게 남은 그 한마디 
 
지난 2022년 1월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키오스크 예매 모습.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 2022년 1월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키오스크 예매 모습.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여성분은 내가 방금 본 콘서트 영화를 보고자 했다. 나는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하여 회차를 선택했다. 좋은 자리는 이미 나간 상태였다. 남은 좌석 중에서 그나마 나은 걸 고르고, 결제 화면으로 넘어갔다. 체크카드가 세 차례 전산 오류가 났다.

"현금 있어요. 신용카드는 없어요."

키오스크가 카드 전용이라고 하자, 여성분이 순간 당황해했다. 극장까지 와서 영화를 못 볼까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그 사이 노부부가 다가와 자신들의 예매를 부탁했다. 두 분은 비어있는 다른 키오스크를 놔두고 뒤에 줄을 섰다.

현금 결제에 대한 안내가 얼른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현금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내 카드로 일단 예매하고 현금을 받기로 했다. 앱에서 좌석 선택하고 카드 결제까지 1~2분이면 되었다. 키오스크에 예매 정보를 입력하여 종이 표를 발권했다. 관람 정보가 적힌 흰 종이가 출력되었다.

모바일 티켓이 일반화되면서 종이 티켓은 영수증처럼 밋밋해졌다. 대신에 영화 포스터나 개인 사진으로 포토 카드를 만들어 구매하는 상품이 생겼다. 천 원이면 만족스런 추억물을 얻는데, 앱에서만 제공되는 서비스였다. 같은 영화를 같은 극장에서 봐도 현장 구매자는 이용할 수 없다. 내가 포토 카드를 설명하자, 노인은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봤다며 좋아했다.

나는 다시 앱에서 포토 카드를 만들고 키오스크에 예매 정보를 넣어 카드를 뽑았다. 종이 티켓과 포토 카드를 쥐자, 여성분 얼굴이 환해졌다. 무사히 영화를 보게 되어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고맙다는 인사 끝에 노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도 요즘 세대로 태어날걸..."

마지막 말이 그림자처럼 길게 남았다. 자신은 사회에서 밀리고 소외되었다는 서글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화생활을 원하고 돈도 있지만, 디지털 기기가 낯설어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 불과 십 년 전, 스마트폰 예매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십 년 후 예매 방식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십 년 후, 나는 혼자서 예매할 수 있을까.

우리도 노인으로 살게 된다 
 
노부부는 기다림이 익숙한 듯 담담했다.
 노부부는 기다림이 익숙한 듯 담담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너무 빠른 기술 변화에 많은 노년층이 불편을 겪는다. 디지털 사회로의 변화 방향은 인정하더라도 모두의 속도가 같은 순 없다. 기업이 디지털 기기로 운영비를 줄였다면, 절감 비용의 일부를 그 때문에 불편한 이들에게 환원해주면 좋겠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미래, 우리는 요즘 노인 세대보다 긴 시간을 노인으로 살게 된다. 노인의 문화생활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준비가 절실해 보인다.

나는 노부부의 예매를 시작했다. 마땅한 좌석이 없어 다다음 회차를 보는데, 네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허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내가 잠시 주저했다.

"괜찮아요. 기다리면 돼요."

노부부는 익숙한 듯 담담했다. 나는 종이 표를 발권해 건넸다. 노인의 뒷모습에 나의 미래가 겹쳐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릴 수 있습니다.


태그:#키오스크, #디지털 소외, #노인의 문화생활, #노시니어존, #콘서트 영화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