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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문화재단이 대구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공연하려 했으나 종교편향적이라는 이유로 공연계획이 취소되자 구미시립합창단과 민간 예술단으로 구성해 합창교향곡 4악장만 연주하기로 했다. 사진은 공연계획 변경 전과 후의 포스터.
 대구 수성문화재단이 대구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공연하려 했으나 종교편향적이라는 이유로 공연계획이 취소되자 구미시립합창단과 민간 예술단으로 구성해 합창교향곡 4악장만 연주하기로 했다. 사진은 공연계획 변경 전과 후의 포스터.
ⓒ 수성아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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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합창'은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으로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제4악장은 독창 및 합창과 함께 연주되고 가사는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환희에 붙임(An die Freude)'이 쓰인다.

합창에는 '환희여, 신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들의 딸들이여, 우리는 빛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간다, 성스러운 신전으로!'라는 가사가 나온다. 또 '창조주를 믿겠는가, 온 세상이여? 별들 뒤의 그를 찾으라! 별들이 지는 곳에 그는 있다'는 가사도 있다.

베토벤의 '합창' 연주 못하는 대구교향악단

그런데 대구시민들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을 수 없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베토벤의 교향곡 뿐만 아니라 '신' 또는 '창조주'라는 가사가 나오는 곡은 연주해서도 안 된다. 이른 바 '종교화합'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시립교향악단은 공연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고 교향곡도 전곡이 아닌 4악장 부분 연주로 하겠다고 지난 25일 알렸다

대구 수성아트센터는 다음 달 1일 재개관을 기념해 대구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합창단과 함께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공연할 예정이었다. 이미 포스터를 공개하고 공연예매 사이트를 통해 티켓 예매도 들어갔다. 하지만 베토벤의 '합창'을 무대에 올리는 데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중순 서면으로 진행된 대구시 종교화합자문위원회에서 한 자문위원이 교향곡 가사 중 '신', '창조주' 등의 가사가 종교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대구시립예술단 설치 조례에는"시립예술단은 종교 중립성 확보를 위해 종교계·법조계·문화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종교화합자문위원회'의 전원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결국 수성아트피아는 출연이 불발된 시립합창단과 시립교향악단 대신 구미시립합창단과 지역 예술인들로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조례에 따르면 시립합창단이 아닌 민간합창단이나 다른 지역 시립합창단이 공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교향곡 전곡이 아닌 4악장만 연주하고 전석 무료 공연으로 전환했다. 

불교계 반발에 오페라 합창 공연 무산

대구 시립문화단체의 공연을 놓고 종교편향을 따지는 이유는 왜일까? 발단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9월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에 총신대학 출신 지휘자가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구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우리에게 평화를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같은 분 없네', '성자들이 행진할 때' 등의 내용이 들어가자 그해 12월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대구시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대구시는 "이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립예술단에 전파하고 재발방지 교육을 실시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해 일단락됐다.

하지만 2014년 10월 열린 대구 합창제전에서도 찬송가 3곡이 무대에 올랐다. 이에 대구불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불교계는 대구시청을 항의 방문해 권영진 시장을 면담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후 7년여가 흐른 2021년에는 대구시가 종교 화합 혹은 종교 중립성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다. 당시 대구시립합창단은 창단 40주년기념 및 정기연주회를 그해 4월 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공연하고 유튜브 중계까지 했다. 또 부처님오신날 하루 전인 5월 18일에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시립합창단 40주년 기념음악회 앵콜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동화사 등 불교 관계자들이 공연 내용을 문제삼았다. 오페라 합창 가사에 '찬양하세' '교회에 기도하러 가세' 등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조계종 팔공총림 동화사 스님들과 신도회장 등 10여명이 대구시의회 의장을 항의방문하고 당시 박희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에게 대구시에 대구시장 공식사과, 재발방지 대책강구, 합창지휘자의 문책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동화사 관계자는 "공연된 오페라 합창의 가사에 '찬양하세', '교회에 기도하러 가세', '영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리세, 찬송으로 경배드리세' 등의 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종교편향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시립합창단은 대구시민의 정서에 맞는 합창단이어야 하는데 과연 종교중립적인 대구시의 단체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고 관리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희준 국장은 "대구시립합창단의 편향된 공연으로 불교계에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5월 18일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고 대구시장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대책강구, 합창단 지휘자 문책은 대구시장에게 보고해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대구시는 그해 조례를 개정했고 개정된 조례는 결국 시립합창단이 종교적인 단어가 들어가는 공연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족쇄가 됐다. 대구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합창단 등은 공연 전에 종교화합자문위원회에 공연 내용을 알리고, 다수결이나 과반수도 아닌 전원 찬성을 받아야만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실질적 '종교 검열'인 셈이다. 
  
대구예술인들 "종교화합자문위원회 폐지해야"
 
대구시립합창단과 시립교향악단이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이 무산되자 지난 20일 일부 예술인들이 대구시청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종교편향 판정을 규탄했다.
 대구시립합창단과 시립교향악단이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이 무산되자 지난 20일 일부 예술인들이 대구시청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종교편향 판정을 규탄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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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종교화합자문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구시립합창단과 대구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공연하지 못하게 되자 대구 일부 예술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지역 예술인 10여 명은 지난 20일 대구 동성로 CGV 한일극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도시 대구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위원회의 극단적 종교편향 판정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구시청까지 규탄행진을 벌인 뒤 ▲공연 금지 조치 철회 ▲종교편향, 종교화합 용어 사용 중지 ▲위원회를 통한 검열 중지 ▲위원들 서명과 실명 등이 기재된 보고서 공개 등을 요구했다.

대구지역 음악인들은 26일 오전에도 대구음악협회 사무실에 모여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의 공연을 무산시킨 종교화합자문위원회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종교화합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음악인들을 크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음악도 공연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면 애국가도 부를 수 없다. 이건 국가적 망신"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시는 종교계, 학계 등과 함께 헌법이 보장한 예술의 자유를 지키는 방안을 찾겠다며 제도 개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놨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종교화합위원회에서 부결 의견을 낸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며 "그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례 내용 중 종교화합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의회도 조례에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정일균 대구시 문화복지위원은 "베토벤의 교향곡이 종교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조례를 개정해서라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종교편향적이라는 이유로 공연을 하지 못하자 대구지역 음악계 인사들이 26일 오전 모여 종교화합위원회 폐지를 요구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종교편향적이라는 이유로 공연을 하지 못하자 대구지역 음악계 인사들이 26일 오전 모여 종교화합위원회 폐지를 요구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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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토벤 합창교향곡, #대구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합창단, #종교편향,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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