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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의 신곡 'ditto'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뉴진스의 팬 '버니스' 를 의미하는 한 소녀가 시종일관 뉴진스의 멤버들 영상을 찍는다. 캠코더로. 스마트폰 카메라는 점점 발전해 이제는 2억 화소의 스펙을 자랑하는 시대에 신세대를 표방하는 신인 걸그룹이 지직거리는 영상과 캠코더를 콘셉트로 나온 것이다.
 
뉴진스 디토ditto 뮤직비디오 한 장면.
 뉴진스 디토ditto 뮤직비디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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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이젠 없어지리라 생각했던 필름카메라가 소위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캠코더까지 등장했다. 나는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캠코더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유행의 선구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2023년에 6mm 캠코더를 사용하는 법
 
캠코더 테이프 넣는 곳.
 캠코더 테이프 넣는 곳.
ⓒ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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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미러리스, DSLR, 필름카메라를 모두 찍는 카메라 덕후이자 아마추어 사진 작가를 꿈꾸는 22살 대학생이다. 내가 캠코더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 7월이었는데,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니 90년대-2000년대 초반 홈비디오 느낌의 영상이 찍고 싶어져서 집안에 잠자고 있던 캠코더를 꺼냈다.

2002년에 아버지가 그 당시 시세로 100만 원을 넘게 주고 산 캠코더이다. 내가 2002년에 태어났으니, 내 영상을 찍어주기 위해서 사신 것이다. 이 캠코더를 10여년 만에 장롱에서 꺼냈다. 그런데 바로 쓸 수 없었다. 먼저 새 리튬배터리와 코인형 전지를 구해야 했다.

리튬배터리는 제조사에서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아 인터넷에서 구매했는데, 동남아시아 어디에서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날짜 표시 기능 즉 "데이터백"을 위해서 코인전지가 필요했다. 편의점에서 사서 끼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6mm 테이프가 필요했다. 이것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테이프를 끼우기까지 했는데, 테이프가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캠코더를 들고 삼성 서비스센터에 갔다. 삼성은 카메라 사업을 접었다. 서비스센터 키오스크의 선택지에는 캠코더 비슷한 것도 없었다.

"캠코더요? 일단 가전으로 접수하세요. 혹시 고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냥 돌아서려 하는 나를 직원이 붙잡아서 접수를 대신 해주었다. 그래서 나와 캠코더는 그 센터의 최고참 엔지니어가 있는 가전 파트로 보내졌다. 엔지니어는 이걸 왜 가져왔는지 황당한 표정이었다.

"이거 20년 전에 나온 건데, 이걸 쓰시겠다구요?"
"요즘에 이런 거 다시 꺼내서 써요. 레트로... 그런 느낌으로요..."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엔지니어들이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아, 뭘 말하는 건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거 이제 부품도 없어요. 뜯자면 뜯을 수는 있는데..."

말하면서 엔지니어는 캠코더를 몇 번 툭툭 쳤다. 그 순간 테이프가 슬금슬금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이거 되는데요?"
"아 그럼 저 이거 그냥 가져갈게요! 뜯지 마시고 그냥 주세요. 이거 때려가면서 쓸게요!"


수리비도 없었다. 나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캠코더를 쇼핑백에 소중히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내가 6mm 캠코더를 사용하는 방법은 대충 이렇다. 일단 리튬전지를 충전시키고, 작동이 될 때까지 살살 달래가며 기다린다. 그리고 촬영을 한다. 나는 주로 60분 분량의 테이프를 사용한다. 촬영이 끝나면, 테이프를 빼지 않은 채로 캠코더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테이프에 기록된 영상을 TV에서 재생한다.

그리고 TV에서 화면녹화 기능을 사용해서 이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저장한다. 그러다 갑자기 작동이 안 되면, 톡톡 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시 돌아온다. 고장나지 않게 조심해서 써야 한다. 이제 고쳐 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내가 직접 뜯어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편한데 왜 써?
 
브이로그용으로 찍어두었던 캠코더 세팅하는 영상을 캡처한 사진
 브이로그용으로 찍어두었던 캠코더 세팅하는 영상을 캡처한 사진
ⓒ 안수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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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렇게 불편한 짓을 사서 하는가. 어머니가 내게 물어보셨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것을 아셨을 때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 핸드폰이 이렇게 좋은데 (나는 스마트폰 최신 모델 사용 중이다) , 이걸 왜 쓰니? 네가 안 써봐서 이 불편함을 모르는구나."

IT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핸드폰 만들어 놨더니, 이걸 다시 꺼내서 쓰네?"

솔직히 말해서 불편하다. 그리고, 사실 '감성'은 굳이 옛날 기계를 꺼내서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스마트폰에 어플만 조금 깔면 '필름 감성', '캠코더 감성'으로 충분히 찍을 수 있고 사실 영상의 품질도 이쪽이 훨씬 낫다.

고화질로 찍어서 저화질 느낌을 내는 것과 진짜 저화질로 찍힌 영상의 퀄리티는 천지 차이이다. 이것을 몰라서 내가 캠코더로 영상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저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이다. 요즘 스마트폰 모델들은 영상 손떨림 방지는 기본으로 탑재되어 출시된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바로 내 마음대로 자를 수도, 소리를 없앨 수도, 배경음악을 추가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쉽게, 터치 몇 번으로. 이렇게 편한 세상에서 자란 우리는, 기계가 주는 불편함을 모르는 세대이다.
 
캠코더, 테이프, 충전케이블과 배터리들을 다 모아놓고 찍은 사진.
 캠코더, 테이프, 충전케이블과 배터리들을 다 모아놓고 찍은 사진.
ⓒ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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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주는 기계들은 우리 세대에게 신선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에게 맞는 배터리를 찾고, CtoC로 모든 케이블이 통일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 기계에 맞는 두껍고 정체 모를 케이블을 찾아내는 것. 어렵게 어렵게 달래가며 때려가며 녹슨 것들을 작동시키는 것. 고장나면 고쳐 줄 사람도 없어 '대충 작동만 되면 된다' 식으로 버티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재미있는 취미 생활이 된 것이다.

거기에 남들이 잘 모르는 이상한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이 옛날 기계의 작동법을 마스터하면, 마치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힙스터가 된 기분이 든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기계라는 것이 희귀해진 요즘 시대에, 정말 어머니 말대로 "불편함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신세대에게 옛날 기계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 기계들이 불편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기계에게 맞추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이 불편함을 취미생활처럼 여기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태그:#캠코더, #레트로, #MZ세대, #과학기술,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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