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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엔 까치집을 이고, 눈이 풀려 발갛게 충혈되었다. 평소 같으면 인사만 하고 방으로 사라졌을 텐데 웬일이지 내 옆에 콕 붙어 조잘대기 시작했다.

"아빠. 어제 김민재 경기 보았는데, 엄청 났었어."
"야. 그거 새벽에 한 경기잖아. 보았어?"
"응. 당연하지!"


나는 씻지도 못한 채 아들에게 붙잡혀 오래도록 축구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간신히 탈출하고 샤워를 하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입가에 띤 미소는 가시질 않았다.

아들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변하는 중이다. 늘 잔뜩 흐린 얼굴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부리더니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실실 웃고 다닌다. 물론 변덕이 죽을 끓기에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모든 원인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악인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기를 당해 재산을 탕진하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경우 등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들에게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아들이 변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 만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학원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중엔 거의 밤 10시가 다 되어 끝났고,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그놈의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말로는 아이가 힘드니깐 쉬게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들 다 한다는데 안 하면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더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쯤 아들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아들은 혹시라도 잔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학원을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뜻밖의 말에 아들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혹여나 엄마에게 이야기하기 그러면 대신 말을 해주겠다고까지 했다.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는 했지만 못 미더웠다. 평소 아들은 본인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 서툴렀다. 더구나 공부에 관한 기대가 큰 아내에게 쉽사리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아내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수학 학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끊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길래 아들 뜻대로 하자고 답했다. 아내와 나 모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들은 제대로 놀기 시작했다. 학교를 끝나고 집에 오면 방에서 게임을 실컷 하고 새벽에 열리는 유럽 축구 경기도 보기 시작했다.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뀌었다. 어떤 날은 날밤을 홀딱 새기도 했다. 저러다가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학교는 잘 갔다.

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변한 것이 표정이었다. 학원 끝나고 밤늦게 돌아오면 잔뜩 화난 모습으로 짜증 내기 일쑤였는데, 웃는 얼굴이 돌아왔다. 무얼 물으면 단답형으로 답하더니 이제는 수다쟁이가 되어 이야기도 잘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뿐이 아니었다. 아내 말로는 여유가 생겨서인지 일주일에 두 번만 가는 수학 학원도 자진해서 일찍 가고 선생님 말씀으로는 수업 태도도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계속 게임과 영상 보는 것도 질렸는지 운동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친구와 탁구를 시작했다. 밖에 나가기를 극도로 꺼리더니 알아서 움직이겠다고 해서 기뻤다.

지금의 쉼이 자양분이 될 것
 
지금의 쉼이 나중에는 마음껏 날아오르는 힘이 될 것이다.
▲ 자유롭게 날아오르길 지금의 쉼이 나중에는 마음껏 날아오르는 힘이 될 것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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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는 아들과 둘이서 걷기로 약속했다. 특별한 일 아니고는 계속 지키고 있다. 지난주에도 시원한 가을 바람을 걸으며 천변을 돌았다. 비밀이 있다며 친구의 연애 사실도 이야기 해주고, 내성적인 성격에 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들으며 맞장구도 쳐주고, 때에 따라선 조언도 해주었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아들, 학원 그만두니깐 좋아?"
"그럼. 좋지.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하고."

"다행이네. 그런데 운동은 왜 시작한 거야?"
"집에만 있으니깐 체력이 많이 약해졌더라고. 아빠가 전에 운동하면 좋다는 말도 생각나서. 솔직히 운동하니깐 스트레스도 팍팍 풀리네."
 

아들이 '씩' 하고 지어 보이는 미소를 보며 이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게. 이렇게 좋은 걸 전에는 왜 몰랐을까.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앞으로 아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길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지금의 쉼이 자양분이 되어 나중에 큰 힘이 돼 주리라 믿는다.

나 역시도 조급한 마음을 덜어내고, 기다려보련다. 원 없이 놀고 돌아온 아들이 언젠가 날아오르길 기대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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