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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빵을 살피고 있는 한상백 대표.
 자신이 만든 빵을 살피고 있는 한상백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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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민 전체가 두 번씩 먹을 양은 팔았을 걸요."

대체 이처럼 크게 히트 친 상품이 뭘까? 궁금증이 일어날 만하다. 한스드림베이커리 한상백(52) 대표가 만든 갈릭바게트(바게트 사이에 마늘 소스를 넣은 빵)의 인기는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포항의 인구를 50만 명으로 잡으면 지금까지 대략 100만 개의 갈릭바게트를 만들어 판매했다는 이야기. "빵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한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과 스케일이 남들보다 컸다.

교육자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10년째 병상에 누워있던 1980년대 후반. 기울어진 집안을 돕기 위해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려던 아들 한상백을 아버지가 극구 말렸다.

"너는 꼭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돼야 한다"는 부친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한 대표는 인문계 고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입학 후 한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친의 안타까운 죽음과 적성에 맞지 않는 학교생활. 방황이 시작됐다. 싸움도 하고 사고도 쳤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교생 한상백'을 구한 게 바로 빵이다.

제빵 일을 하던 형의 권유로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에 입학한 것. 1988년 일이다. 그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열여덟 살이던 한 대표가 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전 세계 기자들이 먹을 빵을 진열하는 일을 했다. 아직은 빵을 만들지 못하던 때였으니 허드렛일을 맡은 것이다.

그때 조그만 빵 하나가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35년의 시간이 흘렀다. 빵을 통해 존재를 전이시킨 한상백 대표는 지금도 빵과 첫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여전히 빵 안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모험이 즐겁고 흥미롭다고 말한다.

지금은 파티셰(Patissier)라고 불리는 '제빵사'의 영역을 넘어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강연자로 살고 있는 한 대표. 그는 빵을 매개체로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10년 후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는 '글로벌 베이커리 컨설팅업체'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한상백 대표를 지난 월요일 만났다. 다음은 그가 들려준 빵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가지런히 진열된 한스드림베이커리의 빵들.
 가지런히 진열된 한스드림베이커리의 빵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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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드림베이커리에서 빵을 고르고 있는 손님들.
 한스드림베이커리에서 빵을 고르고 있는 손님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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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은 어디이고 어린 시절은 어디서 보냈나.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른 살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20대 때 3년은 일본에서 제빵 기술을 배웠다. 포항에 정착한 건 30대 후반쯤이다."

- 처음 빵과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아버지가 오래 편찮으셔서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상업고교를 가려 했는데 군인이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로 갔다. 근데,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슬픔과 상실감에 방황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큰형이 '빵 만드는 일을 해보라'고 권유해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 제빵 일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가.
"어릴 때부터 가난했기에 여유로운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어지간히 어려운 건 어렵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빵을 맛보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즐겁다."

- 빵을 만들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제빵 일을 한 게 햇수로 36년째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빵에 관한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다니며 사람들에게 빵이 가진 매력을 알려주고 싶다."

- 권위 있는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던데.
"2011년 중국 광저우에서 제빵월드컵이 열렸다. 거기서 아시아권 1등을 했다. 빵 분야에선 나라를 대표한 것이었으니,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웃음)"

- 잊을 수 없는 포항에서의 기억도 있을 텐데.
"포항제철고교에 아는 교사가 있다. 그분 제자의 아버지가 간경화에 걸렸다. 수술비 3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빵을 만들어 수익금 300만 원을 지원했다. 지인도 뜻을 보태라며 100만 원을 보내왔다. 포항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이 소식을 알고는 모자라는 수술비를 모금해줬다. 15년 전쯤 일이다. 따스한 마음들이 모였지만, 아쉽게도 그분은 수술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중국집 요리사였는데, 죽기 얼마 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들고 내게 찾아와 고맙다며 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아주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는 강연회나 교육 현장이 있으면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회로부터 많은 걸 받았으니 그걸 돌려주는 일종의 재능 기부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도 시간이 많이 사용된다."

- '재능 기부'라는 말이 인상적인데.
"방황했던 어린 시절 빵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열 수 있었다. 후배들도 자신의 길을 찾기 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세상으로부터 내가 받은 걸 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36년째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빵 만드는 게 어렵다는 한상백 대표.
 36년째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빵 만드는 게 어렵다는 한상백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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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드림베이커리의 앙증맞은 장식.
 한스드림베이커리의 앙증맞은 장식.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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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빵을 만들었다. 아직도 빵을 만드는 게 어렵나.
"자신이 하는 일을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프로가 아니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빵 만들기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 역시 아직 완전한 빵을 만들지 못한다."

- 당신에게 빵은 어떤 의미인가.
"내 인생을 바꾼 존재다. 빵을 통해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됐다. 세계 각국 제빵사들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후배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

- 어떤 인간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고 싶은지.
"현재 내 직업은 제빵사인 동시에 강연자다. 빵을 매개체로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해 그들의 성장시키고 싶은 게 내 꿈이다. 갈등하고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다."

-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앞날의 청사진은.
"국내와 해외에 많은 후배들을 양성해 글로벌 베이커리 컨설팅업체를 설립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어가 필수다. 나는 지금도 빵을 만들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예순 살이 넘으면 파티셰가 아닌 '글로벌 CEO'의 삶을 살고자 한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10대 때는 곁에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도 종일 식당에서 일을 했기에 자식에게 따스한 관심을 보여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조그만 난관 앞에서도 쉽게 좌절한다. 그런 상황이 되면 부모가 앞장서 '힘들면 그만둬'라고 하는데, 난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어려움 없이 성장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자식을 나약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부모가 먼저 나약함을 버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한스드림베이커리, #한상백, #마늘바게트,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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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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