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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한 호텔 난간에서 추락사한 박다원양의 어머니 김은영씨가 18일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대구 한 호텔 난간에서 추락사한 박다원양의 어머니 김은영씨가 18일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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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밝게 웃으며 엄마 품으로 달려들던 다원이가 갑자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악몽을 꿉니다. 그러면 저는 아이에게 용서를 빕니다."

지난 4월 16일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한 호텔에서 2살 박다원양이 비상계단 난간 사이로 떨어져 20m 아래 지하 1층으로 추락해 숨졌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났지만 유족은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 18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다원양의 어머니 김은영(37)씨는 아직도 그날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다원이 얼굴이 생생한데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낭떠러지 같은 계단 밑으로 떨어진 우리 다원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어요... 그물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저리 멀리 가지 않았을 텐데, 그 호텔에 갔다는 게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어른들의 안전불감증, 20m 추락한 두 살 딸아이
 

다원이네 가족은 지난 4월 16일 수성못에 갔다가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해 인근에 위치한 호텔 주차장을 이용했다. 주차요금을 내더라도 안전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당 호텔은 객실 수도 100개가 넘고 예식장까지 갖춘 대구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몇 시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원양 아빠가 주차장으로 연결된 비상계단 문을 열자 다원이가 계단으로 나갔다. 순간 다원이의 몸이 난간 사이로 빠지면서 지하 1층으로 추락했다. 사고가 난 계단은 나선형이었고 난간 간격은 29cm로 어른 몸이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현재 안전 기준인 10cm보다 세배 가까이 넓은 간격으로 계단 중앙 통로에는 추락방지 그물망 등 안전장치는 하나도 없었다. 
 
지난 4월 16일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예식장 계단 난간에서 26개월의 어린이가 떨어져 숨졌다. 호텔 측은 난간 사이를 보강했지만 그물망은 설치하지 않아 여전히 위태로워 보인다.
 지난 4월 16일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예식장 계단 난간에서 26개월의 어린이가 떨어져 숨졌다. 호텔 측은 난간 사이를 보강했지만 그물망은 설치하지 않아 여전히 위태로워 보인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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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양 엄마 은영씨는 "호텔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가도록 연결돼 있어 부득이하게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인데 계단 난간이 왜 그렇게 허술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대구시와 8개 구·군은 부랴부랴 다중이용시설의 난간 위험성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호텔 측은 난간 사이를 좁히는 보강작업을 했다.
  
2015년 제정된 실내건축의구조·시공방법 등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계단 및 복도 등에 설치하는 난간은 120cm 이상, 난간 사이 간격은 10cm 이하여야 한다. 호텔 측은 해당 기준이 만들어지기 두 달 전 건축허가를 신청, 적용대상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은영씨는 "이렇게 난간 사이를 보강할 거였으면 미리 했어도 됐을 것"이라며 "사람이 죽어야 보강을 하는 것은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겠느냐. 왜 우리 아이가 죽어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왼쪽은 사고가 발생한 간격 29cm 간격의 난간 모습. 오른쪽은 사고 이후 간격을 10cm로 줄인 계단 모습이다.
 왼쪽은 사고가 발생한 간격 29cm 간격의 난간 모습. 오른쪽은 사고 이후 간격을 10cm로 줄인 계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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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양 부모는 사고 당시에도 호텔 직원들이 별다른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은영씨는 "아이가 지하 1층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숨이 멎었을 때에도 호텔 직원들은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119 구급대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또 장례를 치르고 벌써 한 달이 다 됐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무신경해도 되느냐"고 호텔 측을 원망했다.

"다원이가 그냥 잊혀지지 않았으면..."  
 
지난 4월 16일 대구의 한 호텔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한 26개월의 다원이(엄마 김은영씨 제공).
 지난 4월 16일 대구의 한 호텔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한 26개월의 다원이(엄마 김은영씨 제공).
 
사고 한 달이 지났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에 있다"며 "최대한 빨리 결과를 내겠다"고 답했다. 경찰은 관리 부실이 밝혀질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 시민재해'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수성구청 또한 호텔 측에 난간 간격을 10cm 이하로 조정하라고 권고했을 뿐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은영씨는 "지금 둘째 다원이의 빈자리가 너무 커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번 사고가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다원이가 죽은 뒤 그냥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다원이가 죽음으로 더 많은 아이를 살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족은 그날의 비극적인 죽음을 딛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다원이의 실명을 공개했다. 

관련해 호텔 측은 유족 연락처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호텔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경찰이 유가족 연락처를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막 찾아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도현 변호사(법무법인 도율)는 "법이 바뀌기 전에 난간이 설치됐다 하더라도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법이 바뀐 이후에도 난간 사이를 그대로 둬서 사고가 났다면 안전배려 의무라든지 제조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태그:#호텔 난간, #사망사고, #대구 수성경찰서, #수성구청, #실내건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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