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158명.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꿈을 꾸며,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살았을까요.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이후 나온 언론 보도와 취재를 종합해 85명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20대, 그리고 10대·30대·40대·50대, 외국인 등 세 차례로 나눠 사연을 소개합니다. 거리에서 죽어간 158명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연락주십시오.[편집자말]
지난 11월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10월 14일 오후 이태원압사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리자 외국인 희생자의 사진과 꽃이 함께 남아 있다.
 10월 14일 오후 이태원압사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리자 외국인 희생자의 사진과 꽃이 함께 남아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노르웨이·러시아·미국·베트남·스리랑카·오스트리아·우즈베키스탄·이란·일본·중국·카자흐스탄·태국·프랑스·호주. 누군가는 부모님이 나고 자란 한국의 말을 배우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개업을 코 앞에 둔 레스토랑의 레시피 개발을 위해. 갓 스무살이 된 청년은 '인생 최초의 모험'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국적 만큼이나 다양했던 희망과 꿈은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멈췄다.

10대 1명, 20대 18명, 30대 5명. 자녀, 배우자 또는 연인이 타국의 도로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유족들은 황망함을 넘어 분노를 토했다. "위험이 적은 국가라 믿고 보냈다"는 한 아버지의 절규, "매뉴얼도 없이 한국 정부가 말을 계속 바꾸고 있다"는 한 어머니의 비탄. 유족들은 국내 보도뿐 아니라 외신을 통해 참사 책임자들의 사과와 책임에 걸맞은 조치들을 요구했다.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외국인은 14개국 총 26명이다. 

<오마이뉴스>는 희생자 158명 가운데, 언론 보도와 성명 발표 등을 통해 전해진 85명의 삶을 전하고자 한다. 아래는 외국인 희생자 24명의 이야기다. 그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 그리고 각자 품었던 꿈과 이를 응원했던 가족·이웃·친구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유족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희생자 실명을 밝혔거나, 기자회견과 공개성명 등을 통해 유가족이 공개 의사를 직접 밝힌 경우에만 실명을 적었다.

그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유족의 요청을 받은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희생자인 미국인 청년 2명의 사진과 국화꽃을 놓았다. 한국에 오지 못한 유족과 지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유족의 요청을 받은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희생자인 미국인 청년 2명의 사진과 국화꽃을 놓았다. 한국에 오지 못한 유족과 지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김옥사나(25·ОКСАНА КИМ·러시아·여) : 김옥사나씨는 연해주 지역인 스파스크달니에서 4년 전 한국에 온 고려인이다. 지난 11월 2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유족은 그의 생전 밝고 명랑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오열했다.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해온 그는, 결혼해 가정을 이뤄 가족들과 함께 '잘사는' 꿈을 꿨다.

아버지 김이고리씨(56)는 "한국은 위험이 적은 나라라고 생각했기에, (딸이 떠날 때 안전을)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관련 기사 : 사망일시 '10월 30일 00시 00분'... 고려인 희생자 가족의 눈물 http://omn.kr/21sge ).

박율리아나 (25·ЮЛИАНА ПАК·러시아·여) :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박율리아나씨는 지난 7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인 자신을 '자랑스럽다'고 기록했다. <노컷뉴스> 등에 따르면, 연해주 출신 고려인인 그는 먼저 터를 잡은 아버지를 따라 1년 6개월 전 한국에 들어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10월 29일, 하루아침에 외동딸을 잃은 아버지 박아르트루씨(64)는 추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너무 미안하다. 사랑했다." 한국을 떠나 어머니가 있는 러시아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전쟁으로 러시아 직항 항공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배편으로 운구를 맡은 장례대행업체가 1000만 원의 큰 비용을 선지급 요청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연이 알려지면서 배우 이영애씨를 비롯한 국민들의 성금이 십시일반 모였다. "위로와 추모, 격려의 마음 전해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아버지는 슬픔 속에서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레이스 레이치드(23·Grace Rached·호주·여) : <가디언> 등에 따르면, 24번째 생일을 12일 앞뒀던 그레이스 레이치드는 전 세계를 여행하던 중 한국을 방문했다. 시드니 서부 캔터배리 걸즈 고등학교 학생회장 출신인 그녀는 학교 졸업 후 호주 영화사 '일렉트릭 라임 필름즈'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그녀의 유족은 성명을 통해 "그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중요하게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라며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천사를 그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녀는 변화를 만드는데 열정적이었던 재능 있는 영화 제작자였다"라며 "우리에게 '놀라운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줬다"라고 밝혔다. 틱톡 계정에 활발히 포스팅 해온 그녀는 지난 8월 32초가량의 짧은 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24년을 살아보니,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함께하지 않아,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만끽 하자"라고 자막을 적었다.
 
