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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편 공터에서 쑥을 캤다. 며칠 전만 해도 겨우 어린잎 몇 장이 앙증맞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덤불을 비집고 돌 옆에 무더기로 자란다. 쑥쑥 자란다고 쑥이라더니 비 온 뒤의 쑥을 보니 단박에 그 말이 와닿는다.
 
집 뒤 공터에서 쑥을 캐다.
 집 뒤 공터에서 쑥을 캐다.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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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애잇머리(맨 처음) 쑥이로구나. 두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여리고 보드랍다.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대며 쑥 향기를 맡아본다. 콧속으로 싱그러운 봄향이 스며든다. 봄을 맞는 일은 설렌다. 가지마다 새움이 돋고 살구나무에 꽃눈이 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마음에 봄을 들이는 일이다.    

변화무쌍한 봄의 마당

쑥을 캐러 마당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봄에는 하루가 다르게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단단한 땅을 뚫고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싹. 겨우내 숨을 죽이고 있던 수선화에서 돋아난 연두잎.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핀 무스카리
▲ 무스카리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핀 무스카리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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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소문 없이 저 혼자 꽃을 피워 낸 무스카리. 작은 바위 옆에서 다소곳이 인사하는 돌단풍, 마당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준 자두꽃. 죽었다고 생각한 장미에서 돋아난 가시마저 반갑다.
 
올봄에 심은 살구나무에서 첫 꽃이 피었습니다
▲ 살구나무 올봄에 심은 살구나무에서 첫 꽃이 피었습니다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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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심은 팬지와 마가렛은 가는 바람에 작은 꽃잎을 살랑대고 있다. 아침마다 봄을 맞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무와 꽃을 살피는데 발 아래 벌써 잡초가 보인다. 양이 많아지면 힘들어진다. 눈에 띄는 대로 뽑아야겠다 싶어 호미를 들고 나섰다. 풀 몇 가닥을 뽑고 보니 쑥이 제법 보인다. 버리기 아까워 바구니에 담았다.  

봄이 되면 다른 풀보다 먼저 돋움 하는 것이 쑥이다. 겨울철에는 흔적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봄의 기운을 받자마자 젖빛 솜털이 보송한 잎을 피워내는 것이 참 부지런하다. 쑥을 캐고 있는 빈터는 자갈과 황토, 잡초 덤불이 우거진 땅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척박하고 단단한 땅을 뚫고 솟은 쑥의 생명력은 강하다. 번식력도 남다르다. 모두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후면 또 고개를 삐죽이 내민다. 뿌리뿐만 아니라 바람결에 날려 오는 씨로도 번식을 하는 까닭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몇 발자국 옆 빈터에는 소복이 자라기를 바라면서 내 집 마당에 뿌리내리는 것은 사양한다. 사정없이 호미질을 해댄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소나무 밑에서도 텃밭이랑 사이에서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심지어 돌틈에서도 쑥 하고.

봄철이면 하천 주위나 논과 밭에서 쑥이나 냉이를 캐는 사람을 흔히 본다. 하지만 도심의 도로나 하천 변에서 자라는 야생 봄나물의 경우 중금속에 오염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년엔 봄 내내 쑥국, 쑥 전, 쑥 튀김

집 근처에서 깨끗한 봄나물을 얻을 수 있으니 소소한 기쁨이다. 조금 더 있으면 집 근처에 쑥이며 냉이가 지천으로 자란다. 작년엔 내 평생 캐어 본 양보다 더 많은 쑥을 캤다. 봄 내내 쑥국, 쑥 전, 쑥 튀김을 했다. 쑥개떡도 만들어보고 쑥인절미에도 도전했었다.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면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

다양한 쑥 요리 중 쑥버무리가 있다. 경상도 말로는 쑥털털이라고 부른다. 밀가루나 쌀가루에 버무려 찌면 허기진 배를 채울 뿐 아니라 맛있는 간식이 된다. 봄이면 어머니는 종종 쑥버무리를 해 주셨다. 간혹 쌀가루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밀가루를 슬슬 묻혀 만든다.

밥 할 때 찜기에 삼베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쑥버무리를 얹어 두면 알맞게 쪄진다. 갓 쪄진 쑥 버무리를 한 김도 가시지 않고 '앗, 뜨거워' 하면서 후후 불어 입안에 넣으면 쑥향이 혀끝에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내 손으로 쑥 버무리를 한 적은 없다. 올해는 손이 많이 가는 개떡이나 쑥 인절미 말고 쑥버무리를 해야겠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진 않겠지만 올해 따라 그 맛이 간절하니 흉내라도 내 볼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에 반이나 찼다. 이 정도면 웬만하다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쪼그리고 앉았다 서니 오금도 저리고 허리도 아프다.     

쑥을 캐고 있는 땅은 마른 덤불투성이다. 지푸라기와 흙을 털어내 가며 골라 담다 보니 어지간히 했다 싶어도 양이 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만 따진다면 사 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천 원어치만 사면 쑥국 한 냄비는 끓일 수 있다. 평소에는 가성비를 따지는 팍팍한 삶이지만 가끔은 돈보다 귀한 것을 택한다. 이 봄에 쑥을 캐는 일이 그렇다.

쑥 같은 사람은 어떨까

쑥을 캐면서 봄을 담는다. 눈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는다. 여유롭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연초록 잎이 싹트는 잡목에서 봄 내음을 맡는 일도 웃음빛이 돈다. 이름 모를 작은 풀잎에게 말을 건네본다. 고향 마을에서 친구들과 쑥을 뜯던 추억도 떠올린다. 어머니의 손맛도 그리워한다. 오천 원으로 가질 수 없는 소중함이다. 봄날 쑥을 캐보지 못하고 사 먹기만 했더라면 얻지 못할 행복이다.

쑥을 캐다 보니 '쑥을 닮은 사람'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쑥 같은 사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쑥은 예부터 춘궁기에 굶주림을 면해준 고마운 식재료이다. 요즘은 쑥설기나 쑥 카스텔라처럼 요깃거리의 종류도 다양하고 피자, 쿠키, 사탕 등의 먹거리에 두루두루 쓰인다.

따뜻한 성질과 다양한 효능을 가진 쑥은 차나 약재로도 쓰인다. 마늘과 함께 먹으면 인간이 되게 해주는 기막힌 효험도 있다. 쓰임새가 많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이른 봄부터 음력 오월까지 잎을 뜯어도 새잎이 계속 돋는다. 어린 쑥은 국으로. 큰 잎은 떡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몸이 다할 때까지 내어주는 넉넉한 마음을 본다.

산이든 들이든 척박함을 이겨내고 어디는 뿌리내리는 강인함을 갖추고 있다. 겨울을 털어내고 여느 봄나물보다 먼저 찾아오는 부지런함도 있다. 생각해 보니 그중 어느 덕목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노력해서 얻을 자신도 없다. 아무래도 쑥을 닮은 사람이 되긴 틀린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brunch.co.kr/@dhs9802에도 실립니다.


태그:#쑥, #봄, #쑥요, #봄향기, #쑥을 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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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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