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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통인형극 구아라텔레의 장인, 잔루카
 이탈리아 전통인형극 구아라텔레의 장인, 잔루카
ⓒ (사)한국인형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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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한국인형극협회는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내 인형극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제7회 예술인형축제는 인형극협회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보는 순간이자, 국내 인형극의 발전을 목도하는 자리였다.

특히 공식초청작으로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전통인형극의 장인 잔루카 디 마떼오(Gianluca Di Matteo)는 22년간 인형극 외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축제와 결을 같이 한다.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조차도 새로운 모험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싶다는 그와 공연이 펼쳐진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지난 17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3번째지만... 순탄치 않은 방문

잔루카의 한국 방문은 춘천인형극제(2012년, 2015년)와 안동문화예술의전당(2012년)공연 이래로 세 번째다. 오랜 팬데믹 뒤, '제7회 예술인형축제'에 공식 초청받아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날은 비자 문제가 걸려 어려움을 겪었고, 다음 날에는 독일 경유 비행기를 탔는데 폭설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않은 거예요.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기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죠. 그런데 이번엔 세트가 실린 짐 가방이 도착하지 않은 겁니다. 지금껏 21개가 넘는 국가에서 공연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죠."

세트가 행방불명돼 공연 준비에 차질을 겪고 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극단 문화예술굼터 뽱에서 빌려준 세트
 극단 문화예술굼터 뽱에서 빌려준 세트
ⓒ (사)한국인형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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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문화예술굼터 뽱'에서 소식을 듣고 직접 세트를 가져다 주셨어요. 한국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이런 게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했지만, 이 세트랑 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제가 쓰던 세트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보니 공연을 새롭게 올리는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소중한 친구도 하나 늘었고요. 살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하는데,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게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요."


잔루카는 2000년부터 인형 작업을 해왔고, 이탈리아 나폴리의 전통인형극 '구아라텔레(Guarattelle)'의 장인으로 손꼽힌다. 이탈리아 내 문화예술협회와 협력해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여러 인형극페스티벌과 극장에서 공연하고, 학교에서 배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의 통합을 위한 예술'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인형극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요즘에는 이민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인형을 활용한 워크숍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인형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상대방을 더 편하게 인식하게 되죠. 인형을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가 이번 축제에서 공연한 '풀치넬라(Le Guarattelle di Pulcinella)'는 17세기 즉흥연희극(commedia dell'arte)에서 유래해 나폴리 인형극의 기본 캐릭터가 된 고전 캐릭터다. 1620년, 실비오 피오릴로(Silvio Fiorillo)가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소개한 이후 풀치넬라의 다재다능함은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캐릭터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두려움, 사랑, 죽음 등의 심오한 주제를 유쾌하고 흥미롭게 끌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편견 중 하나가 인형극은 아이들을 위한 장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제7회 예술인형축제는 그런 선입견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어린이부터 성인들까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인형극을 즐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작품을 볼 기회도 있었는데 시나 이미지, 의미를 결합해서 공연을 완성해낸 것이 아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형으로 아우르다'는 페스티벌 주제와도 잘 어울렸고요. 풀치넬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공연이지만, 부모님과 조부모님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전통인형극 <풀치넬라> 공연 중 한 장면
 이탈리아 전통인형극 <풀치넬라> 공연 중 한 장면
ⓒ (사)한국인형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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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공연 관람 연령을 4세부터 100세 이상으로 표시할 정도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형극의 힘을 보여줬다. 정확한 핸들링과 강렬한 신체 언어, 빠른 속도감의 움직임을 적절히 가미해 작품의 몰입도를 놓였다. 특히 오리가 꽥꽥거리는 것과 같은 독특한 소리는 모두 라이브로 소화했는데, 피벳따(Pivetta)라는 악기를 통해 내는 소리다. 이 악기를 입천장에 밀착시킨 뒤, 공연 내내 호흡을 조절하며 소리의 톤을 유지한다고 한다.

"아랫배와 윗배의 힘, 흉성까지 다 써야 해요. 악기를 불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이 악기를 누가 만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극에 활기를 불어넣기에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아랫배와 윗배, 흉성까지 다 쓰고 있죠."

마법 같은 순간 잊지 않고 간직할게요

그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기는 물론이고, 인형 제작도 직접 한다. 나무를 조각내고, 인형 옷을 바느질하며, 무대 세트도 직접 완성했다. 

그가 만든 나무인형들은 미국 애틀랜타의 인형극예술센터, 네덜란드 보르히텐의 인형극장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흔히 인형하면 예쁘고 완벽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가 만드는 인형은 조금 특별하다.

"완벽한 것보다는 흠집 있는 것이 더 좋아요. 오히려 그게 더 생명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죠. 인형을 만들 때는 접착제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내서 실로 연결한답니다."
 
직접 만든 인형 '풀치넬라'를 소개하는 잔루카
 직접 만든 인형 '풀치넬라'를 소개하는 잔루카
ⓒ (사)한국인형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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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2년째 인형극인의 길을 걸으며 후회한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단 한 번도 없다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칠레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의 책 <새가 가장 잘 노래하는 곳(where the bird sings best)>을 읽었는데, 책 안에 실린 인형극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다 읽어가던 때 친구가 인형극 학교 오디션이 있는데, 도전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죠.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마치 운명 같았어요. 인형극을 시작하자마자 이 세계에 매료되었고, 긴 시간을 함께 해왔죠.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지난해 자신이 진행한 워크숍에 참여한 극단 음마갱깽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앞으로 한국의 인형극 단체 및 (사)한국인형극협회와도 더 폭넓게 교류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 관객들은 굉장히 호응도 잘해주고, 극에 대한 이해도와 집중력이 뛰어납니다. 공연자인 입장에서 볼 때 더 자주 오고 싶은 곳이죠. 또 이번에 다른 단체의 공연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더 많이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무대를 가져다준 극단 문화예술굼터 뽱과도 협업을 한 셈이 됐네요. 이 모든 마법 같은 순간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한국인형극협회 회원들과 함께한 사진
 한국인형극협회 회원들과 함께한 사진
ⓒ (사)한국인형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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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한국인형극협회, #제7회예술인형축제, #잔루카, #이탈리아전통인형극, #김연정의엣지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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