도미카와 메이씨의 생전 모습을 보도하고 있는 일본 방송 한 장면.
 도미카와 메이씨의 생전 모습을 보도하고 있는 일본 방송 한 장면.
ⓒ FNN

관련사진보기


도미카와 메이(21·冨川芽生·일본·여) : 일본 언론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도미카와 메이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한국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도쿄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그만둔 후 지난 6월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훗카이도 문화방송에 따르면 메이는 아버지에게 10월 29일 오후 6시 57분 "인사동에서 먹은 비빔밥이 맛있다"며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아사히신문>은 아버지가 "(딸은) 정말 한국을 좋아했고, (어학연수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열심히 하고 있어 응원하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녀의 지인 니시다 다카시씨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추모글을 통해 "메이씨는 한국과 일본 관계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라며 "어떻게든 반드시 한일관계를 사이좋게 바꾸고 싶다는 긍정적 사고를 보여왔는데, 그 소원을 하늘에서나마 이루길 바란다"고 전했다(관련 기사 : 일본인 여성 메이의 희생이 특별히 가슴아픈 이유 http://omn.kr/21ib8 ).

마디나 베이비토브나 셰르니아조바(26·Мәдина Бейбітқызы Шерниязова·카자흐스탄·여) : <오마이뉴스>와 만난 유족들에 따르면 마디나씨는 모국어와 러시아어,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까지 4개국어에 능통한 청년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며 관심을 가지게 된 한국을 더 깊이 알기 위해 2015년 국민대 교환학생을 시작으로 중앙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새로운 도전과 자유로운 여행을 즐겼던 마디나씨는 "계속 배우면서 살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참사 다음날, 가족들은 카자흐스탄 영사의 전화를 받고 마디나씨의 죽음을 알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영상통화를 통해 딸의 마지막 얼굴을 확인했다. 고인의 언니는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시민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아 생긴 과실 범죄라고 생각한다"라며 정부의 잘못을 짚었다. (관련 기사 :  한국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카자흐스탄 유학생의 죽음http://omn.kr/21qu6)

스티븐 블레시(20·Steven Blesi·미국·남) : "안전히 다니렴. 사랑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이 메시지는 마지막 말이 됐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조지아주 케네소주립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인은 지난해 8월 한양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다. 코로나19로 비행길이 막혀 벼르고 벼르던 "인생 최초의 모험"이었다. 그는 여행과 농구를 좋아하는 활달한 청년이었고 동아시아에서 국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애틀랜타 지역언론과 한국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짚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뉴스버스>와의 인터뷰에선 "한국 대통령부터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했다.

OOO 트베르도클렙(21·OOO Твердохлеб·러시아·여) : "한 달 전인 9월 17일은 고인이 21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고인이 재학 중이던 학교 홈페이지에 그를 기리는 글이 올라왔다. 러시아 현지 언론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mk) 등에 따르면 고인은 가을학기 교환학생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대학교에서 성균관대학교로 가을학기 교환학생 통합연구 프로그램에 참여, 과학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OOO 가르데르(26·Кристине Гардер·러시아·여) : "한국에 오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고인이 1년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이다. 시베리아의 한 도시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2년 전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고인은 2013년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을 찾았다. 러시아 언론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mk) 등에 따르면, 한국 대학의 어학당에 등록해 한국어 배우기에 열을 올릴 정도로 그녀는 한국에 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유족 측이 언론에 전한 바에 따르면 고인은 천식을 앓는 등 호흡기가 약한 편이었다. 한국에서 증상이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호흡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국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도맡아 키운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OOO 리마무(34·OOO Limamou Laye·프랑스·남) : <코리아헤럴드>에 따르면, 고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한식과 프랑스요리를 접목한 음식점 개업을 준비 중이던 요리사였다. 그는 식당 개업을 위한 한식 공부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학식은 '닭갈비'였다고 한다. 세네갈에서 태어나 2살 때 프랑스로 이민한 고인은, 프랑스에서 장례 절차를 마친 뒤 고향인 세네갈에서 안식에 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차별에 반대했던 이란의 여성 과학자 

