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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은 '용무를 위하여 임시로 다른 곳으로 나감'을 뜻한다. 직장인에게 출장은 업무의 연장이다. 사무실을 떠나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때에 따라서 부담도 크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어떨 때는 바쁜 직장인에게 색다른 걱정을 한아름 안겨 주는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중년이 되어도 출장길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면서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출장도 활기를 찾고 있다. 자가격리 7일 의무도 해제되었고 지난 10월 1일 0시부터 해외에서 입국하는 내외국인 모두 24시간 이내에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다. 덕분에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해외 출장에 대한 빗장도 풀렸다.

출장의 새로운 트렌드 '블레저'

출장 잠금이 해제되면서 해외 출장을 갈 때 휴가나 연차를 붙이는 '블레저(Bleisure)'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블레저는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를 합친 말로 일과 여행을 한 번에 즐기는 것을 뜻한다. 블레저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2008년 최악의 경기침체를 풍자해 만든 신조어로 2009년 국내에 등장했다. 시대 상황을 반영한 탓에 지금과 의미가 약간은 다르다.

당시에는 경기침체로 일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빗대 '블레저(bleisure)'는 일(business)과 여가(leisure)의 경계가 불명확해짐을 뜻했다. '레저'(일이나 공부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시간)보다는 '여가'(일이 없어 남는 시간)의 의미로 사용했다.

과거에는 경기 불황으로 어쩔 수 없이 여가를 보낸 '블레저'였다면 현재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직장인 '블레저'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15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블레저를 즐겼다. 가장 플렉스를 즐긴 블레저는 지금도 총성이 끊이지 않는 이라크로 떠난 일주일간의 출장이다.
 
해외에 근무하는 동료들 부탁으로 짐이 두 배 늘어났다.
▲ 해외 출장 준비 해외에 근무하는 동료들 부탁으로 짐이 두 배 늘어났다.
ⓒ 장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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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가 이라크 현지에 아파트를 지어 현장을 방문했다. 시작부터 힘든 출장이었다. 동행하는 출장자들의 모든 서류를 혼자 준비했다. 여행 금지 국가라 준비가 까다로웠다. 가장 큰 괴로움은 모두가 꺼리는 임원과의 동행이었다. 짐도 많았다.

현지 직원들 요청 물품을 담은 두 개의 캐리어, 백팩, DSLR, 노트북 두 대까지 이민 가방을 방불케 했다. 예측 불가한 임원의 비위 맞추기도 힘들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입었던 10kg이 넘는 방탄조끼도 허리에 버거웠고, 내전 국가라는 심리적 두려움도 컸다. 무엇보다 무더운 현장에서 바삐 뛰어다니다 보니 체력도 고갈됐다.
 
이라크 출장을 마친 다음 날인 주말을 맞아 두바이 시내 투어를 했다.
▲ 두바이 시내 전경 이라크 출장을 마친 다음 날인 주말을 맞아 두바이 시내 투어를 했다.
ⓒ 장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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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할 때 두바이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 환승 대기 텀이 13시간 이상인 항공권을 예매했다. 일반 직원 항공권 구매 규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출장을 마친 다음 날이 주말이라 호텔 바우처를 받아 두바이에서 하루를 보냈다. 임원은 기준에 맞는 별도 항공권으로 따로 귀국했다.

두바이 지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가이드를 받아 관광지 투어를 했다. 주요 여행지를 열심히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임원의 허가를 받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기는 여행은 꿀맛 이상이었다. 피곤한 출장 뒤 행복한 힐링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직장인의 출장길
▲ 해외 출장 직장인의 출장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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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스온라인의 최근 통계 자료에 의하면 세대별 블레저를 희망하는 비율은 밀레니얼 세대 74%, X세대 38%, 베이비붐 세대 20%로 조사됐다. 밀레니얼 세대뿐만 아니라 X세대도 해외 출장지에서 여행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 과거 일이 없어 여가를 즐겨야 하는 시대에서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는 블레저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일도, 여행의 즐거움도 다 잡는 법

입사 초 전 팀원과 함께 떠난 지방 출장에서의 일이다. 일정을 모두 마친 뒤 팀장(386새대)은 혼자 남았고, 가족과 출장지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했다. 대리 시절(X세대) 강원도 속초에서 출장 일정이 끝나는 다음 날부터 여름휴가를 냈다. 아내와 아이들을 출장지 부근에서 만나 함께 휴가를 보냈다.

지난여름 팀원들과 함께 양양의 한 호텔로 당일 벤치마킹 출장을 갔다. 업무를 마칠 무렵 함께 온 후배(MZ세대)의 남편이 출장지로 왔다. 후배는 출장 일정에 맞춰 남편과 함께 양양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사전에 계획했다.

블레저를 모르던 시절에도 직장인들은 시나브로 블레저를 대물림했다. 출장은 업무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알찬 보상이 될 수도 있다. 블레저는 직장인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기회다. 하지만 원한다고 누구나 만끽할 수 있지는 않다. 처한 상황이 다른 직장인 모두가 블레저를 즐길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추천한다.

출장지에서 이동 반경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주마간산식이 아닌 한 곳에 머물면서 즐기는 깊이 있는 여행이 인기다. 또한 누구와 동행하느냐도 중요하다. 때문에 동행자나 상사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미리 계획을 공유해야 나중에 일어날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

즐겁게 일하면 효율이 오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나 만족도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 블레저는 공식 업무 일정을 마치고 개인이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라 업무 처리에 더욱 만전을 기하는 동기부여 효과도 있다.

단체 생활의 불편함보다는 개인 만족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대에게 무작정 천편일률적인 조직문화를 강요하기보다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블레저를 허용한다면 직장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업무 처리와 완성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일과 여가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면 생활의 질과 만족도가 조금은 높아질 것이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직장인출장, #해외출장, #블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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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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