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다녀왔습니다. 8일 저녁, 일하는 곳에서 버스로 30분 남짓 거리에 있는 그곳에 처음 가는 길입니다.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탔지만 버스 안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하차 벨을 누르기도 버겁게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1번 출구를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에 불은 켜져 있지만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같다면 많은 사람이 활기를 띠고 오갔을 거리에는 낙엽만이 뒹굴고 대신 경찰 버스가 줄지어 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좁은 골목에 다다르자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더욱 차갑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까 싶은 오르막 골목 가장자리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옷가지와 유실물이 뒹굴고 있습니다. 경찰 저지선이 쳐있던 골목 앞쪽으로 작은 상이 놓여 있고 지나가다가 지갑을 열어 노잣돈을 올려놓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영상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는 외국인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호텔의 양쪽 옆에는 수많은 꽃다발과 쪽지들이 붙어 있고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도 밝혀져 있었습니다. 촛불처럼 쉽게 생명을 빼앗긴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명복을 비는 마음들이 다시 1번 출구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서 수녀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서 수녀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0월 29일이 30일로 넘어가는 새벽녘 잠들기 전 잠깐 열었던 스마트폰에서 '핼로윈'으로 시작하는 여러 제목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나와 먼 이야기라 생각했고 우리나라가 아닐 것이라고 여겨 자세히 보지도 않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일어난 일이 '우리나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이며 백여 명이 넘게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방송과 개인 영상이 끔찍한 상황을 담아 온갖 형태로 떠다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웠고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도 없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부터 '그곳에 왜 갔느냐'는 말부터 시작하여 '어떤 사람이 원인이 되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근거 없는 말과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치부되는 것을 보고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어디서나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질서 유지의 책임을 단순히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사고 방식이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음이 또다시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런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버티다가 뒤늦은 사과를 하면서 '무한 책임'을 말하는 뻔뻔한 정부의 책임자들을 '무한 신뢰' 했던 자책감만이 국민에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에게 더욱 분노감이 듭니다. 가장 참담한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희생자가 잃어버린 생명을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지겠다'는 말로는 이미 책임질 수 없는 일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앞으로의 수습과 대책을 요구할 뿐입니다.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고 그런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켜보는 일이 국민이 할 일입니다. 그 외에 우리 각자가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그대들의 영원한 자유를 빌겠습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국가 애도 기간 끝났지만, 추모 발걸음 이어지는 이태원역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후 세계를 믿지도 않고 영혼의 존재 유무에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생전의 엄마가 바랐던 것처럼 천국이 있어서 엄마의 영혼이 그곳에 다다랐기를 빌었습니다.

장례식 때 엄마의 영정을 들고 평소 엄마가 다녔던 교회 예배당에 갔을 때는 엄마의 영혼이 그곳에 함께 와 있을 것이라 여겼고, 그 생각이 나에게 조금은 위안을 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우연이겠지만 제가 회원으로 있는 인문학공동체 인문공간 세종에서는 마침 <사자의 서>를 한 달 넘게 읽고 있었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옮긴 <티벳 사자의 서>는 사자(死者)가 사후 세계에 들어섰을 때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사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경전입니다.

'바르도'라고 하는 세계는 임종의 순간으로부터 다시 환생할 때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 상태를 말합니다. 바르도에 의식(영혼)이 머무는 동안 즉, 사자의 숨이 멈춘 후 49일 동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설명하며 그동안 사자가 듣기만 해도 윤회의 굴레를 끊고 영원한 자유를 얻게 한다는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서는 사자의 시신이 없더라도 그가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 앞에서 읽거나 사자의 영혼이 곁에 있다고 떠올리며 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불교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생전에 믿었던 스승이나 신에게 영혼을 인도하는 기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모임에서 <티벳 사자의 서>를 함께 읽던 분이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에게 '임종을 맞은 그대에게 <사자의 서>의 구절을 바친다'라고 쓴 글을 읽고 울컥함과 동시에 이태원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희생자들도 고귀하게 태어났으며 그의 영혼이 아직 바르도에 떠돌고 있다면 이제 원망을 버리고 "사후세계에서 존재의 근원과 하나가 되어 어떤 모습으로든지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파드마 삼바바 지음, 류시화 엮음, <티벳 사자의 서>, 정신세계사)라고 자비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영원한 자유에 이르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나는 구도자도 아니고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영혼에게 한 마디라도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섯 바르도의 서시> 일부를 작게 읊조리고 써 간 쪽지를 붙이고 돌아왔습니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실은 무엇으로도 회복할 수 없지만 내가 위로를 받았듯 유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매일 그곳을 지나 일터로 가야 하는 누군가도, 그곳이 바로 일터인 누군가도 눈길 닿을 때 함께 읽고 아주 작은 평안을 얻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아, 지금은 죽음의 순간의 바르도가 내 앞에 밝아 오는 때!
집착과 욕망과 세속의 모든 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깨달음을 주는 밝은 가르침의 공간으로 마음을 집중해 들어가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태어남 없는 하늘 공간으로 옮겨가게 하소서.
이제 살과 뼈로 만들어진 육체를 벗어 버릴 때가 왔습니다.
이 몸이 영원하지 않으며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 <여섯 바르도의 서시> 중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이태원참사, #티벳사자의서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