OOO 라스트마네시(29·OOO Rastmanesh·이란·여)
OOO 파라칸드(36·OOO Parakand·이란·남)
OOO 사닷 아타시(24·OOO Sadat Atashi·이란·여)
OOO 올리에이(36·OOO Oliaee·이란·남)
OOO 모기미 네자드(32·OOO Moghimi Nezhad·이란·여)

: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라스트마네시씨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기계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녀는 바이오 센서를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와 함께 일한 동료는 곧 다가올 그녀의 생일(11월 15일)을 맞아 그녀가 좋아하는 인도 디저트로 깜짝 파티를 해줄 계획이었다.

한 동료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란 정부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을 택했다는 그녀에 대해 또 다른 지인은 "그녀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투사였으며 여성과 과학 분야의 여성이 평등하기를 원했다, 그건 당연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등에 따르면, 이란인 사망자 5명 중 4명은 중앙대 등 국내 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었고, 나머지 1명인 사닷 아타시씨는 지난 달 4일부터 국내 어학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 내 이란인 커뮤니티는 굉장히 활성화 돼 있었고, 이번에도 커뮤니티 내에서 14명이 이태원에 가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기미 네자드씨의 한 친구는 언론을 통해 "(고인은) 한국의 명소나 관광지를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너무 좋다고 얘기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중앙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한국이 좋아서 왔을 텐데 이런 나라라서 미안해요'라 적힌 접착식메모지가 붙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월 31일 "불행히도 이번 사고로 이란인 5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핼러윈)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체계적인 계획으로 부상자 문제를 비롯한 상황 대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란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OOO 에벤센(20·OOO Evensen·노르웨이·여) :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고인은 연세대에서 언어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에서 지냈던 그녀는 곧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학사 학위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사고가 나기 몇 시간 전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과 연락을 취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비현실적인 충격이다, 사실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은) 모험적인 면을 갖고 있었고, 여행과 다른 문화, 언어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본) 벚나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던 그녀는 한복을 즐겨 입었고, 경복궁을 방문한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김인홍(24·한국-오스트리아·남) : "우리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동안,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 (한국 정부가) 어떤 매뉴얼도 없이 말을 계속 바꾸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엄마는 아들이 숨을 거둔 참사 현장에서 다시 오열했다.

30년 전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김씨의 부모는 지난 11월 7일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 슬픔과 분노를 가누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지난 9월 입국해 연세어학당의 한국어 프로그램을 다니고 있었다. 고인의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며 겪은 한국 정부의 부실 대응을 비판했다. "참사 피해에 외국 사람, 한국 사람 따로 없는데, (정부 측에) 문의하면 외국 대사관에 문의하라고 하고, 대사관에 문의하면 또 다른 대답을 들었다"는 토로였다. (관련 기사 : 재외국민 유족의 절규, "정부·지자체·경찰 왜 말이 다른가" http://omn.kr/21gbu ).

무함마드 지나트(27·Muhammad Jinath·스리랑카·남) : 고 무함마드 지나트씨는 지난 7월에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아내는 임신 4개월 차에 남편의 부고 소식을 받아들었다. 4년 전 한국에 들어온 지나트씨는 경기도 화성시 소재 포장지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대학에선 컴퓨터 관련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쳤다.

동료들은 입을 모아 "성실하고 친절했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지난 1일에는 본국으로 시신을 인도하기 전, 고인의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이 약식 장례식을 치렀다. 스리랑카에 있는 아내와 고인의 부모님은 영상 통화를 통해 고인의 얼굴을 마주하며 오열했다. (관련 기사 : "아내 임신 3개월인데..." 27살 스리랑카 청년의 비극 http://omn.kr/21fsw ) 
 
스리랑카인 희생자 무함마드 지나트(27·Muhammad Jinath)씨를 추모하는 사진과 글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추모장소에 게시돼 있다.
 스리랑카인 희생자 무함마드 지나트(27·Muhammad Jinath)씨를 추모하는 사진과 글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추모장소에 게시돼 있다.
ⓒ 손가영

관련사진보기


"앤은 신이 우리 가족에 보낸 선물" 

앤 마리 기스키(20·Anne Gieske·미국·여) : "앤 마리는 모두에게 사랑 받는 밝은 빛이었습니다." 지난 10월 31일, 그녀의 부모가 삼촌인 브래드 웬스트럽 공화당 하원의원 편으로 전한 성명 일부다. 켄터키대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앤 마리 기스키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한양대 간호학과에서 가을학기를 보내던 중이었다.

그녀의 삼촌, 브래드 의원 또한 개인 성명에서 "앤은 신이 우리 가족에게 보낸 선물이었고, 모두가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가족은 끝으로 추모를 전하는 시민들에게 부탁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우리 가족의 사생활도 존중해주시기를 함께 요청합니다."

무하마드 OOO(26·우즈베키스탄·남) :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이 텔레그램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한 것은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오후 1시께다.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무하마드씨는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이튿날 생을 마감했다. <한국일보> <경기신문> 등에 따르면 2018년 가을부터 인천대학교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한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딘 OOO(21·Đinh OOO·베트남·여) : 베트남 현지 언론 <탄니엔>(Thanh Nien PV) 등에 따르면 딘씨는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꿈이었다. 부모님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딸의 뜻을 응원하게 됐다고 한다. 2019년부터 한국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3년 차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하나뿐인 딸의 소식을 듣자마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10월 28일 고인은 부모님과 전화통화에서 "보고싶다,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됐다. 고인의 시신은 지난 2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4일 호찌민에 도착했다. 다음 날인 5일이 돼서야 육로로 그녀의 고향 빈딘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OOO 마깨우(27·OOO Makaew·태국·여) : 태국 현지 언론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고 마깨우씨는 태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교사였다. 외동딸인 그녀는 대학교 졸업 이후 방콕 한국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고 한국 식당 등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다시 6개월 과정의 서강대 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녀의 애칭은 'bam(밤)'이었다. 그래서 태국 언론은 'Kru Bam(밤선생님)'이라 그녀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가족은 언론을 통해 "고인은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우의 대사를 외우며 흉내 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은 고인의 부모가 시신 운구 비용 1600만 원(태국에서 대졸 신입사원 2년치 연봉 정도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고즈치 안(18·小槌杏·일본·여) : "손녀와 통화했을 때 '열심히 하고 있어, 초밥 먹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자신의 할아버지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10월 31일 자택에서 인터폰을 통해 기자들에게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고 신문들은 전했다. 지난 8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고인에 대해 할아버지는 "'힘내라'라면서 한국에 보냈는데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가족들은 "(고인은) 정직하고 친절했으며 한국 문화, 패션,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라며 "한국에서 일본어 교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대학에서 공부했다"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유족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한국에 있는 대사관, 경찰, 병원 직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이제 막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멍멍(33·濛濛(가명)·중국), 이름이 알려지지 않음(22·중국) : 중국 <훙싱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인 희생자 멍멍(가명)은 중국 랴오닝 출신으로 8년 전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성형외과 상담사로 일했다고 한다. 한국 생활 중 가정도 꾸렸으며 6살 난 아들도 있다. 멍멍씨의 고모는 "부모님과 한국에서 같이 살다 몇 년 전 중국에 있는 할머지를 보살피려 (멍멍) 부모는 중국으로 갔다"라며 "(멍멍의) 어머니는 쓰러져 오지 못하고 아버지 혼자 한국에 오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멍멍의 자녀에게는 차마 엄마의 사고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뉴스1> 등에 따르면, 또 다른 중국인 희생자는 충북 제천시 소재 세명대학교에 재학중인 유학생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 장례 예복을 구입해 한국에 와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 장례식장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국 언론은 전했다. 시신은 8일 중국으로 보내졌다.

한편, 관영 중국중앙 방송은 10월 30일 오전 중국인 4명이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이날 "중국 정부와 인민을 대표해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희생자 가족과 부상자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낸다"라며 "이번 사고로 중국 인민이 숨지거나 다쳤다, 치료와 사후 처리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에 희생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연락주십시오.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댓글2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